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난 (반양장) - 새로운 빈곤, 오래된 과제
김수현.손병돈.이현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가난’, 특히 한국 사회의 신빈곤 현상에 대해 이보다 더 잘 정리한 책이 또 있을까 싶다. 3명의 저자가 일반인을 위해 작정하고 쓴 아주 친절한 책이다. 교과서처럼 잘 정리가 되어 있고, 새로운 빈곤 현상을 지칭하는 새로운 용어나 개념을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사회과학 서적임에도 저자들의 ‘가슴’이 감지된다. 그렇다고 독자의 감성이나 도덕성에 호소하는 화법을 구사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자료와 사례를 근거로 최근의 학문적 논의의 흐름을 정교하게 엮어서 한국의 빈곤 현상에 대한 인식론적 지도를 제시한다. 읽고 나면, 빈곤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신문 기사나 미디어 등을 통해 어렴풋이 가늠하고 있을 문제의식이 명료해지고, 사유의 지평이 더욱 확장된다.

책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예전에 과거 우리 부모님 세대도 가난했다. 그러나 지금의 가난과 그때의 가난은 질적으로 다르다. 당시엔 계층의 수직 상승이 가능했고, 교육은 빈곤에서 벗어나는 사회적 기능을 했다. (이른바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시대였다) 또한 가난해도 서로 아이들을 돌봐주고, 어려운 일을 함께 해결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 문화, 사회적 연계망이 작동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일을 해도, 국가 경제가 성장해도,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일자리가 없어서 가난하고, 일을 해도 가난하다. 교육은 오히려 빈곤과 양극화를 고착시키는 역기능을 하고 있고, 도시 개발로 가난한 사람들이 보금자리에서 내몰림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파편화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은 가족,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고립된다.  

한국 사회의 빈곤은 상식의 수준을 넘어서 ‘빈곤 위험 사회’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빈곤은 단지 물질적 결핍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배제와 소외의 문제라는 것, 가난을 사회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전제되어 있는 한, 결코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을 불가능하다는 것이 저자들의 메시지다.   

 

결국 우리의 빈곤 대책은, 조금 비꼬아서 표현하면, ‘가난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지원하는 정책’에 그치고 있다. 마음의 상처를 주는 지원은 진정한 의미의 빈곤정책이 아니다.  
복지는 ‘사람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다. 살피고 듣고 필요한 무언가를 전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p. 291

 

아울러 저자들은 빈곤선 이하의 가난뿐만 아니라 빈곤선 주변에서 진입과 탈출을 반복하는 ‘반복 빈곤층’에 주목한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빈곤 극복 대책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3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 그리고 고용 불안정을 해소할 수 있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의 꿈을 감히 빈곤 극복이라고 정하자. 한국 사회의 놀라운 역동성이 빈곤 극복의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해봄 직하지 않은가? p. 304

 

빈곤 대책 프로그램 중 인상적이었던 사례는 지역사회 구성원의 사회자본 형성을 주요 전략으로 삼았던 영국의 ‘동네 재생(Neighbourhood Renewal)’ 프로그램이다.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국가 정책 수준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영토에서 사회적 관계망을 회복하고 공통의 자원을 만들어내는 풀뿌리 정신과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빈곤 문제 해결의 가장 큰 자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좋은 책이다. 책의 가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 같아 안타깝다. 많이 읽혀져서 저자들의 문제의식이 널리 공유되면 좋겠다.

사족. 읽으면서 놀랍고도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노숙인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다. 노숙인 중 60%는 평생 가족을 형성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노숙인 중 30% 가량이 고아원 출신이고, 60% 가량이 결손가정이나 알코올 의존증 부모를 두었거나, 가정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빈곤 문제가 더욱 복잡해지고 있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더욱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만이 이 모든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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