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운하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시대적 배경이 60년대라 그런가? 아주 어렸을 <미워도 다시 > 같은 영화들이 떠올랐다. 소설 속에서 사용된 단어나 어투도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이 출판된 시기가 60년대 초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리라.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는 조금 낯선 느낌도 들었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놀라움을 금할 없었다. 60년대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말이다.

 

작품에서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진부할 수도 있는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이다. 하지만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결코 60년대의 사랑 이야기 같지 않아서이다. 왠지 모르게 60년대라고 하면 뭔가 폐쇄적이면서 경직된 신파극이 생각난다. 그렇지만 책에 나오는 이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엄마 후배인 허찬희를 찾아 마산에서 올라온 송은경은 찬희의 남편인 김상국의원의 비서인 이치윤을 만나게 된다. 차가운 첫인상과는 달리 은경은 치윤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치윤 역시 은경에게 끌리는 마음을 자각하면서도 자신을 배반한 경란 때문에 생긴 여성 혐오증과 법적으로는 여전히 경란과 부부이기에 결코 은경에게 다가갈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 오빠 친구인 박지태와 치윤의 친구인 김남식도 은경을 향한 마음을 표현하면서 은경을 둘러싼 사랑의 사슬은 점점 얽혀 들기만 한다. [후략]

 

책에 나오는 여성들의 모습은 상당히 현대적이다. 치윤의 아내 경란이나 남미, 상애 등은 어찌 보면 문란하다고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자신의 감정에 상당히 솔직한 모습의 인물들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치윤이 경란에게 얽매여 있으면서도 은경을 향한 마음이 커져가는 상황이나 수많은 여성편력을 가진 남식이 은경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 시대와 관계없이 사랑이란 외적인 겉치레보다는 결국 진실한 마음임을 깨닫게 한다. 특히 누구보다도 소설에서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인물은 민경을 보살피는 인혜이다. 다른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도 민경을 보살피는 인혜야말로 사랑과 믿음으로 현실을 이겨나가는 존재이다.

 

소설에서 눈에 들어온 다른 인물은 허찬희이다. 아이를 낳지 못해 쓸쓸하고 외로운 삶을 살았던 찬희는 결국 윤변호사와 마지막 경계를 넘어선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찬희는 빛의 직접 운영하면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이렇게 진정한 자신을 찾아 평온함을 되찾은 찬희는 윤변호사와 다른 관계가 이루어질 있음을 보여준다. 찬희의 모습에서 보듯이 진정한 자아를 찾는 여정 없이는 결코 사랑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있다.

 

마지막으로 은경의 사랑이다. 은경의 사랑을 빗댄 푸른 운하라는 제목처럼 은경의 사랑은 받아들이는 사랑이다. 푸른 바닷물을 받아들인 운하처럼 망망대해와 같은 치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운하를 파겠다는 은경의 모습은 시대를 사는 우리가 잊어버린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다. 그렇다. 사랑은 강요나 집착이 아니다. 사랑은 나를 내려놓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 사랑이 너무나 그리운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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