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원할 자유 - 현대의학에 빼앗긴 죽을 권리를 찾아서
케이티 버틀러 지음, 전미영 옮김 / 명랑한지성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저자의 아버지는 2001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7년을 앓다가 돌아갔다. 7년간 집과 병원을 오가며 아버지를 간병한 그녀의 어머니는 심장병 진단을 받자,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두라며 일체의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 책은 그 10여년의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지극히 보편적 상황이지만, 그녀가 건드리는 문제의식은 자못 낯설고 충격적이다. 최근 현대 의학이 만들어낸 죽음의 형식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책들이 더러 나오고 있는데, 그 중 이 책 󰡔Knocking on Heaven's Door󰡕󰡔도시에서 죽는다는 것󰡕(김형숙) 이후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책이다. 저자의 오랜 체험이 늙고 병든 노부모를 둔 딸, 저널리스트, 장기 가족 돌봄 제공자의 관점에서 기술되어 있어 흡입력이 상당하다.

 

일흔일곱 살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 엄마는 정치적으로 무력하고 문화적으로 존재감이 없는 무급 가족 간병인이 되었다. 가족 구성원을 돌보는 일흔네 살 이상의 사람들이 미국 인구의 9퍼센트에 달한다. 60.

 

무단이탈 행태를 보인 남동생들에 대해 내가 느낀 실망,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의학적 결정들, 아직 닥치지 않은, 이름 붙일 수 없는 상실들에 대해 불길한 예감을 품으며 느낀 생경한 슬픔에 휘둘리고 있었으니까. 61.    

 

이야기는 79세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노부모와 중년기의 세 자녀 간의 역할과 관계가 재구성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외면하는 남자 형제들을 대신하여 노모의 간병 동지이자 남편의 역할을 맡게 된다. 엄마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성인이 되어버린 저자와 엄마와의 관계는 간병 기간이 길어질수록 위태롭고 공격적이고 애틋해진다. 분노, 원망, 애정이 복잡하게 얽힌 이 상호의존적 관계에 대한 묘사를 통해 저자가 안내하는 지점은 모든 일상이 간병에 맞춰져 있는 장기 가족 돌봄 제공자들이 어떤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한계에 직면 하게 되는가이다.

 

아버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인지 기능과 신체적 자율성을 잃어가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된다.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오랜 간병에 지쳐버린 어머니는 욕실에서 아버지를 씻기다 폭발하고, 어머니의 손찌검에 아버지는 아이처럼 징징 울어댄다. 상처받은 딸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장기 가족 돌봄 제공자의 상당수가 환자를 학대한 경험이 있고, 그들 역시 정신적·신체적 질병에 취약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여, 그것이 특정인의 일탈적, 예외적 행동이 아님을 강조한다.

 

이 책의 특징은 노인 환자 가족으로서의 체험 세계가 사적 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민영화된 의료 체계에 대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인간다운 죽음에 대한 물음과 통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고령화 세상에서 유병 장수하는 인간을 돌보는 일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부담은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인류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임계 상황에 이르렀다. 사회적 합의가 어떠한 방향으로 이뤄지건 존엄한 죽음’, ‘죽음을 원할 자유는 도덕적 금기로 남아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무더위가 절정이었던 올 여름, 나는 이 책을 두 주 넘게 붙들고 있었다. 나처럼 아버지의 암 발병과 투병,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전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주는 무게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벌써 사반세기가 지났건만 아빠를 돌보면서 받았던 상처는 여전하다. 그러나 이 책을 그렇게 오래 붙들고 있었던 것은 그 기억이 건드려진 탓도 있지만 그 보다는 인간 실존의 바닥까지 닿게 하는 깊고 복잡한 울림을 좀 더 오래 음미하고 싶어서였다.

 

나의 아빠는 돌아가시기 전 한달 동안 밤마다 어서 데려가 달라고 생애 한 번도 찾지 않았던 하느님에게 소리 내어 기도했다. 절박한 마음에 나는 병원에 상주하는 수녀님을 찾아가 아빠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부탁을 했더랬다. 당시 아빠가 돌아가실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해 보지 못했건만 아빠의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간절해졌다. 그러한 경험 탓인지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저자의 간절한 염원이 깊이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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