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좋으면
마광수 지음 / 어문학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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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의 작품을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새 작품이 출간될 때마다 관심을 가지고 읽는 편이다.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이 사회적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어서 이기도 하지만 과연 그가 말하는 예술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무엇을 상상하며 쓴 것일까, 과연 그가 말하는 예술을 이번에는 제대로 느껴볼 수 있을까, 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 실망했다.

 

이번 작품들에서는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있는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만나지 못했다. 오히려 지나온 자신의 삶을 들려주며 애써 변명하는 이의 모습만을 보았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나만의 생각이다. 다른 이들은 또 다른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랬다. 외설 작품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중에도 결코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자신의 삶이, 자신의 작품이 예술이라고 말하는, 하지만 결코 공감이 가지 않는 이의 모습을 보았다.

 

마광수 교수는 자신의 작품(?)에 도덕을 들이대는 이들을 반동분자요 잔인한 마녀사냥꾼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들이 상상의 자유를 제약하려 들며 예술에 있어서의 일탈적 백일몽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예술의 기준이 무엇일까?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외설일까? 이에 대한 설명은 없다. ,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생각과 상상의 자유를 외치던 그가 나만 좋으면에서는 문장이 너무 현학적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쓰는 작가들, 혹은 비문을 쓰는 작가들에게 일침을 날린다. 그러면서 가볍고 쉽게 읽히는 자신의 작품이 탁월하다고 말한다. 물론 소설 속 인물 사라의 생각을 통해서 말이다.

 

일견 그의 말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다. 한국 문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상상의 날개를 핀 예술에서 비문이면 어떻고 좀 난해하면 어떤가? 비문을 쓰면 좀 어떤가? 그저 쉽게 읽히는 글이 좋은 글이라면 만화책이 최고일 것이다(물론 만화책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현학적으로 으스대는 글이면 좀 어떤가? 그 속에서 상상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 것이 좋다는 말을 하기 위해 다른 것을 깎아내려야 한다면, 글쎄다.

 

어떤 의미에서 그가 이런 말을 던졌는지는 이해하지만 그의 말이 썩 깊이 다가오지는 않는다. 나는 도덕주의자도 아니고, 문단이나 학계의 대가도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재미는 다르다. 그렇기에 만화를 그리는 이도, 무협지를 쓰는 이도, 대중 문학 혹은 장르 소설을 쓰는 이도 그가 말하는 훈민문학을 쓰는 이도 모두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마광수 교수의 작품을 존중해야 하듯이 말이다.

 

한 때 마광수 교수를 자신의 색깔을 뚜렷하게 가진 이 시대의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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