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26674
http://www.imdb.com/title/tt0082280/

그는 감독이 영화를 만들고 관객이 영화를 관람할 때 '본다'와 '느낀다'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려면 언어적으로 설명하기보다 보는 이들이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 때의 느낌이란 시각적 자극을 준다는 뜻이 아니라 감각을 일깨운다는 뜻이다. 출처: http://movie.naver.com/movie/mzine/read.nhn?section=main&office_id=001&article_id=0002352850

오구리 고헤이 감독이 2008년 한국에 왔을 때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라고. "감각을 일깨운다"...내 몸에 뭔가 와서 탁 치는 소리가 들린다. 자극이 어느 지점에서 촉발되었건 결국 깨달음은 몸에서 일어나는 진동과도 같은 것. <진흙강>은 일본의 전후 1955년을 배경으로 1981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감독의 첫 번째 영화라고 하는데, 첫 작품 부터 이런 '메이사쿠'를 만들다니, 놀라울 뿐.

자막이 없어서 (그것도 중반부터 보기 시작하여) 내용의 디테일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자막 없이 그냥 분위기를 감상하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흑백 영화가 주는 독특한 분위기가 가미되어 어쩐지 불교적 색채가 느껴진다. 전후 10년이 지난 1955년은 본격적인 경제성장이 가속화될 무렵이다. 전후와 근대화가 교차되는 1955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의 몇몇 장면에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일본 영화들의 데자뷰를 경험했다. 예를 들면, 마지막 장면. 키이치의 배가 어디론가 끌려가는 걸 목격한 주인공 노부오가 강가를 따라 그 배를 절박하게 따라가는 장면. 친구 키이치의 이름을 처음에는 무력하게, 들릴 듯 말듯 작은 목소리로 부르다가, 더 이상 그 배를 따라갈 수 없게 되자 다리 위에 서서 큰 소리로 부르는 장면. 그러나 친구 키이치도, 그의 누나 긴코도, 그들의 어머니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배는 점점 멀어져 가는 장면. 딱, 나루세 미키오의 미다레루(1964)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켰다. 또한 노부오의 친모를 만나기 위해 교토로 가는 기차에서 노부오의 아버지가 읽는 신문 기사 "이제 전후에서 근대화로 나아가야할 때"라는 글귀도 그렇고.

전후의 상처는 봉인되고, 근대화는 더욱 가속화된다. 따라가려고 하지만 따라잡을 수 없는 것과 멀어져 가는 것의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 바로 그 시점을 줌인 한 듯한 영화. 영화는 궁금증을 자아내지만 말해주지 않는다. 말에 깔려 죽은 남자의 시신을 보면서 "10년 전에 내가 죽었어야 했다"고 되뇌인 노부오 아버지의 상처에 대해서도, 키이치의 아버지의 생사에 대해서도, 그외 부모들이 감추고 있는 비밀에 대해서도...

이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된 것. 왜 그렇게 일본 영화, 드라마, 소설에 '봉인'과 '밀실' 메타포가 많은지를. 단지 일본이 섬나라이기 때문에 유래된 일종의 폐소공포증만은 아닐터. 놀라운 것은 그것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오구리 고헤이 감독 영화를 더 찾아보고 싶네. 일본인 아버지와 재일 교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재일 교포 아내를 두고 있다는데. 마음이 가기 시작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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