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기 -상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21
하야시 후미코 지음, 최연 옮김 / 소화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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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30년 당시에 무려 60만부가 팔렸다는 이 책은 “나는 숙명적으로 방랑자이다. 내게는 고향이 없다”로 시작된다. 아무리 근대가 ‘떠돌이 인간(재미삼아 학명으로 만들어보자면 homo wanderer쯤 될까?)’의 흐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시대였다고 하지만, 나이 어린 여자의 몸으로 감히 ‘고향 없음’과 ‘방랑’을 선언하기란 지금도 쉽지 않은 일이다.

태생적으로 ‘고향’이 없고, 게다가 돈도 집도 없고, 그나마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이라고는 ‘여자의 몸’ 밖에는 없는 어린 여자. 저자 하야시 후미코의 자전적 소설인 이 책은 한 여성의 유년기부터 20대 중반까지의 방랑기를 다루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이 책에서 저자가 일기의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는 문체였다. 당시 일본에 ‘사소설’이라는 장르가 활성화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내면 깊은 곳까지 침잠하여 섬세하고도 치열한 언어를 구사한 이 책이 1920년대에 작성된 것이라는 게 놀라웠다. 요즘 이 시기의 일본 소설에 푹 빠져있는 지인의 말을 빌자면,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근대적 언어를 갖춘 소설이 이미 1900년대에 등장했다는 것. 메이지유신과 더불어 일본에서 근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1860년대였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암튼 1930년 당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어떤 재미, 어떤 감상을 느꼈을까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일본의 근대화가 ‘위로부터’ 시작된 것이었고, 국민, 문화 등 ‘일본적인 것’에 관한 서사가 유신 엘리트에 의해 생산되고 유포된 것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어쨌거나 이 책의 재미는 당대 도덕이나 규범의 문법 등 모든 것을 일체 ‘확 깨는’ 통쾌함을 맛볼 수 있게 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태생적으로 안주하는 것, 주저앉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것 같다. ‘솔직함’이야말로 자유로운 영혼만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이 아닐까 싶다. 추측컨데, 아마도 당대 독자들이 이 책에서 발견한 가장 큰 매력은 ‘솔직함’의 미덕이었을 것이다. 저자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속 주인공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행상을 시작하여, 술집 종업원, 가정부, 여공, 사환 등 온갖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시, 소설, 동화를 읽고 쓰는 것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는다. ‘문학’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문학’이 주는 낭만적 세계에 대한 동경도, “비록 몸은 비천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내 정신만은 고귀한 취향으로 가득하다”는 식의 자기 방어적 자만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그저 문학에서 그녀가 맛볼 수 있는 ‘기쁨’, 그것은 굶주림과 외로움에 시달리는 부박한 밑바닥 인생에서도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하지만 솔직하기 그지없는 저자의 문체가 맘에 들었다. 주인공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유곽에 몸을 팔면 어떨까 하는 유혹을 느낀다. 동거하는 남자로부터 두들겨 맞으면서도 그녀는 비루한 외로움 때문에 남자와 쉽사리 헤어지지 못한다. ‘남자에게 얻어먹는 것은 진흙을 씹는 것보다도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늘 자신을 저버리고 등쳐먹는 남자들 사이를 전전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관조한다. 방세는 밀려있고 당장 내일 끼니를 해결할 돈도 없을 때, ‘결혼’에 대한 제안은 유혹적이다. 이 방랑자의 일기는 그렇게 어떤 것에도 안주할 수 없는 영혼을 가진 한 사람이 그 온갖 비루한 실존적 모순과 갈등 속에서 오직 문학에만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삶을 어렵게 이어가는 모습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배고픔과 성욕,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학과 삶에 대한 열정에 그토록 솔직했던 여성, 그것은 저자 하야시 후미코 자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타임 머신이 있다면 1930년대로 돌아가 이 책에 매료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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