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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섭의 길
소지섭 글.사진 / 살림 / 2010년 8월
평점 :
통일전망대
제 의지와 상관없이 60년간 혼자였다니, 기분이 묘하다.
노동당사(옛 조선노동당 철원군 당사 건물)
상처와는 상관없다는 듯, 벽과 바닥을 뚫고 나온 풀들이 보인다.
이름 모를 생명들이 자라고 있었다.
진행하고 있는 연구 때문에 내용이 몹시 사나운 자료를 읽기 시작했는데, 몇 시간 읽지도 않아 마음이 지치기 시작했다. 성균관스캔들의 박유천군에게 반해버린 친구는 거금을 주고 그의 사진집을 샀다는데, 나는 어쩐지 이 책이 끌렸다. 표지를 보는 순간, 뭔가 확 끌어당겨지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보고 나면 ‘눈이 시원해질 것 같은 기대감’도 있었지만, 그 보다는 소지섭이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물론 사진사를 동반한, 기획의도와 연출이 분명히 반영된 사진집이긴 하지만, 8명의 동행과 함께 한 여행이었다는 점이 좋았다. 감수성 예민한 이 청년에게서 느껴지는 고립감은 간혹 당혹스러우리만치 깊다. 그 고립감이 이 청년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보는 내가 갖게 되는 감정인지 모르겠지만...다른 사람 마음속으로 들어가 확인해 볼 수 없는 바에야, 후자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어쨌건.
모델, 배우라는 직업이 늘 타자에 의해 관찰되고, 보여 지는 방식으로 세상과 만나는 데 익숙한 일이 아닌가. 자신과 같은 위치에서 바라보고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 여행이 이 사람에겐 꼭 어쩐지 절실했을 것 같다.
사진 중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 옛 조선노동당 당사 안, 총알 자국이 박힌 건물 바닥에 앉아 그 땅에서 자라고 있는 풀들을 바라보며 만져보는 사진.
소지섭을 아끼는 내 마음은, 젊은이를 응원하는 이모 같은 심정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그건 내 지나간 청춘에 대한 연민이자, 그 시기를 견뎌준 나 자신에 대한 응원이었던 것 같다. ‘길’에 대한 열망을 간직한 소지섭, 이 청춘이 보기에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