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의 일상 - 생명공학시대의 건강과 의료
백영경.박연규 지음 / 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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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1.『프랑켄슈타인』에서 『블레이드 러너』,『전갈의 아이』 그리고『쌍둥이별』까지

다른 행성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개발된 ‘리플리컨트’(복제인간)이 유혈폭동을 일으키자 유전공학기술에 의해 창조주에 위치에 등극한 인간은 복제인간 사냥에 나서면서 인간과 복제인간 간의 싸움을 다룬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사이에 있는 마약왕국의 우두머리에게 여분의 장기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클론 소년이 양육되고, 그곳을 탈출하면서 겪는 이야기인 『전갈의 아이』(원제: The House of the Scorpion, 2002), 그리고 “백혈병에 걸린 언니 케이트를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태어나게 된 열세 살 안나가 다시는 자신의 몸에 손대지 못하도록 부모님께 소송을 걸겠다고 변호사 캠벨 알렉산더를 찾아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쌍둥이별』(2004).

근대의 출발점인 19세기 초반에 나온 프랑켄슈타인 서사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 동물, 기계 (그리고 아마도 괴물)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지면서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해 왔다.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은 생김새나 지능 면에서 철저하게 ‘비인간’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괴물의 형상을 한 프랑켄슈타인은 아직 ‘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과학기술의 미발달 단계의 반영일수도, 제국주의 세력의 탐욕스럽고 폭력적인 식민지 확장 과정에 탄생한 인종주의의 반영일수도 있을 것이다. 괴물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창조주 인간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에 상처받고, 그러면서 또한 인간으로부터의 구원을 갈망하지만, 끝내 인간의 무리에 끼지 못하고 소멸을 맞이한다. 이후에 나온 서사들 역시 인간과 복제인간 간의 전쟁,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그 갈등의 국면은 타자에 대한 존중과 공감의 능력을 상실한 인간은 서서히 비인간화되고, 오히려 복제인간이 그러한 ‘인간적’ 능력을 갖게 되면서 달라진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와해될 뿐만 아니라, 그 지위가 오히려 역전되거나, 비인간이 ‘인간다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되는 서사들. 과학기술의 발전이 생명공학 단계로 진입하면서 야기된 황폐한 풍경들을 사회과학의 언어가 아니라 인문학의 언어와 직관이 먼저 포착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단상2. 인간의 ‘민영화’,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프랑켄슈타인의 일상: 생명공학 시대의 건강과 의료』은 전문가주의, 국가주의, 경제논리 담론에 밀려 제대로 제기되지 못했던 질문들과 쟁점들, 국면들을 아주 잘 정리하고 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기에 책을 접하는 순간, ‘드디어!’라는 말이 나왔더랬다. 그 ‘복제 및 생명공학연구와 결부된 몇 가지 쟁점’을 정리하면서 글로벌 연대의 밑그림을 제시한 세라 섹스톤의 글은 그동안 의문점으로 남았던 쟁점들에 대해 중요한 통찰력을 제시해 주었다. 황우석 사태를 기점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일련의 ‘생명공학’ 관련 사건이나 쟁점들,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분절화되어 물화되고 상품화되는 ‘인간의 민영화’에 과연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라는 난제, 이것은 ‘경제근본주의’, 신자유주의, 국가주의, 가부장제 논리들이 함께 뒤얽혀 있어 좀처럼 쉽게 풀릴 것 같지가 않았고, 어디서 어떻게 개입해야하는지도 참으로 난감한 문제로 다가왔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책을 읽고 난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지난 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1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세계를 재생산하는 여성의 몸을 둘러싼 생체 정치학]이라는 제하의 워크샵에서 캐서린 월드비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여성의 재생산 생물학이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하에서 민영화된 투자의 중요한 형식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재생산 능력을 공급하는 여성들의 행위성을 ‘재생산노동’ 혹은 ‘생물학적 노동’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토론에서 월비는 금지주의 정책 하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피해자화되는 현상과 유비시켜 ‘클리닉과 생체윤리학적 기준에 대한 국제적 가이드라인’의 필요성과 줄기 세포 산업에서 공급자 역할을 하는 여성을 재생산 노동자로, 그리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경제적 행위자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토론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제약 산업의 논리로 이용될 우려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캐서린 월드비의 주장과 토론을 지켜보면서, 이런 방식의 사회과학적 서사와 개입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서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한동안 교착상태에 머물렀던 생명과학기술, 성형수술에 대한 사회과학적 논의는 최근 미용산업구조, 건강관리서비스 및 생명과학기술 산업구조 등 ‘구조’의 문제에 천착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아마도 그것은 그 시스템을 애초에 만들어내고 재생산하는데 동원되는 논리와 신화의 허구성을 가시화하는 작업이 현 시점에서 요구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개입이 필요하다는 생각, 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은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새라 섹스톤의 글은 생명과학이 투기자본의 영역을 끌어들이고 확장하면서 ‘바이오경제’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게 되기까지, 이를 정당화하거나 비가시화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신화들이 있었는지를 밝히고 그 신화의 허구성을 조목조목 폭로한다. 물론 그 폭로는 아직은 ‘의심’의 수준에 불과하다. 아직 실체적 진실을 입증하기엔 거대한 국가 및 기업 권력 연합체가 구축하고 있는 견고한 동의 시스템에 대한 보다 면밀한 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소 ‘의심’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색스턴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특히 건강관리서비스, 제약산업의 구조가 병들고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건강하고 구매력 가능한 사람들’에게서 이윤을 뽑아내는데 목적이 있다는 주장, 규제 논리가 오히려 복제연구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될 가능성에 대한 지적, 어느 한 국가에서 윤리적으로 지지받는 규제가 가난한 나라에서는 착취의 논리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경고. 이러한 지적들은 국가 간의 불평등한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대안이 아니라, 지역, 경제적 수준, 성별을 뛰어넘는 연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는 윤리적 요청으로 이어진다. 섹스톤의 글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러한 연대의 필요성을 설득해 낼 수 있는 지도, 즉 현재 생명과학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둘러싼 쟁점들의 지도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사족. 이 책은 ‘생명공학시대의 건강과 의료’에 대한 쟁점과 개입의 지점들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미덕에도 불구하고 편집상 중요한 결함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타이틀에 ‘백영경.박연규 쓰고 엮음’이라고 되어 있으나, 이 책의 목차에는 각장의 저자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목차에서 원저자의 이름이 누락된 것은 여러 글을 엮어 만든 책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이 생명과학기술에 대한 글로벌 연대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면, 더욱 원저자의 이름을 정확하게 밝혀주는 것이 필요하다. 영국, 인도, 한국이라는 ‘로컬’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상들과 문제점들을 그곳의 연구자 및 활동가들이 어떻게 포착하고 개입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인식은 책의 목차를 펼치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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