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의 거짓말 놀 청소년문학 22
발레리 쉐러드 지음, 김은경 옮김 / 놀(다산북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단짝 친구가 자신의 새아버지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친구를 위해 거짓 증언을 해 준 주인공. 친구의 실체를 깨닫고 용기를 내어 잘못을 바로잡아가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또래 집단, 가족, 경찰 사이에서 겪게 되는 일들을 스릴 있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무슨 범죄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책을 읽을 때는 주인공이 겪는 혼란, 당혹감, 분노, 두려움에 공감하게 된다. 단짝 친구가 사실은 다른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조정해왔고, 그런 방식으로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악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주인공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니까.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문득 이 아이는 단짝 친구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왜 의심하지 않았던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흔히 우정, 신뢰라고 불리는 친구들 사이의 친밀성은 어떤 경우에는 상호의존이다. 주인공이 단짝 친구에게 그동안 가졌던 절대적 믿음은 의존의 한 형태로 보인다.

 

어쨌거나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 우리 사회에 있었던 살인 사건, 한 고등학교 남학생을 그의 교생 선생님이었던 한 여성이 학대하고 살해한 사건이 떠올랐다. 이 사건에서 가장 섬뜩했던 부분은 애초에 그 남학생이 짝사랑했던 교생과 그 사건의 당사자인 교생 간의 관계다.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을 철저하게 조정했고, 조정당한 사람은 자신이 가장 믿고 따르는 친구의 실체를 제대로 모른 채 살인자가 됐다. 그렇게 오랫동안 조정되어 온 자는 스스로 자신의 교주와의 관계를 정리하기 어려운 법.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은 또래 집단에서 교주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단짝 친구에게 의심을 품고,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어긋나 버린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감당하기 힘든 갈등, 모함, 위험에 처하게 되고, 상당한 대가를 치르긴 하지만. 인간이 현실에 직면하기 위해서는 의심과 용기라는 덕목이 동시에 요구된다. 주인공이 교주의 주술에서 서서히 깨어나 과감히 맞설 수 있었던 건, 그러한 덕목을 지닌 또 다른 친구, 자신을 믿고 지지해 주는 부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누구나 그런 자원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10대는 친구의 영향력으로부터 가장 취약한 시기이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리뷰에서 말한 바와 같이 10대 자녀에게 읽히고 싶은 책일 수도 있겠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문득 어느 순간부터 작은 교주들이 빈번하게 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은 교주'와 추종자의 출현 현상은 단지 10대에만 국한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삶에서 교주의 주술에 의지하지 않으면 버거운 어떤 것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의존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자원(그것이 무엇이건 간에)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책을 덮고 나서 이 소설이 말하고 있지 않지만 떠올리게 하는 것, ‘사회적인 것에 대해 거듭 질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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