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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내력 - 제11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오쿠이즈미 히카루 지음, 박태규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전쟁의 기억과 상처에 관한 일본 소설, 영화를 접하면 기분이 상할 때가 많다. 특히 "평화"를 내세운 재현물들 중 상당수는 일본을 피해자로 위치시키면서, 스스로가 저지른 가해의 기억들을 삭제하거나 누락시킨다. [반딧불의 묘], [버어마의 하프] 같은 영화는 텍스트 그 자체로 볼 때는 나무랄 점이 없을 수도 있겠으나, 그 텍스트를 역사와 맥락 속에 바라볼 때, '문제적인'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1인칭 자아의 나르시스적 멜랑꼴리에 빠져있는 일본의 모습에서 또 다른 폭력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고나 할까.
오쿠이즈미 히카루의『돌의 내력』은 위의 재현물들과 똑같이 자신들이 벌인 전쟁으로 인해 스스로 겪은 상처, 그리고 세대를 거쳐 재생산되는 상처와 폭력을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작가의 문제 의식은 정확하게 일본인이 저지른 폭력을 겨냥하고 있다. 물론 폭력의 재생산의 출발점은 전쟁 당시 일본군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저지른 폭력이 아니라, 일본군들 사이에서 벌어진 살상의 경험에서 출발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일본군이 드디어 미군에 의해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던 그 무렵, 필리핀 레이테 섬에 고립된 일본군들은 동굴 속에 숨어서 기아와 부상으로 인해 거의 대부분이 죽음 직전의 상황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사항전이라는 명분을 위해 움직이던 그들은 얼마 되지 않는 식량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끼리만 나눈다.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칼이나 총으로 죽이는 일이 시작된다.
극한 상황에서 동료들을 죽여야 했던 경험, 아마도 그것은 전쟁을 통해 타자의 생명을 죽이는 경험을 통해 획득된 '살인에 대한 둔감성'이 필연적으로 내부로 향할 수 밖에 없었던 경험이었으리라.
『돌의 내력』의 첫부분을 읽다보면, '돌'에 관한 저자의 박식함과 꼼꼼하고 섬세한 문장력으로 미루어 짐작하여 이 책이 그저 '돌'에 꽂힌 한 제대 군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줄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서면서 주인공의 아들이 갑자기 살해당하는 시점에서부터 이야기는 '추리'와 '미스테리'의 성격을 띠면서, 과거와 현재의 시점이 교차되면서, 전쟁의 기억과 상처라는 이슈를 부각시킨다.
어린 시절 아동 학대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3명의 주인공이 비극적 결말을 향해 치달아 가는 내용을 다룬 텐도 아라타의 『영원의 아이』가 떠올랐다. 짧은 식견이긴 하나, 기억과 상처를 다루는 일본 소설이나 영화는 유독 추리물의 형식을 취하는 것들이 많다.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그것이 서로 교차되고 맞물리면서, 양자가 서로에게 알리바이를 제공하면서, 미래의 비극적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그런 형식의 내러티브 구조.
왜 이런 내러티브 구조를 취할까? 그게 궁금했더랬다. 삶의 미스테리를 풀어가기 위한 이러한 공유된 서사 구조는 단지 단지 드라마틱한 흥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만은 아닌 듯 하다. 그게 일본인 특유의 어떤 정서 구조, 언어 구조에서 연원한 듯 싶다. 누가 이 문제에 대해서 아는 바 있는 사람 있으면 갈카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