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의 시간 - 강만길 자서전, 2010년 제25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강만길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평생 역사학자로 살아온 사람의 자서전이라면 조금 지루하거나 건조할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내겐 여러 면에서 ‘재미’를 가져다 준 책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한 인생’을 살아낸다는 것이 주는 묵직함, 더욱이 그 한 인생의 마감을 앞두고 스스로 돌아본다는 것이 주는 진지함, 아마 모든 자서전에는 이런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의 시간>은 1930년대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에 ‘국민학교’를 다녔고, 6.25 동란, 4.19, 5.16, 광주항쟁 등 정치적 격변의 시기를 살아온 우리 부모의 세대 이야기이기에 감회가 달랐던 것 같다. 또한 바로 우리 윗세대의 이야기이건만 그 구체적 경험 세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는 점도 새삼 깨닫게 된다. 

지식인과 지성인을 나누어서 개념화한다면, 만고불변 ‘역사의 길’을 제대로 아는 식자만이 지성인의 범주에 들 것이며, ‘역사의 길’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식자는 한낱 지식인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266~267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뜻하지 않은 고초를 겪으면서 본인의 학문 방향이 바뀌게 된 경위였다. 당시는 현실 정치와는 거리를 둔 채 학문의 영역에서 제 갈 길을 가고자 했던 학자들마저 군사독재의 ‘독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기였다. 하물며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학자나 지식인들이 겪었던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저자가 겪었던 고초는 역사학자로서의 학문적 소신과 견해를 드러낸 것이 문제가 된 것이었다. ‘생각하는 것이 죄가 되었던 시대’에 자유로운 학문적 사유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지성인’과 ‘지식인’의 개념에 대한 저자의 구분 방식에 공감이 갔다. 저자가 말하는 ‘역사의 길’이란 지식인이 가져야할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 역사적으로 조명된 바 없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저자 특유의 시각으로 들려준 것도 좋았다. 특히 월북한 학자들이 처했던 상황이나 동기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치적 신념과 무관하게 학자로서, 혹은 직업인으로서, ‘제 갈 길을 가고자 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월북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저자의 관심이 내게도 전이되었다. ‘좌우의 이분법’ 틀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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