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있어요
디담.브장 지음 / 교양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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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줄 펭귄 이야기 >

오늘은 퍼스트 펭귄 이후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며칠 전 곧 출간 예정인 디담+브장 작가의 <나 여기 있어요>(2020, 교양인)를 소개한 바 있다. 만화계 성폭력 문제를 다룬 이 책의 주인공은 해당 분야에서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한 '퍼스트 펭귄'이다.

이 책의 첫 장면은 주인공이 성희롱-성폭력으로 인해 곤경에 처한 어느 무명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는 그 사람이 주인공에게 등단 소식을 알리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의 삶을 '피해자'가 아니라 '퍼스트 펭귄'의 위치에서 조명해보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피해자'로서 주인공은 사실 가해자를 제대로, 충분히 응징하지 못했고, 지독하고도 전형적인 문화예술계의 2차 가해에 시달렸다. 그리고 여전히 그 폭력의 자장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반면 '퍼스트 펭귄'으로서 주인공은, 수많은 뒷줄 펭귄들과 그들만의 새로운 세상을 창출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서로의 존재를 알아주며, 남성중심적 헤게모니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서로를 응원한다. 책에서 주인공은 50명 이상의 '뒷줄 펭귄'들과 만났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수많은 여성 무명 작가들, 해당 분야의 후속 세대들은 주인공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해도, '퍼스트 펭귄'의 존재를 알고 있다. 그들은 누군가 만화계라는 거대한 폭력의 유기체와 감히 맞서 싸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고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선배 교수의 직장 내 괴롭힘을 고발한 한 교수가, 가해자로부터 다른 제자와 동료들이 겪은 폭력, 나아가 대학 내 인권 침해를 경험한 다양한 소수자의 목소리를 모아서 매일 페이스북에 쓰고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그것을 아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뒷줄 펭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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