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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 모티브북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노동계급 출신으로 지식인이 된 사람 중에는 유년기 경험을 학문적 자원, 혹은 참조 지점으로 삼아 논의를 이어가는 학자들이 더러 있다. 바바라 에렌라이히의 『빈곤의 경제』, 리처드 세넷의 『신자유주의와 인간성 파괴』를 읽어보면 세상에 대한 그들만의 독특한 인식론을 엿볼 수 있다. 지식인 엘리트로서 이들이 계급의 경계를 넘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 세계, 부모 세대의 세상과 자신이 향후 소속될 세상 사이에서 겪은 혼란과 모순, 그리고 온갖 딜레마로 점철된 경계 영역에서만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세계관이 그것이다.
벨 훅스는 서문에서 그동안 이 책을 쓰는 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놓는다. 비가시적이고 비언어적 상태로 남아있던 분열과 상흔의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이 저자에게 쉽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치열함’에 있다. 자신의 유년기 경험, 무엇보다도 계급적 경계 넘기가 보장되어 있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겪었던 소외감, 가족과 세상 사이에서 느꼈던 단절감 등은 단지 개인적 경험, 사적인 서사로 기술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계급, 인종, 정체성의 정치경제와 문화논리가 어떻게 서로 맞물려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참조 지점이다.
단상 1.
재분배(경제)와 인정(문화)의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적 구분이 개인의 경험 속에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이는 특히 타자화된 사람들의 경험을 살펴볼 때 그렇다. 벨 훅스는 빈곤, 계급의 문제와 인종의 문제를 결합된 방식으로 설명한다. 특히 12장에서 부동산과 인종 차별의 문제를 결부시키면서 제시한 대도시 주택 정책의 사례들을 통해 부동산 분야에서 자행되는 ‘인종차별적 계급 투쟁’의 문제를 신랄한 어조로 비판한다. 벨 훅스는 Mary Barefoot, Dennis Altman의 논의를 끌어와 백인 여성이나 성적 소수자가 갖고 있는 지위 향상의 꿈이 유색 인종 퇴출의 촉매제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계급화와 인종화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미국의 주택 정책에 대한 분석은 한국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주목해 볼 만 하다. 다소 억지스럽더라도 이 논리를 한국의 상황에 이식시켜 분석해 보면,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바야흐로 전 국민을 사로잡은 ‘부와 권력에 대한 꿈’이 가난하고 불안정하고 타자화된 사람들로부터 삶의 터전을 빼앗고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격리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없는 자의 서러움은 이러한 퇴출과 추방 과정에서 발생하는 낙인 효과가 아닐까?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이렇듯 부동산을 통한 계급화 프로젝트를 통해서 구축되니까 말이다.
단상 2.
p55. 내가 자라면서 최고로 소중히 여긴 가지들이자 나의 가장 소중한 부분인 근면, 정직, 출신에 관계없이 모두를 존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도 학업을 마칠 수 있을지 언제나 의심스러웠지만, 결국 노동 계급에 대한 충성을 여전히 간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급적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길에 서 있었다. 그곳에서는 온갖 모순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계급 문제를 다루다보면 충돌과 대립을 피할 수 없다. 나는 언제나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다시 살펴보아야만 했다.
p59.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라는 신의 가르침과 매일 부딪히는 세속적인 상황은 필연적인 마찰을 낳았다. 현실에서 가난한 사람은 종종 수치심을 유발하는 괴롭힘과 굴욕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수치심’에 관한 내용이다. 가난한 사람들, 성적 소수자들이 자신이 속해 있던 계급 및 공동체를 배반하고 주류에게 동일시하는 현상. 저자는 계급 간의 연대가 가능하리라는 저자의 기대와 희망이 철저하게 무너진 그 폐허 위에서 새로운 인식의 틀을 구축한다. 그것은 바로 타자화된 사람들이 겪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자들로부터 받게 되는 동정과 멸시, 굴욕은 왜 그들이 계급 배반의 지향성을 갖게 되는가를 이해하는데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것. 얼마 전 심리학자인 나의 지인이 영화화된 책 <더 리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겪는 부정적 감정의 근원에는 놓여있는 것이 수치심이라는 견해가 있다고 말했다. 자세히는 몰라도 추측컨대 설득력이 있었다. 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던 건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세상에 귀속됨으로써 쉽고 편안한 길을 택하지 않고,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그 모순과 분열의 경험을 독특하고 창의적인 인식론으로 전환시켰다는 점이다. 벨 훅스의 ‘사유하는 힘’이 드러나는 지점이었다.
사족. 경계인의 인식론, 디아스포라 인식론을 이야기하는 서경식의 글을 읽을 때, 그의 논의가 주는 통찰력과 매력에도 불구하고 인식론적 특권을 주장하는 방식에 살짝 나르시시즘이 감지될 때가 있다. 벨 훅스에게서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어쨌건 이 책을 읽고 벨 훅스에게 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