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민중생활사연구단에서 펴낸 한국민중구술열전(총46권) 별책(47번째 책). 1920년대~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구술사 시리즈에서 이 책은 구술자가 일본인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 듯. “저는 조선인 아이들을 일본인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괴로워했습니다” 구술자 스기야마 토미(여성, 89세)는 1921년에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대구에서 교사를 지내다가 일본으로 이주해 살고 있다고. 일본의 패망 후 부모님의 고향으로 돌아가 정착해 살면서 그녀는 조선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죄의식으로 괴로워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세대 일본인들의 공통적 정서 중 하나가 식민지 조선에 대한 향수일 터.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1936년생인 나의 아버지는 일제 치하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당시 친구들끼리는 나이가 들어서도 창씨 개명한 일본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고 한다. 언젠가 아버지는 내게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학교에서 어쩌다 실수로 조선말을 하면 담임이었던 일본인 여선생님이 크게 혼내는 대신 머리를 살짝 쥐어박았다고 했다. 1945년까지 대구에서 교편을 잡았던 스기야마 토미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내 아버지의 유년기와 구술자의 삶이 오버랩되었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구술자는 젊은 시절의 기억이나 에피소드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다. 반면, 조선은 당연히 일본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던 사람이 일본의 패망 후 어떤 계기로 조선에 대한 미안함과 죄의식으로 괴로워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간단한 에피소드로만 다뤄져 있다. 그것이 좀 아쉽기는 했지만, 식민지 시절 경북 지역에서 교편을 잡은 구술자의 삶을 통해 내 아버지의 유년기를 추측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구술사 혹은 자서전 장르가 주는 재미는 어디서 오는 걸까? 그건 서사에서 땅의 기운, 사람들의 혼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구술자는 24살까지 자신을 키워준 조선의 자연과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했다. 89살의 그녀가 자신이 죽으면 제 영혼은 꼭 조선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돌아가시기 전 몇 달 동안 매일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었던 아버지처럼. 자신을 꼭 고향의 산에 묻어달라던 아버지의 유언, 생의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커졌던 내 아버지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