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하는 뇌 - 여자의 뇌를 자극하는 화장의 비밀
모기 겐이치로 & 온조 아야코 지음. 이근아 옮김 / 김영사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요즘 ‘뇌’ 관련 서적들이 뜨고 있는 모양이다. 제목에 ‘뇌’가 포함된 신간들의 마케팅은 대부분 자기 계발 담론에 편승한 듯하다. “이제 아름다워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똑똑해지기 위해서 화장하라!”라고 말하는 이 책의 표지 마케팅도 마찬가지. 점점 썰렁해지는 출판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인 듯하지만, 어쨌든 통속적인 제목과 마케팅에 비해 내용은 의외로 충실하다. 책을 읽으면서 광고와 책의 내용이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어 좀 황당한 기분이 들기도.

뇌과학자 저자 2명이 여성의 ‘화장’ 행위가 자아의 형성, 인지적 기능, 사회성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한 책. 화장이라는 행위와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여성성에 대한 사회과학적 논의(주로 비판적인)는 많이 읽어봤지만, 뇌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은 처음이다. 화장품 회사의 펀드로 진행된 연구이기에 이 연구 자체가 결국 화장품 마케팅에 도구적으로 활용되기 위한 건 아닌가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과학자인 저자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발휘하여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는 한 표를 던지고 싶다. 화장이 높은 수준의 지적 활동이라는 점, 그것이 인간의 사회성을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라캉의 거울 이론, 시몬느 드 보봐르의 <제2의 성>, 심지어 일본의 고대 신화까지 동원하여 이야기의 얼개를 짜고 있다. 과학적 개념과 인문학적 지식이 자연스럽게 교차되면서 하나의 새로운 내러티브가 만들어지는 것.

일본 학자가 쓴 책을 읽을 때 이런 현상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쌓인 거대한 ‘앎’의 역사 토대 위에서 사유의 깊이가 나온다는 느낌. 그래서 이야기가 탄탄하고 깊이 우러난 느낌을 준다. 학자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가지 않고도 자국 내에서 석학이 나올 수 있는 구조와 문화적 분위기가 부럽다. 일본 내의 지적 기반과 토대에 대한 승인과 자부심이 엿보인다. 그래서 서구의 지식을 인용하더라도 거기에 끌려가지 않고 끌어온다는 느낌을 준다.

한편으로 이 책이 주장하는 내용만 보면 대단히 일본적인 텍스트임에는 분명하다. 저자들이 화장이라는 행위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감춤의 미학과 여성성을 결부시켜 찬양하는 태도, 이 모두 인공적인 것에 뿌리를 둔 일본의 미학적 전통을 연상시킨다. 어쨌거나 외모를 가꾸는 행위의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시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은 남는다. 사람들이 화장하고 성형수술을 하는 이 거대한 흐름은 점점 더 옳고 그름의 잣대로만 평가할 수 없는 복잡한 영역으로 가는 듯하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러한 행위를 통해 어떻게 새롭게 구성되고 있는가를 주목하게 된다.

그런데 저자들에 따르면 화장하면 할수록 지적으로 감성적으로 성숙해지고 사회성도 발달하고 성숙한 사회가 된다. 개인, 나아가 사회 전체의 메타 인지력, 사회적 지성이 발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장이 일상화되고 화장 기술이 발달한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된다고 넌지시 주장하고 있는데, 과연 그럴까? 외부의 기준에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는 인간의 자아를 설명할 때 마냥 좋게만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 남의 눈치를 보는 행위에서 사회성 발달만 긍정적으로 평가했지, 자아의 ‘소외’라는 요소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게 이 책의 흠이라면 흠이다. (화장업계의 돈줄이 연구 결과물에 어떻게든 작동한 게야!) 뭐, 그렇다고 화장에 관한 모든 저서가 화장 행위의 양면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우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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