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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아빠의 몰락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황해선 옮김 / 창비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현대 국가에서는 물질적 복지의 평균 수준 보다 자원이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정도가 치명적 폭력 수준을 결정하는 강력한 요인이다.” - 윌슨과 바스데브- 이 책의 3장.
이 책의 요지는 주로 소득 분배의 불평등 심화가 양극화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재정, 복지, 행복 등 총체적 차원에서 중산층의 몰락(falling behind)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저자는 승자독식의 급여 구조가 전체 노동 시장에 확산되면서, 지난 30년간 대부분의 이자 및 배당수입이 소득분배의 상위 5%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적 질서에서 저자가 핵심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소득 분배의 불평등 문제가 경제적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점, 이른바 ‘지출 연쇄’라고 명명한 비효율적 지출 패턴을 야기시켜 중산층의 재정 압박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지출 연쇄’란 상위 5% 부자의 소득 증가가 사회 전체의 소비 참조틀을 변화시켜 결과적으로 모두가 손해 보는 지출 경쟁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구체화하자면, 부자의 소득이 증가하면서 부자의 소비가 증가하고, 이는 중산층의 소비 참조틀에 영향을 주면서 가난한 시민들에게도 지출 연쇄 발생하고, 중산층 가계의 재정에 압박을 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4장 “무엇이 우리를 소비를 내모는가”에서 이러한 소비 패턴의 변화를 ‘참조틀frame of reference’ 및 ‘정황context’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감정 보다는 소비자의 수요를 유발하는 일상적인 품질 판단의 원천인 context와 구체적 보상이 주어지는 상대적 지위에 대한 관심이 소비 패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소비에 대한 인간의 동기는 역사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구성되며, 동시대 사람들의 핵심적 소비 동기는 상대적 지위에 대한 관심이며, 따라서 지위재, 즉 자녀교육, 가시적 소비, 옷차림과 같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소비(context에 가장 민감한 소비재)가 급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 패턴에서 중산층이 몰락하게 되는 이유는 단지 재정적 압박 차원에 그치지 않고, 늘어난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저축이 감소하며, 부채가 증가하고, 통근시간 증가, 수면부족, 공공서비스 삭감 등으로 총체적 몰락에 이르게 된다. 그는 정황에 민감한 재화에 너무 많이 지출하게 만드는 승자독식시장이 점점 더 확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이러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누진소득세 보다는 누진소비세를 제안한다. 누진소득세에서는 높은 한계세율이 저축과 투자의 동기를 약화하지만, 반대로 누진소비세에서는 높은 한계세율이 실제로 그런 동기를 강화한다. 이를테면 ‘적절한 집’에 대한 사회규범이 달라지게 되고, 이는 지출 연쇄를 축소하여 중산층 가계의 재정압박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얼마 전 해외 지사에 근무하는 지인을 방문하고 온 한 친구가 들려준 얘기. 우리나라 기준으로보자면 상당히 호화스런 저택에서 살고 있는 지인을 부러워했더니, 그 지인 왈, 그 지역 한인들 모임에서 ‘어느 정도 사는 수준’이라는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어울릴 수 없기에 과도한 월세부담을 안고라도 이런 저택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속사정이 있다는 게다. 요즘 중산층, 맞벌이의 몰락을 다루는 책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책들이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는 건 양극화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지위를 누리고 사는 계층이라고 여겨지는 중산층 삶의 실제 모습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위기상황 혹은 사방에 낭떠러지가 있는 유사-위기 상황, 즉 언제나 몰락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야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그것을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일상적 삶의 총체적 상황과 연결지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 ‘어느 정도 사는 수준’이라는 게 부자의 그것에 맞춰져 있고, 그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것을 쫓아가는 한, 우리 모두 몰락의 가능성이라는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셈이다. 소득분배의 불평등사회에서 누가 과연 이득을 볼까? 저자의 시각을 빌어보자면 우리 사회는 최상위층을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