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표지를 넘기면 일본 에도 시대 요괴그림집에서 발췌한 <우부메> 그림이 나온다. 아랫도리에 피를 흘리며, 아기를 안고 허둥지둥 어디론가 가고 있는 젊은 여자의 그림이다. 그녀의 표정은 약간 겁에 질려 있고,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눈은 아래를 향해있지만 초점이 없다. 기괴하고 음산하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처연하게 슬픈 기운을 가득 담은 이 그림이 불러일으킨 호기심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책을 끝까지 읽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작년 말에 사서 읽기 시작했으나, 주인공 세키구치와 그의 친구인 고서점 주인 교고쿠도 간의 지루한 대화가 좀 길다 싶을만큼 많은 분량을 차지했기 때문.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우유부단하고 어딘가 음울한 것이 어쩐지 일제 식민지 시대 조선인 문학청년 같은 이미지를 풍기는 주인공 세키구치. 그리고 그의 친구이자 민속학, 괴담, 전설 등에 일가견이 있는 고서점 주인인 교고쿠도. 고지식하고 순진한 세키구치와 괴팍하지만 요괴 괴담, 기담, 주술에 대한 전문 지식과 어울리지 않는 합리적 지성의 소유자인 교고쿠도가 주고받는 지루한 대화는 초반 1/3을 차지한다. 중반부를 넘어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사건의 흐름은 점점 가속화되면서 후반부가 되면 읽는 사람이 숨이 찰 만큼 그동안 누적되어왔던 비밀들, 얽히고 섥혀 잔뜩 꼬여 버린 실타래가 한꺼번에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풀려버린다. 마치 잔뜩 집어삼킨 무언가를 한꺼번에 토해내듯이. 아마도 전반부의 지루한 대화는 후반부의 누적된 진실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한 초석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전반부의 복선들은 후반부의 사건들과 정교하게 맞물려 있으니 말이다.

밀실에서 벌어진 사건, 봉인된 과거의 기억과 그로 인해 현재의 인물들이 겪고 있는 비밀스럽고도 불안한 압력들, 비극적 결말을 향해 치닫는 내러티브의 전개. 일본 소설, 드라마, 영화, 만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모티브들이다. 늘 그러하듯이 이 소설 역시 현재 시점에서 시작되어 봉인된 과거 기억의 편린들과 미래의 시점으로 점점 진행되는 현재 시점의 사건들 간의 조각 맞추기 형식으로 진행된다.

때는 1950년대 도쿄, 주인공인 소설가 세키구치 다츠미는 유서깊은 산부인과 가문의 한 남자가 밀실에서 연기처럼 사라지고, 임신 중이던 그의 부인은 그 후로 20개월째 출산을 하지 못하는 기이한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현재 시점을 기점으로 해서 주인공과 관련인물들의 과거, 그리고 한 집안의 역사가 되어 버린 비밀스런 내력들, 즉 개인과 집단의 과거는 현재 진행형의 사건들의 재료가 되는데, 그 공통점은 ‘봉인된 기억’이라는 점이다. 즉 몸은 기억하고 있으되 의식의 수준에서는 밀폐된 기억,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공간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압력은 현재라는 무대 위의 관련 인물들을 앞으로 닥칠 불행한 사건들로 초대한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사라지는 신생아들, 되풀이되는 비극을 은폐하고 가문의 영광을 이어가고자하는 집요한 욕망, 그리고 ‘전통’의 이름으로 증폭되어 되물림되는 또 다른 비극. 이 소설은 분명 한 가문의 비극적 역사와 등장인물들의 개인사가 매개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시대적 배경이 1950년대라는 점은 작가의 의도적인 배치인 것으로 보인다. 산부인과 가문에 감춰져 있는 과거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주인공 세키구치 역시 그와 관련된 자신의 봉인된 기억과 대면하게 된다. 산부인과 가문의 과거에 오버랩되는 그의 과거에 살짝 노출되는 것이 전쟁터에서의 경험이다. 일본에서 1950년대는 전후 민주주의와 제2근대화로 ‘새로운 일본의 건설’이 그야말로 ‘가열차게’ 진행되고 있었던 시점이다. 일본의 역사에서 ‘전후’라는 단어는 일본인에게 매우 복잡한 감정을 유발하는 듯하다.  

어쨌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밀실 공포, 과거의 봉인된 기억, 그리고 그와 연루된 현재 진행형의 비극적 사건들이라는 모티브는 전후 일본의 근대화 물결에 의해 봉인된 ‘전쟁의 기억’들에 대한 집단적 무의식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일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봉인된 집단적 기억들. 마치 미국인들에게는 인디언 선주민(先住民)에 대한 대량학살로 시작된 미국 역사에 대한 의식화되지 않은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봉인된 집단적 죄의식이 있고,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 <샤이닝>은 미국인의 무의식에 내재된 죄의식을 원료로 한 공포영화라는 ‘설’이 떠올랐다. 어쨌거나 일본이 훌륭한 추리소설, 공포소설 작가들을 배출하게 된 데에는 이와 유사한 배경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어쨌거나 분명 현재 일본은 학계이건, 문학계이건, ‘기억’에 관한 이야기들이 차고 넘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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