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ing the Black Body: Race, Reproduction, and the Meaning of Liberty (Paperback)
Dorothy Roberts / Vintage Books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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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페미니스트 법학자의 관점에서 미국 역사에서 흑인의 재생산권이 어떻게 훼손되어왔는지를 조명한 책. 노예제도 시기부터 1990년대 복지개혁법 시기까지 아우르고 있다. 특히 저자는 흑인 여성의 몸, 자율성, 아이를 낳아 키울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어떻게 복지 ‘개혁’의 이름으로 통제되어 왔는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구체적 살펴보면, 1) 흑인 여성에게 행해진 강제적 산아 제한, 2) 약물 복용 경험이 있는 빈곤층 흑인 여성이 부모가 되는 것(즉 아이를 갖는 것)을 범죄화하는 것, 3)복지 수당을 받고 살아가는 흑인 어머니들에게 오명을 부여하고 그들을 폄하하는 담론, 4)부유한 백인중산층 부부들에게 새로운 재생산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백인 중산층 불임부부에게 인공수정 비용을 지원하는 것) 등이다. 저자가 시종일관 강조하는 건 흑인 여성의 시민권은 바로 재생산권에 대한 통제를 통해 제한되어 왔다는 점이다.

저자는 형법, 가족법, 시민의 자유 등을 강의하는 노스웨스턴대학 로스쿨 교수. 물론 흑인 여성이다. 책을 읽다보면 분노에 찬 저자의 열정이 느껴진다. 이민자들의 나라, 미국에서 계급 문제, 시민권 문제는 항상 인종화 racialization, 즉 백인의 시각에서 타인종을 고정관념화하고, 폄하하는 과정과 맞물려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흑인 여성의 재생산권에 초점을 맞춰 바로 그 과정이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지를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선택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이 시사하는 점은 클 것 같다.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명목 하에, 국가 권력이 복지수혜자를 열등한 타자, 비시민의 지위에 놓이게 한다는 점, 또한 복지수혜자에 대한 오점화(stigmatization)와 잠재적 범죄자화(criminalization)를 동반하는 복지 제도에 대한 비판 등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국가가 누구의 출산을 지지하고 누구의 출산을 가로막고 있는가의 문제에 관한 저자의 비판과 관련해서, 저출산의 문제와 관련된 한국 정부의 정책이나 시각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예를 들면, 중산층 불임부부에 대한 재정적 지원 정책을 도로시 로버츠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계급편향적(웬만큼 사는 사람들에게 이로운)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촉발한 낙태 논쟁, 소모적이고 저급한 낙태 찬반 이분법이 한국 사회의 빈곤 및 계급 문제, 재생산권 및 시민권 문제 등에 대한 논의들을 잡아먹고 있는 이 상황에 이 책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많은 지점들을 사유할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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