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 다다미 넉 장 반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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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_일본 전통 가옥에서 쓰이는 짚으로 만든 바닥 깔개
(규격이 정해져 있어, 일본에서는 방 크기를 다다미 몇 장 분량인지로 표현하기도함)

🌻넉 장 반_4장 1/2 개
- 다다미 4장 반(四畳半) 크기의 방
- 숫자 그대로라면 4.5개의 다다미가 깔린 아주 작은 공간, 보통 7㎡(약 2평 정도) 정도 되는 방
- 학생, 독신자, 하숙생이 사는 아주 좁고 소박한 공간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제목이 몹시도 어색했다.
제목의 뜻을 알고 나니, 소설이 읽히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들어왔다.

🌊말풍선이 내 머리위에서 쓰여지는 느낌.

좁은 방에 앉아 작은 티비로 영화를 보는 느낌. 그렇지만 그 뒷이야기는 세월이 지난 다음에도 이어지는 그런 상상이 섞인 이야기.

이 책의 제목을 한국식으로 하면
🌏‘반지하 신화세계’
🌏 ‘고시원 세계일주정도’
아닐까?

『四畳半神話大系』는 모리미 도미히코(森見登美彦)가 2004년에 발표한 소설이다.(피드참조)

일본 교토의 한 대학을 배경으로, "나"라는 이름 없는 주인공이 다양한 선택지를 따라가며 각기 다른 평행세계에서 대학 생활을 경험하는 이야기를 한다.

대학생의 이야기가 이토록 알록달록했던가. 나의 대학생활과는 완전 다른 저 너머 세상이야기.
같은 인물, 같은 배경인데도 매번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건 아마도 이 책이 가진 마법 같은 구성 덕분일 것이다. 주인공은 평범한 대학 새내기지만, 매 장마다 다른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평행세계’ 비슷한 색이만, 결코 같은 색이 아닌, 비슷하게 반복되는데도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 오히려 다음 세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진다.

이야기의 구조는 평행세계지만, 단순한 설정 놀음에 그치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 우리가 겪는 “이 선택이 최선이었을까”라는 후회를 천 번쯤 되새김질하는 듯한 느낌이다. 흥미로운 건, 어떤 세계를 택하든 주인공은 늘 어딘가 어긋나 있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좌충우돌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어긋남이야말로 청춘의 본질이 아닐까? 바로 그 점에서 이 책은 무척 다정하다.

글의 리듬은 유려하고, 문장은 때로 숨이 찰 만큼 길지만 묘하게 경쾌하다. 철학적인 사유와 말장난, 웃음과 진지함이 한 문장 안에서 춤추듯 섞여 있다. 속도감 있게 내달리는 문장 속에서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가 의외로 뼈를 때리기도 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진다. 이 복잡한 문장이, 어쩐지 주인공의 머릿속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배경은 교토다. 고즈넉한 골목, 자전거가 달리는 강변길, 어딘가에 정말 있을 것 같은 허름한 하숙집까지. 작가가 실제로 이 도시를 거닐었기에 가능한 생생함이다. 주인공은 매번 다른 선택을 하지만, 늘 같은 교토를 살아간다. 도시 자체가 하나의 고정된 무대처럼 존재하며, 각기 다른 평행세계의 에피소드를 묶어주는 연결고리가 된다.

이 책은 유쾌하고, 엉뚱하고, 살짝 허무(일본 특유)하고, 그러다 다정하다.

아, 인생이란 게 결국 선택의 반복이고, 후회의 집합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는 무엇이라는 걸 이 책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일깨워준다.
그러니 웃고 넘기면서도 한 번쯤은 마음 한켠이 찡해지는, 그런 이야기를 찾는 사람이라면 이 다다미 넉 장 반짜리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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