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지의 거장, 다치바나 다카시의 최신작이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등으로 한국에도 유명한 작가이다.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있는 독자라면 매일 같이 읽고 쓰는 그의 괴물같은 독서력과 필력에 대해 잘 알것이다. 그가 7만 권이 넘는 장서를 보관하고 있는 고양이 빌딩 내부를 취재한 책도 있을 정도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1940년생으로 어느덧 80세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은 2013년 출판된 책으로서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쓴 책이다. 흔히 역사라고 하면 세계의 역사, 동아시아의 역사, 한 국가의 역사에 대해 생각하기 마련이다. 개인의 역사? 그것은 한 개인의 고유한 영역이 아니던가. 자서전을 쓰는 방법에 관한 것인가? 어찌보면 그렇게 볼 수 도 있겠다. 


"나는 누구나 시니어 세대가 되면 한 번은 한 번은 자기 역사를 쓰는 일에 도전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역사를 쓰지 않으면 자기라는 인간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p.15)"


다치바나 다카시는 자기 역사를 쓰는 작업은 환갑 정도의 나이가 적절하다고 말한다. 젊어서는 인생에 대해서 전체적인 조망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나이가 60정도가 되면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왔고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얼핏 스스로 느끼게 된다. 이 때, 남은 인생을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선 총체적 점검을 위한 작업으로서 '자기 역사를 쓰기'를 권하는 것이다.


젊은 나이의 독자에겐 이 책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나만의 역사를 쓰는 날이 오겠구나라는 마음가짐을 얻는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이가 있는 독자라면 책을 읽으며 자기의 역사를 직접 적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책은 다치바나 다카시가 직접 자기 역사 쓰기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기를 살펴보며 자기 역사를 적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문제점들과 주의할 점, 유용한 팁에 대해 적고 있다. 트라우마에 대해선 조심스럽지만 자신의 인생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하나의 아픔이며, 역사를 기술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무의식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자기 역사 연표, 인간관계 클러스터 맵, 에피소드 수첩과 같은 실전팁도 보여주면서 어떻게 수강생들이 자기 역사를 기록하는 데 도움을 얻었는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자기자신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것이 '자기 역사'이다(p.281)" 그 누구를 위해서 이 작업을 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마무리하고 자신이 누구였고, 어떤 존재였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스스로 선명하게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실제 자기 역사를 적은 수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쓰고 있을 때 엄청난 몰입을 경험했다고 한다. 마성을 가진 작업이다. 자신의 기억에 완전히 빠져들어 오직 자신만이 아는 기억들을 적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자기의 역사를 적는다는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개인의 역사에 더해 세계의 역사를 같이 기술해 나갈 것을 주문한다. 개인의 역사는 우주의 역사이다한 인간은 의식을 가지고 우주를 살아가는 고귀한 지적 유기체이다. 


"세계는 만물의 집합체로서 존재하며, 동시에 동시대를 구성하는 많은 인간들이 공유하는 장대한 기억의 네트워크로서 존재하고 있다. 이 세계의 주요한 구성 요소를 장대한 전 인류적 기억의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한 인간이 죽으면 그 사람의 뇌가 담당하고 있던 장대한 세계 기억 네트워크의 해당 부분이 소멸하고 만다.(p.28)"


반면 인간은 지구라는 행성에 갇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진보하더라도 1광년 이상을 이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4차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한 인간은 태양계 내부에서 기껏해봐야 130년을 살다가 죽을 것이 분명하다. 인간은 그렇게 하찮은 존재이다.


책의 마지막에선 인생의 스승으로서 내공있는 조언을 해주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인생이라는 싸움은 결코 단 한가지 길로만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은 성공한 수 많은 인생을 만나봤지만 그들이 행복하다고 보기에는 힘들었다. 오히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서 사는 인생이 오히려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경쟁에서 패배했다고 낙심하지 말고 새로운 게임을 계속해서 찾아 나가길 바란다.


"인생에서 진행되는 게임은 동시에 병행되기 때문에 하나의 게임에서 지더라도 다른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뻔한 규칙에 질 것이 뻔해 보이는 게임은 서둘러 던져 버리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다른 게임으로 이행하는 것이 인생에서 올바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올바른 전략은 이기고 지는 것으로 모든 일이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들의 인생 게임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는 일이다. 이기고 지는 것에 그리 상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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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플래툰>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다루고 있는 영화 <플래툰>이다. 'PLATOON'은 '소대'를 뜻하는 단어다. 신병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게 된 '테일러' 그리고 지옥같은 전쟁 속에서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군인들. 영화는 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느 전쟁영화처럼 신참의 모습은 어리버리하기만 하다. 신참 테일러의 눈에는 전쟁은 새로운 세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정의를 파악할 수 없는 곳에서 그들은 싸우라는 지시를 받으며 오직 싸울 뿐이다. 쓰러져가는 소대원들. 그리고 똑같이 쓰러져가는 베트콩들. 그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서로 소총을 마주잡고 싸워야 하는 현실이다.


영화 <플랫툰>은 악의 이중성에 대해 묘사한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얼굴에 수많은 흉터를 가진 '반스'는 전투중 무고한 베트남 여성 한명을 사살한다. 그 모습을 목격한 '일라이어스'는 반스를 군사재판소에 회부하겠다고 말한다. 소대원들은 반스를 옹호하며 일라이어스는 너무 순진무구한 태도로 전쟁에 임하고 있다고 불만을 품는다.


테일러가 소속한 대대는 베트콩과의 전쟁에서 밀리게 된다. 계속해서 발생하는 사상자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반스는 일라이어스를 사살하게 된다. 세 방의 총알을 쏴 죽이지만 일라이어스는 살아나 도망친다. 영화 <플래툰>의 포스터는 일라이어스가 죽으며 손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테일러는 일라이어스의 선한 모습에 동경심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반스가 일라이어스를 죽였다는 것을 눈치 챈 나머지 그를 군사재판소에 넘겨야 한다고 소대원들에게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은 반스의 귀에 들어가고 테일러의 얼굴에 상처만을 남긴 채 일라이어스의 죽음을 조용히 묻힌다.


영화는 엄청난 규모의 전투를 끝으로 마무리 된다. 수백명의 베트콩이 전진해오는 탓에 미군들을 고전을 면치 못한다. 죽음이 언제와도 이상하지 않을 순간들.. 그 속에서 반스는 결코 슬픈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라고 말하는 반스. 그러나 몰려오는 베트콩 앞에서 미군들은 전멸 수준까지 가게 된다. 다행히, 공중 폭격을 통해 위기에서 모면하게 되는데 반스는 자신이 일라이언스를 죽였다는 사실을 눈치챘던 테일러는 죽이려는 도중 공중 폭격으로 둘 다 정신을 잃게 된다. 정신에서 깬 테일러는 반스를 죽이게 되고 영화는 전장 정리를 하는 미군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영화는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며 다양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가난한 자들만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 현실. 또 흑인들은 자신들이 백인들을 위해 전쟁의 소모품으로 사용되는 것에 분노를 느끼고 있다. 무고한 베트남 사람들을 죽이고 강간하려는 미군들. 내부의 세력 다툼으로 동지를 죽이는 반스. 위기 상황에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해 무시당하는 중위 장교까지. 이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지만 모두 죽음으로 생을 마무리한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반스가 '일라이언스는 워싱턴의 정치가들처럼 이 전쟁을 너무 쉽게만 생각하고 있어'라고 말하던 부분이다. 베트남 전쟁은 왜 일어난걸까? 이념 대결이다. 공산주의 진영과 자유민주주의 진영간의 대결인데 오늘날에 공산주의 정권(마르크스-레닌주의)은 라오스, 베트남, 중국, 북한, 쿠바 뿐이다. 1989년 소련 몰락 이후 30년이 지났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젠 공산주의는 교과서에서나 배우던 산물에 불고할 뿐이다.


하지만 과거의 아픔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한국이야 말로 전형적인 이념 대결의 잔상이 남아있는 곳 아니겠는가. 베트남 전쟁에 파견되어 고엽제로 PTSD 환자들도 아직 많이 계시다. 


이념이 뭐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죽어야 하는걸까? 나도 워싱턴의 정치인들처럼 전쟁은 일어나선 안된다라고 쉽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전쟁의 참상은 수 많은 삶들을 파괴한다. 우리가 과거를 배우는 이유는 이런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며 우리가 해야할 일은 평화를 유지하는 일일테다.


민주국가 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하루라도 빨리 미중간의 갈등, 북한의 위협이 종식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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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 슬레이터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심리학 실험 10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왠만한(?) 교양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의 실험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확률이 높다. 그 만큼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심리학 실험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이 2004년에 나왔으니 이 책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심리 실험이 널리 알려진걸수도 있겠고, 아니면 요즘 사람들의 교양 수준이 많이 높아져서 그런걸 수도 있겠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은 10가지 심리실험을 다루고 있다.

1. 스키너의 보상과 처벌에 관한 행동주의 이론

2. 스탠리 밀그램의 충격 기계와 권위에 대한 복종

3. 달리와 라타네의 사회적 신호와 방관자 효과

4. 해리 할로의 애착 심리학

5.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이론

6. 데이비드 로젠한의 정신 진단 타상성에 관한 실험

7. 브루스 알렉산더의 마약 중독 실험

8.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가짜 기억 이식 실험

9. 기억 메커니즘을 밝혀낸 에릭 칸델의 해삼 실험

10. 20세기의 가장 과격한 정신 치료


책은 심리 실험이 끼친 파급력과 영향력에 대해 깊히 파고 들고 있다. 스키너의 행동주의 이론은 꽤 악명 높기로 유명한데 이 실험을 기점으로 프로이트의 유심론적 논의가 종말을 맞이했기 때문이며, 전체주의 체제에 방법적 수단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스키너는 쥐를 통해 걸맞는 행동을 했을 때는 보상을 주고, 실패했을 때는 처벌을 했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쥐에게 다양한 행동들을 학습시킬 수 있었는데, 그의 행동주의 이론은 전쟁 중 비둘기에게 유도 미사일을 매달아 발사시키도록 하는 프로그램에 이용되기도 했다. 


반면,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이론은 인간이 행동주의적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게 아니라 복잡한 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 심리 실험이었다. 인지 부조화는 신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사람은 자신의 신념에 맞게 행동을 왜곡해서 받아드린다는 것이다. 당시 한 사이비 종교에서는 특정한 날에 종말이 찾아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는데 실제 그 날이 되도 예언이 실행되지 않자 그 종교를 믿던 사람들은 조그만 사건에도 의미부여를 해서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권위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전기 버튼을 누르는 수 많은 사람들.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 사랑에는 스킨쉽이 중요하다는 사실. 정신의학의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나누는 기준의 모호함. 약물 중독에 끼치는 사회적 환경의 중요성. 기억의 불확실성. 환원주의적 설명에 힘을 실어준 두뇌 생물학 등 다양한 심리학의 중요한 테제에 대해서 이 책은 다루고 있다.


심리학에 대해서 신봉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지만, 그리 심리학에 신뢰감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전통적인 철학적 사유에 있어서 실험적으로 이 세계를 파악하려는 시도는 맹목적인 태도라는 비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심리학자들은 지극히 인간의 심리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으며 그들이 단순 과학의 신봉자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설명하고 있는 듯 하다. 심리학자들은 나름대로 세계와 인간 심리의 이면을 파악하려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심리학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이 책을 본다면 조금 관점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해서 최근 진화심리학이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아 아쉬운 측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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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



이 영화는 슬픈 영혼을 위한 하나의 헌정 영화다. 그대가 가지고 있는 모든 슬픔. 아픔들을 상상하며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감상해보자. 스크린이 올라간 후에 당신의 어떤 무의식이, 충동적 감정이 감화된 것을 느낄 수 있을것이다. 


이 영화는 BBC 선정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1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감독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데이빗 핀처'가 이 영화의 감독이다. 현실과 환상을 이중적으로 그려내는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현실이 환상이 되고, 환상이 현실이 되는 상황. 무엇이 실재인지 파악할 수 없는 현실. 그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자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카밀라'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기억을 잃고 도심의 한 집안으로 들어가게 된 그녀는 '베티'를 만나게 된다. 베티 또한 배역 오디션을 위해 이모네 집에 잠시 머무르게 된 것이었는데, 베티는 카밀라가 기억을 찾도록 도와준다. 카밀라의 가방 속에는 이상한 상자 하나가 담겨 있었는데 카밀라는 그 상자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한편, 아담 캐셔는 자신의 새로운 영화 제작을 위해 회의를 하고 있다. 그 때 찾아오는 두 명의 손님.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여성을 주연 배우로 쓰라고 말한다. 알 수 없는 위엄을 풍기는 그들의 모습에선 아주 이상한 분위기가 감돈다. 캐셔는 그들의 제안을 거부하지만 계속되는 압박속에서 제안을 받아드리게 된다.


베티는 배우 오디션을 보러 가는 길에 우연히 아담 캐셔를 만나게 되고 그 둘은 잠깐의 스침에서 이상한 기운을 서로 감지하게 된다. 카밀라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자신의 본명을 기억하게 되고 자신의 집을 찾아 간다. 하지만 그 곳엔 영문을 알 수 없는 시체가 놓여져 있었다. 그 날 밤, 다이안은 베티에게 한 연극을 보러 가자고 제안한다. 그곳은 립싱크를 통해 상영하는 곳이었는데 그 공연을 보던 베티는 온 몸에 경련을 일으키는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그 때, 베티의 가방 속에 카밀라 가방 안에 있던 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가 발견된다. 


집에 들어가 카밀라가 열쇠를 꺼내자 사라지는 베티. 상자를 열자 영화의 시점은 베티의 옛날 모습이 비춰진다. 이 때부터 영화의 진실이 밝혀진다. 


사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파악하는 것 조차 쉽지 않다. 처음부터 유심히 보지 않으면 두서 없는 영화 처럼 느껴지고 무슨 스토리인지 조차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카밀라가 상자를 열고 현실의 내막이 밝혀지는 순간 이 영화가 얼마나 겹겹히 복선들을 깔아왔는지 알 수있다.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베티가 엄청난 환상을 만들어주는 약을 먹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카밀라는 당대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여배우요. 베티는 매춘부 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자살을 택하지만 행복하게 죽고 싶어한다. 중개상으로부터 구입한 그 약은 베티의 환상을 충족시켜줄 환각제로서 영화 전반에 나오는 내용들은 모두 베티의 환상이다. 신인 영화 배우로서 유망한 미래를 가지는 상태. 카밀라와의 연애. 아담 캐셔와의 사랑. 모두 베티가 동경하는 것들이자 열등감의 대상이다. 


결국 약물의 효과가 끝을 향해 갈 때, 비로소 부정적인 환상이 드러난다. 열등감이 실재화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환상일수도, 베티의 과거일 수도 있다. 베티가 중개상한테 카밀라라는 여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았을 때 영화 후반부에 베티, 캐셔, 카밀라가 삼자 대변하는 부분은 부정적 환상이라고 보는게 맞을듯하다.) 카밀라와 아담 캐셔는 연인 사이이고, 베티는 카밀라의 친구이다. 베티는 캐셔와 카밀라가 결혼 발표를 앞두는 것을 보고 엄청난 공포에 빠진다. 이 때, 베티(나오미 왓츠)가 눈물을 흘리는 부분은 압권이다.


결국 영화의 끝 부분에는 스스로 권총 자살로 생을 마무리하는 베티의 모습이 나오고, 죽은 베티의 동선은 이는 영화 중간부에 나왔던, 베티의 환상속의 카밀라의 집에 나오는 시체의 자세와 일치한다. 


이 영화는 두 번, 세 번봐야 그 진가가 보인다. 슬쩍 무관심하게 이 영화를 봤다면 무슨 내용인지 도통 이해하지 못할테지만 자신의 열등감과 동경의 대상을 생각하며 이 영화를 본다면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 만큼 이 영화는 '베티'라는 여성의 무의식 속의 아픔을 첨예하게 드러내고 있다. 카밀라를 생각하며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베티(나오미 왓츠)의 연기는 단연코 베스트 장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영화는 카밀라와 베티가 갔었던 립싱크 연극에서 노래했던 여성이 '실렌시오'라고 외치며 마무리하게 된다. 스페인어로 '침묵' '무언'을 뜻한다. 아마도 베티가 꿈에서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환상이라는 것에 대해 '쉿'이라는 의미에서 감독이 이 장면을 넣은것이지 않나 싶다.


베티라는 여성은 환상을 제공해주는 약을 먹고 기뻐하다 자살로 생을 마무리하게 된다. 약을 구입하게 된 시점부터 예견된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현실이라는 고통을 외면한 채 매트릭스 속의 환상의 기쁨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환각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와 공포속에서 자살로 생을 마무리 하긴 했지만 그 환상에 대한 아름다움. 비밀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인 만큼 '실렌시오'라는 환상의 유지라는 외침은 꽤 인상적이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있는 현실은 있기 마련이다. 베티처럼 환상속에서 죽음을 택할 지. 아니면 현실을 직면하고 환상을 버릴지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진부하긴 하지만, 배부른 돼지로 살지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살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하지만 배부른 돼지를 선택해야만 했던 베티의 아픔과 열등감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건 우리 모두도 나름 그 환상을 원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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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몬스터>





배우 샤를리즈 테론 주연의 영화다. <원초적 본능>, <매드 맥스> 등의 영화에서 여성미와 남성미를 보여준 배우인데 영화 <몬스터>에서는 불운한 환경에서 자라 살인마가 된 '에일린' 역할을 맡았다. 샤를리즈 테론은 이 영화로 많은 상을 받았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지게 된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2002년에 사형 집행된 살인범 '에일린 워노스'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7명의 남성을 리볼버로 살해한 연쇄 살인범이다. 에일린은 매우 불운한 삶을 살았다. 여덟 살때 아버지 친구로부터 수 차례 성폭력을 당했다. 그 사실을 아버지에게 말했지만 오히려 술주정뱅이였던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고 만다. 열 네살(?) 무렵부터는 매춘부로서 생계를 유지했으며 그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로부터 외면 받자 홀로 생활했다고 한다.


성매매를 하며 노숙자 생활을 하던 '에일린'은 폭력을 행사하고 강간하려던 남성을 우발적으로 살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부터 7명의 남성을 살인하게 되는데 이 시점에 '셸비'라는 여성을 만나 도피 생활을 하게 된다. 


영화는 에일린과 셸비의 만남에서부터, '에일린'이 체포되고 사형 선고를 받는 것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연쇄 살인범이 사형 선고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통쾌하지만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에일린이 왜 그런 연쇄 살인범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다. 


극 중 살인을 하며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는 에일린의 독백이 나온다. "나한테 상처를 준 건 항상 선량한 존재들이었지. 상상도 하지 못할 끔찍한 것들은 오히려 대하기 쉬웠어.에일린의 가슴엔 상처들이 가득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사람들에게 배신 받아 왔고 그 덕에 세상에 대한 원한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부모와 가족의 사랑 또한 받지 못했다. 매춘부 생활을 하며 그녀를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만을 만나며 그녀는 자연스럽게 거친 사람이 되어갔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어린아이 같은 모습은 있었다. 거친 사람들에게는 상처 받지 않았지만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사랑했던 이들에겐 상처를 받았다.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만드는 세상이 나쁜 것이다.' '인격 형성에 있어서 환경이 중요하다' 라는 진부한 교훈을 이끌어내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 진정 자신을 믿어주는 단 한명만 존재한다면 이 세상은 살아갈만 하다는 것. 그것을 영화는 말하고 싶었던 거 아닐까? 


에일린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려 하지만 우연히 만난 '셸리'를 통해 삶에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다시 삶을 살아가려 결심하는 에일린의 모습은 천진난만하다. 하지만 미래에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바람 가는 대로 살아온 에일린에겐 새로운 삶을 위한 시도는 버겁기만 하다. 


한번의 충동적 살인은 계속 이어진다. 그녀는 여섯 번 더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감당할 수 없는 수준게 까지 이르게 된다. 체포 된 후, 에일린은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셸비에게 침묵을 유지하면 풀려날 수 있을 거라고 말하지만 셸비는 에일린을 배신한다. 마지막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에게 배신당한 에일린은 슬퍼하지만 기꺼이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희생한다. 그녀는 감옥에 끌려가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Love conquers all.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Faith can move mountains. Love always find a way.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Where there is life, there is hope..... Oh, They gotta tell you something."

"사랑은 모든 걸 이긴다.  시련 뒤엔 기쁨이 있고, 신념은 산을 움직인다. 사랑은 모든길로 통하며,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는 법..... 말이야 참 좋지"


살인에 어떤 변명의 여지가 있겠느냐마는 에일린은 자신은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말들이 '사랑이란 참 아름다운 거야'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어' 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은 누군가에겐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에일린은 그런 삶을 살고 싶었지만 세상은 나에게 단 한번도 기회를 준 적이 없다고 항변하는 것 같다. 말이야 쉬운 법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게 우리의 삶이다. 그래서 어떤 외침은 공허한 외침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려서 불운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진실한 사랑의 대상을 만났더라면 공허한 외침이 아름답게 들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불행한 건.. 참된 사랑이 결여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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