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생명공학 논쟁 - 생명공학 논쟁으로 본 한국 사회의 맨얼굴 21세기 생명정치 총서 2
김병수 지음 / 알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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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생명 공학이라고 하면 사실 머리에 쥐가 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어렵게만 느껴졌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생명 공학 연구 동향뿐만 아니라 관련 정치 쟁점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등장하고 작동하는지에 대해 기본적 윤곽을 이해하게 됐다

 

1부에서는 줄기세포, 유전자 감식, 유전자 식품 등 누구나 미디어를 통해 한번쯤 들어보았을 키워드/쟁점들을 중심으로 생명 공학 연구가 우리의 삶과 어떻게 밀접하게 닿아 있는지를 서술한다. 2부에서는 세계 최초’, 경제 성장 우선론에 집착하는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어떻게 연구 부정행위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는 황우석 사태로 귀결되었는지 보여준다. ‘황우석 사태는 한국의 민낯을 드러낸 부끄러운 사건으로만 기억되었다. 그러나 시민 사회를 비롯한 다양한 행위자들의 개입을 통해 그동안 가려졌던 연구 부정행위가 밝혀지고 황우석이라는 국민 영웅이 희대의 사기꾼임이 드러나는 과정,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생명 윤리 법이 제정되거나 관련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죽 따라가 보니, 한국 사회의 역동성이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생명공학 지식 구성 과정에 한국 시민 사회가 어떻게 역동적으로 개입했는가를 기술한 3부도 흥미롭게 읽었다

 

소설가 장정일이 오랜 독서 경험의 결과 책의 가독성은 글쓴이의 열정에 비례하더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열대야로 인한 불면의 밤, 새벽 3시에 잠에서 깬 후 읽기 시작해서 5시간 만에 다 읽었다. 이 책이 쉽고 재미있게 읽힌 이유는 생명 공학과 관련된 기본적 정보들이 핵심 쟁점을 중심으로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생명 공학 감시 운동의 깊이 참여했던 저자의 열정 때문인 듯하다. 좋은 글은 특정 정보에 대한 전달 능력 외에도 호기심을 갖게 하거나 질문을 던지게 하는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고 본다

 

미국에서 한 남자가 일곱 건의 알리바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DNA 검사만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억울하게 복역한 사례는 유전자 중심적 사고가 사회적으로 확산될 때 개인에게 야기될 수 있는 수많은 비극 중 하나다. 이런 일은 한국에서도 이미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SBS에서 방영한 한 다큐 프로그램에서 명백한 알리바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DNA 검사로 인해 범죄자가 된 한 10대의 사례를 다룬 바 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유전자 결정론이 얼마나 나의 의식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에서는 기존의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인지 프레임을 대체할 만한 DNA 검사의 오류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제시하지 않아,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한국 사회에서 생명 공학과 관련되어 형성된 대중의 상식 혹은 고정관념을 다룬 책이 있다면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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