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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탈출, 하나의 꿈 ㅣ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14
이정학 지음 / 텍스트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현재 우리 사회 인구구성비에서 탈북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존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책을 고른 이유는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어떻게 살았고, 그 탈북에 이르기까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사실 그간 이념과 종교를 떠나서는 탈북자에 관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
대부분의 탈북자가 그러하듯 저자 역시 기독교의 도움을 받아 탈북한 청년. 이야기는 한국에서의 정착 과정 보다는 북한에서 어린 시절과 청년기, 탈북에 이르게 된 과정, 탈북 후 중국에서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종교적 색채가 배제된 점이 맘에 들었다. 78년생인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는 자못 충격적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공안 기능을 제외한 국가 기능이 거의 정지된 상태에서 그간 말로만 듣던 북한의 경제난 속에서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생활고, 국가 경제를 돌릴 물질적 기반이 거의 바닥난 상태에서 국가가 요구하는 물품을 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상황, 군대에서 아사 직전에 병든 몸으로 귀향한 저자,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수난...이 모든 상황은 단지 “굶어죽지 않기 위해 탈출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총체적 동기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처럼 양 체제를 모두 경험한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폐타이어의 역할을 해야 한다. 폐타이어는 경제적 값어치가 별로 나가지는 않지만 배와 부두 사이의 충격을 완화시키는 엄청난 역할을 한다. (……) 통일 이후에 있을 북남 갈등을 완화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저자는 북한 독재 체제가 무너지고 통일이 이루어지면, 탈북자들이 동란 이후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삶을 살아온 남과 북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오히려 탈북 단체들이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유인물을 대형 풍선에 담아 보내는 풍경이 떠올랐다. 자신의 고향, 떠나온 곳에 저주의 말을 퍼붓는 사람들의 심경은 어떤 것인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지독한 수난을 겪은 이들에게 우선 필요한 건 위로와 환대가 아닐까. “북남 갈등을 완화시키는” 사명이라는 짐은 이미 큰 고통을 겪은 이들이 지기엔 너무 외롭고 힘든 요구가 아닐까. 북한 체제 전복과 비난을 사명으로 삼은 이들과 저자처럼 “북남 평화”를 사명으로 삼은 이들, 후자보다는 전자가 현실적으로는 대세임에 분명할 듯. 그리고 서로 다른 사명을 품은 이들 사이의 간극에 보이지 않는 가장 큰 힘은 역시 이들을 품는 남한 사람들의 시선과 태도, 통일의식, 역사관일터. 그럼 저자의 꿈이 이뤄지기 위해서 이웃으로서 우리는 어떤 뜻을 품어야 할까.
노트. 저자의 유년기 학교생활을 보니, 남자 아이들의 남성성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지금 남한의 남자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 북한 아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왜 이리 호전적 남성성을 추구하는 것일까. 아마도 물리적 힘이 거의 유일한 생존을 위한 사회적 자원이기 때문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