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의 비밀편지
신아연 지음 / 책과나무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원 강사 시절 아이들과 면담을 하면서 자주 물어봤던 질문 중의 하나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 싶냐’는 것이었다. 이런 질문을 던지 의도는 장래 직업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 중에서 많은 여학생들이 얘기한 장래 희망 중 하나가 현모양처였다.

 

의외였다. 현모양처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자신의 꿈을 찾는 방법이 너무 소극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현모양처라고 답한 아이들에게 현모양처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신사임당을 얘기하면서 그런 분처럼 되고 싶다고 했다. 그렇지. 현모양처하면 신사임당이지.

 

당연하게 여겼던 이런 사실이 신사임당을 재조명하는 여러 책들을 보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신사임당이 정말로 현모양처인 걸까? 이 소설은 그런 의문을 토대로 사임당의 진짜 모습을 역사적 사실에 더해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그리고 있다.

 

아들의 도움으로 남편과 이혼한 신인선에게 어느 날 16세기에 살았던 서인선의 편지가 도착한다. 서로 다른 듯 닮은 두 여자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현모양처로만 인식되던 신사임당의 모습이 아닌 인간 서인선의 모습이 그려진다.

 

한 사람의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 한 마디가 가슴 깊이 다가왔다. 그래, 내가 아닌 남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갇혀 평생을 사는 모습은 비단 신사임당의 고통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내게도 역시 그런 감옥 아닌 감옥이 있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한 명의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임당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예술가로서의 사임당, 사랑을 꿈꾸는 사임당의 모습을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된다. 작가는 사임당을 통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누구든지 간에 자신을 잃지 말고 살아가라고.

 

소설적 장치가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도 사실이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사임당을 바라보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서 기분 좋았던 시간이었다. 소설이 이래서 좋은가 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