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 선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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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선언>의 전문을 읽긴 했지만, 정작 그 사람 됨됨이에 깊은 인상을 받은 건 신문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나서였다. 선언문의 형식이라는 게 어떤 일련의 과정에 대한 최종적 판단과 결정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그 과정에 이르는 복잡한 여정의 단상들과 여운들을 담기엔 한계가 있다. <김예슬 선언> 자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또 가슴에 깊은 파장을 남겼지만, 인터뷰에서 그 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 그 과정에 이르는 치열한 사유의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김예슬씨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구입했지만, 정작 그 내용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김예슬 선언>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배경을 좀 더 상세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날 때부터 온전한 인간이었던 내가 왜 초등, 중등, 고등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12년 동안 학교 교실에 가둬져 왜 대부분의 시간을 읽어버려야 하는지, 그게 왜 의무가 되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하나 뿐인 경주 트랙이 아닌 수많은 길이 난 야생의 초원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며 스스로 배워가는 것이 왜 꿈일 뿐이어야 하는지 나는 정말 묻고 싶다. p56.


그.러.나. 기대 이상이었다. “정말 인물이구나!” 25살의 젊은이가 쓴 글이라고 보기엔 세상을 읽어내는 혜안이 감탄을 자아낸다. 저자는 주변의 일상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갖고 있지만, 그의 글에서 흔히 똑똑한 사람이 빠지기 쉬운 자만이나 도덕적 우월감 같은 치기는 보지 못했다. 그는 ‘대학, 국가, 시장이라는 억압의 3각 동맹’이 만들어내는 무한경쟁과 질주의 트랙에서 자신의 불안하고 모순적인 위치를 예민하게 인식하면서, ‘큰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대학생)’에게 사라져버린 물음들을 되찾자고 제안한다.  

절절하고도 치열한 이 젊은이의 목소리가,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열망, 배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바람이 문장 마다 스며있다. 시대의 모순과 자신의 삶이 맞닿아 있다는 자각, 자기 앞에 놓인 무거운 고민을 직면하는 힘, 그 치열함과 진정성에 깊이 감동했다. 이렇게 내 가슴을 떨리게 만든 책은 정말 오랜만이다. 재생지로 만든 문고판 크기의 이 작은 책이 내 영혼에 큰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따뜻한 가슴, 시대에 맞서는 지적 패기와 용기를 가진 이 명민하고 열정적인 젊은이에게 홀딱 반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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