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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넘은 부모를 보살피는 72가지 방법 - 복지 선진국 일본에서 실천하고 있는 노부모 돌봄 프로젝트
오타 사에코 지음, 오시연 옮김 / 올댓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일-간병-생활이 가능한 사회?
노부모를 둔 중장년층 자녀를 위한 돌봄 매뉴얼. 각설하고, 자식이 부모를 간병한다는 것을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지, 온갖 다양한 문제 상황에서 그것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예비하거나 대응해야 하는지, 부모를 비롯해 형제, 친지, 이웃, 지역 사회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을 조금씩 상실해 가는 부모를 위해서 상황별로 활용할 수 있는 공공부분 및 민간부분 서비스를 제시하고 있는데, 일본의 노인 돌봄 체계가 한국의 그것과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원래 매뉴얼이라는 것의 현실 적용 범위에 한계가 있기 때문. 그러나 제도적, 문화적 상황이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많아 일독한만하다. 특히 어느 순간 자식으로서 부모를 보살피는 일이 많아지면서 이런 저런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추천.
책을 읽고 나니, 노인 인구가 급증한다는 것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국가적 차원에서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게 실감난다. 우선, 자립적 생활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일상생활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활동들을 외부로부터 지원받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 상황에 따라 선택해야할 서비스의 종류와 범위가 가히 압도적이다. ‘힘든 일 지원 서비스’, ‘외출 지원 서비스’, ‘식사 택배 서비스’, ‘세탁 대행 서비스’, ‘지켜보기 서비스’, ‘성년후견제도’ 등 이 책에 담긴 제도나 서비스의 유형만도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 게다가 부모와의 소통, 부모, 형제, 친족 간의 의견 조율, 일-간병 양립 등 부모 간병이 시작되면 직면하게 될 온갖 과제들이 산재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부모 간병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점, 부모 간병이 시작되면 자식이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게 매우 버거워질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부모 간병을 일종의 “프로젝트”로 간주하고, 일과 간병을 양립하여 자신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라고 조언한다. “프로젝트”로서 부모 간병이란 사전적으로는 예측하지 못한 문제 상황에 대한 임기응변이 아니라, 일련의 전략적이고 체계적 실천이 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뜻한다. 그러나 “프로젝트”라는 말이 주는 위로는 그 단어의 사전적 의미보다는 그것이 ‘언젠가는 끝날 일’이라는 데 있다. 프로젝트가 길어질수록 모두가 지치고, 누군가 폭발하게 되는 임계점의 압박이 커지니까 말이다.
이 책은 역설적으로 누군가 한 사람이 돌봄을 전담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프로젝트라는 점을 보여준다. 사람을 돌보는 일이 오롯이 개인의 몫으로 남아있을 때, 그 사람의 삶의 무게는 때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폭된다. 일본처럼 노인들을 위한 제도가 어느 정도 갖춰진 사회라도 그것은 마찬가지. 근대 이후 발명된 개인 개념과 자유주의는 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재고될 수밖에 없다. 고령화 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을 앞둔 한국이 “노인들을 위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와 제도 모든 측면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 현실이 너무나 무겁게 다가온다.
사족. “일-간병 양립”이라는 표현이 인상적. "work-life balance"에서 차용한 표현일 터, 이 표현에서 ‘life 생활’이 누락되어 있다. 간병이 시작되면 일-간병-생활 간의 균형이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일-간병-생활의 균형이 가능한 사회, 그것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지금부터 설계해야할 프로젝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