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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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지극히 만화스럽고,불편한 현실 따윈 절대적으로 무관심해보였던 그녀, 김애란을 가을도 아니요 겨울도 아닌 생경한 시간의 거리 위에서 난 만났다. 오랫동안의 부재를 원망하기 보다는 자신의 그림 속에 유머러스하게 그려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심히 자극적인 컬러인 핑크색 야광 팬티라는 상징적인 대상물로 표출시킨 전작 <달려라 아비> 를 관람하며 구경꾼이 아닌 난 그녀의 친구가 되어 있었다.나와 참 많이 닮아 있는.

피터팬을 꿈꾸고 삐삐처럼 그저 씩씩하고 빨간 머리 앤처럼 마냥 떠들어댈수 있는 세대라 일컫는,소위 이기적이고 그래서 밝을 수 밖에 없는 1970년대 이후 세대,그 중에서도 막내격인 79년도도 아니요 그보다 더한 1980년 출생의 작가가 풀어놓은 글이라 하기엔 저으기 놀라웠던,일상에서 퍼올린 솔직하고 분방한 우리네 삶의 왜곡되지 않은 현실이라서 더 빠져들어가 있었다.

그녀가 얘기하는 공간과 사람들,시간은 겉으론 코믹한 개그 같으면서도 그 속내는 결코 기쁘기만 하거나 한 바탕 웃고 있는 것도 아닌 채의 아픈 진실이었다.

화려함도 정돈됨도 아닌 만두를 팔아 가진 자의 유희 같은 피아노를 마련해준 엄마의 거칠어진 생활의 파도 위에서 성장한 자매와,도 음계에선 처음으로 끓어오르는 설렘이다가 하나 둘 넘어갈수록 환희이다가 낯선 국면인 파 음계에선 도약이며 두려운 도전에의 발자욱이 되어가는 음계의 이미지가 영화처럼 오버랩되는 얘기 <도도한 생활>속에서 발견한 건 그토록 붙잡고 싶었던 소유물도 허무한 그리움임을 절감하게 되는 '화려한 가난'이었다.굉장한 기대와 호기심으로 입 안에 물게 된 껌의 단물이 어느새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끝없는 욕구본능의 실체인 '침'으로 남게 되는 쓰라린 상황과,곁에 있을 때는 갈수록 늘어가는 상대방에 대한 불만과 실망들이 그 존재가 떠나가고나니 아리게 그리운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별 선물이었던 인삼껌처럼 씁쓸한 기다림이 되는 모양이 쓸쓸하게 그려진 <침이 고인다>에서 발견한 건 '욕망의 빈 자리'였다.예전에 머물렀던 공간이며 따돌리고만 싶었던 공간이었던 '학원'에서 호흡하고 웃었고 울었던 지난날이,현재의 나를 다시 가두고 있는 모순된 공간이 되는 곳도 같은 자리인 학원으로 흐르고 있음을 북극과 남극을 잇는 지구 표면의 곡선인 '자오선'의 극적인 만남으로 대비시키는 <자오선이 지나갈 때>에서 발견한 건 변해도 변해지지 않는 인생의 외로운 자화상이었다.풋풋한 아낙네 시절 무겁게 자신을 누르는 세상살이 앞에 좀 더 씩씩해지고 용기있고 싶어진 엄마가 온 맘으로 탐내어 마련한,삶의 냄새 그대로 묻어난 칼들 중 가장 아끼고 그녀의 믿음 깊은 벗이 되어준 칼 한 자루가 남긴 흔적들 속에서 평생동안 썰어대던 국수보다 창백한 미소로 흥얼거릴 듯한 기분에 빠져들게 하는 <칼자국>에서 발견한 건 가슴을 찌르는 비수가 아닌,인생 속에 시퍼런 칼자국보다 애절하게 지켜내고 싶었던 '엄마의 사랑'이었다.           

그녀가 건네고 내뱉는 말들은 단지 기교라고 생각했던 순간도 있었다.그런데 그건 섣부른 착각이었음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놓는 독백 같은 이야기들 속에서 조금씩 이해할 수 있는 아량이 생긴 것 같다.보듬어주기 어렵지만 보듬어지는 것,기다리기 힘들었지만 기꺼이 기다려지게 되는 것 그게 우리들의 소설인 걸.   

마른 입술 위에 고인 침이 안개처럼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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