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렛 할머니의 행복한 백년
블레어 저스티스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요즘 내가 읽는 책들은 주로 마음의 평화와 행복에 관한 것들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최근 몇 년 사이 많이 변했구나. 예전에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 세상에서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은 무엇인가’하는 문제가 중요했었다. 이 경쟁적이고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변화되어가고 있는 세상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는 것,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음으로써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걸 증명하고자 고군분투했다고나 할까.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일이 훌륭하고 고상해 보여서였을까? 나의 에너지는 느끼는 일 보다는 판단하는 일에 주로 쓰여졌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 무언가를 비판하는 일이 재미없어졌다.

이성의 칼을 휘두르는 일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게 느껴졌고, 그런 일들을 내 몸과 마음이 점점 더 감당하지 못했다. 이젠 점점 더 자연에 눈을 돌리게 되고, 예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나이가 든 것일까? 내면의 평화와 행복을 찾는 일이 내겐 가장 중요해졌다.이젠 ‘의미’를 추구하는 일보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만큼의 소박하고도 작은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바이올렛 할머니의 행복한 100년.

이 책은 오랫동안 인간의 건강과 행복에 관해 가르치고 글을 써오면서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지속된 불행감과 외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70대의 어느 심리학 교수가 103살 먹은 할머니에게서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법]에 대해 배우게 되는 이야기이다.

103살의 나이에 78살의 소아마비 딸을 보살피며 살아가는 이 할머니의 행복 비결은 도대체 뭘까? 감사하는 마음, 유머,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몰입,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보다는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중요하다는 삶에 대한 태도, 최선을 다한 후에는 신에게 온전하게 의지하는 것, 물질적인 행복보다는 내면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 등이 그 비결이었다. 알고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바이올렛 할머니가 3세기를 걸친 삶을 살아오면서 직접 실천하고 경험한 것이기에 마음 깊은 곳에 와닿는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상처와 불안을 치유하고 돌보는 일을 해오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의 그것들은 보살피지 못했던 저자의 자전적 고백과 성찰이 있기에 진심을 느끼게 해 준다.

바이올렛은 밤늦게 신문을 보다가 조는 바람에 의자에서 떨어져 100살이 다 된 노령에 큰 수술을 받아야 했던 순간에도, ‘에이고, 늙으면 죽어야지!’라고 한탄하기 보다는 ‘밤 늦게 책을 읽을 때는 졸다가 떨어지지 않게 팔걸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서 읽어야 한다’는 걸 하느님이 유머러스하게 알려준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이 할머니, 얼마나 귀여운가? 불행하고 고통스런 상황을 한 순간에 코믹하게 만드는 능력, 자신에게 없는 것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에 감사할 줄 아는 그 소박함 속에서 할머니 자신뿐만 아니라 그녀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삶까지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창조적인 힘을 보게 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영혼의 풍요가 궁극적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아주 간단한 진리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이 책이 좋은 것은 이 글을 쓴 작가 자신도 70대이고, 주인공도 100살이 넘은 할머니라는 점이다. 나이 든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는 깊이와 따뜻함과 지혜가 있다. 젊은 사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교만과 후까시가 없다. 어머니와 화해하지 못했기에 자기 자신과 끊임없는 불화에 시달렸던 저자가 바이올렛 할머니의 삶과 만나면서 조금씩 있는 그대로의 어머니와 자신을 받아들이고 용서해 가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바이올렛 할머니가 가르쳐준 행복 비결들을 종이에 써서 냉장고에 붙여놓을 생각이다. 누가 아는가? 할머니의 비결들이 부적이나 마술처럼 내 일상에 행복감과 기쁨을 가져다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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