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 : 유랑민족의 지팡이 종교도서관 4
칼 에를리히 지음, 최창모 옮김 / 유토피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디아스포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디아스포라’라는 말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dia(너머)’와 ‘speiro(씨뿌리다)’가 합쳐진 말로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p.127). 기원전 586년에 살던 땅에서 쫓겨나 유랑 생활을 시작한 이래, 유대인의 이산(離散)을 뜻하는 고유명사로 사용되다가 최근에는 그 의미가 확대되어 사용되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지금은 ‘사람, 돈, 상징’의 이동이 일상화된 세상이 아니던가. 특히 어느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디아스포라가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기에, 디아스포라라는 단어가 처음 적용된 유대인과 그들의 종교가 궁금했더랬다.

이슬람교와 기독교에 비해, 그 신자가 수적으로는 적어도 그 영향력은 매우 중요한 유대교에 대해서 지금까지 그다지 아는 바가 없었다. 아니 종교 그 자체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고나 할까.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한 바 있는 동생은 한국에 들어올 때면, 뉴욕의 유대인들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주곤 했었다. 독특한 전통과 다소 게토화된 공동체를 유지하는 유대인 공동체는 다른 이주 공동체에 비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지만, 뭔가 유별난 사람들이라는 고정관념적 시선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건, 문외한인 내가 이 책을 읽고 배운 점이 많았다. 이 책은 중립적인 문체로 유대교와 유대인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깔끔하게 잘 설명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유대교와 유대인을 정의하는 문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논쟁적이었다고 한다. 그 가장 핵심적 이유는 유대인 공동체가 타민족 및 타종교 문화권 속에서 생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 지독하게 끊이지 않았던 ‘고난의 기억’은 유대인의 정체성을 하나로 묶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했지만, 유대인들은 민족 정체성과 종교적 전통을 잃지 않기 위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현지에 적응하거나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동등한 시민권을 인정받는 대신 기독교로 개종해야 했거나(18세기), 살아남기 위해 주류 사회와 타협해야 했기에 그래서 유대교 내부에서는 다양한 개혁 운동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이슬람과 기독교는 공히 유대교라는 뿌리에서 출발했다는 게 학자들의 정설인 모양이다. 이슬람이 유대교와 유대인을 제일 박해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역사적으로 줄곧 유대인에게 고난을 안겨줬던 것은 기독교였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유대인과 유대교에 대한 정의는 늘 각축적 긴장 속에서 유동적으로 변화되어 왔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특히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유대교와 유대인의 ‘장소’와 ‘시간’ 개념이었다.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바, 유대인과 유대교를 정의하는 문제는 이스라엘과 디아스포라 공동체들 간의 긴장을 야기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유대인에게 ‘민족’이란 상상적 공동체는 ‘잃어버린 성스러운 땅’에 대한 애착과 열정으로부터 그 응집력을 끌어온다. 고향과 뿌리에 대한 갈망은 그들만의 특이한 시간 및 장소 개념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가장 중요한 경전인 ‘토라’는 책의 형태로 만들어져 유대인들이 어디에 가거나 ‘움직이는 고국’으로 가지고 다닌다. (p53)

“안식일은 우리의 대성당이다. 우리의 지성소는 로마인도 독일인도 불태우지 못하고 배교자조차 기억 속에서 쉽게 제거하지 못할 성역, 즉 속죄일이다.” p103-104

특히 20세기 초에 태어나 홀로코스트라는 극심한 역사적 고난을 목도한 랍비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은 (유명한 랍비의 이름 중에는 유독 모세, 아브라함이 많다) 『안식일: 현대인을 위한 의미』라는 책에서 시간의 의미를 위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주류 사회에서 영원한 이방인이었던 유대인, 이등시민이거나 불청객이거나 제거되어야 할 무엇으로 간주되었던 그들, 그래서 자신만의 공간, 장소를 가질 수 없었던 이들에게 ‘안식일’이나 ‘속죄일’과 같은 의례는 그들의 영혼을 보호해 주는 성당이자 고향이었던 것이다. 유대교에서 시간 개념은 종교적 의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의미를 띤다고 한다. 아브라함 헤셀의 글은 장소를 상실한 유대 공동체의 디아스포라 주체들이 자신의 일상과 시간을 어떻게 장소적 개념으로 변환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2-3시간이면 가뿐하게 읽을 수 있는 분량이고, 내용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내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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