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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따라쓰기 ㅣ 처음책방 필사책 3
윤동주 지음, 김기태 엮음 / 처음책방 / 2025년 3월
평점 :
시를 보면 시가 쓰고 싶어진다.
윤동주의 시를 읽고 나면, 마음 어딘가 조용한 공간이 생기는 느낌이 든다. 그 조용함은 침묵이 아니라,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이 차분히 가라앉아 있는 상태다. 어쩌면 그것이 시가 가진 힘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시는 요란하지 않고, 특별한 장치도 없지만, 읽는 이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머물게 만든다.
시를 처음 접했던 건 교과서 속 ‘서시’를 통해서였다. 그땐 그냥 ‘유명한 시구’라고 생각했을 뿐, 시인이 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는지 깊이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집을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나가면서 그 문장이 단순한 다짐이 아니라, 시인의 삶 전체를 지탱하던 중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시에는 시대의 어둠이 스며 있다. 그러나 그것을 직접적으로 외치거나 거칠게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조용하게, 때로는 속삭이듯 써내려간다. 그래서 더 슬프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 나라를 빼앗기고 말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던 시절에, 시인은 그 억눌림을 외부가 아닌 자신을 향한 물음으로 바꾸었다. 시를 통해 시대를 고발하는 대신, 자신을 비추고,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순수함을 지키려 애썼다.
‘자화상’을 읽을 때는 그가 얼마나 깊은 내면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거울 앞에 선 시인은 단지 자신의 얼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삶 전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직시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그는 그것을 담담하게 해낸다.
그리고 ‘별 헤는 밤’을 읽을 때는, 밤하늘에 홀로 서 있는 시인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고요한 밤, 별 하나하나를 헤아리며 그리운 사람들과 지난 시간을 떠올리는 장면은 너무도 선명하고 따뜻하다. 읽는 나도 문득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게 되고, 그때 함께했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움, 외로움, 반성, 그리고 다짐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감정들은 전혀 무겁지 않고, 마치 오래된 노래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는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힘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요즘처럼 말이 많고 감정이 넘치는 시대에, 윤동주의 시는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낯섦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내 마음속 조용한 곳을 지키고 싶을 때, 그곳에 윤동주의 시를 놓아두면 좋겠다.
시를 보면 시가 쓰고 싶어진다는 말은, 시인이 되어보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나도 나를 한 번 들여다보고 싶어진다는 뜻이다. 윤동주의 시는 그런 마음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