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
이 영화는 슬픈 영혼을 위한 하나의 헌정 영화다. 그대가 가지고 있는 모든 슬픔. 아픔들을 상상하며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감상해보자. 스크린이 올라간 후에 당신의 어떤 무의식이, 충동적 감정이 감화된 것을 느낄 수 있을것이다.
이 영화는 BBC 선정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1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감독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데이빗 핀처'가 이 영화의 감독이다. 현실과 환상을 이중적으로 그려내는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현실이 환상이 되고, 환상이 현실이 되는 상황. 무엇이 실재인지 파악할 수 없는 현실. 그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자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카밀라'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기억을 잃고 도심의 한 집안으로 들어가게 된 그녀는 '베티'를 만나게 된다. 베티 또한 배역 오디션을 위해 이모네 집에 잠시 머무르게 된 것이었는데, 베티는 카밀라가 기억을 찾도록 도와준다. 카밀라의 가방 속에는 이상한 상자 하나가 담겨 있었는데 카밀라는 그 상자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한편, 아담 캐셔는 자신의 새로운 영화 제작을 위해 회의를 하고 있다. 그 때 찾아오는 두 명의 손님.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여성을 주연 배우로 쓰라고 말한다. 알 수 없는 위엄을 풍기는 그들의 모습에선 아주 이상한 분위기가 감돈다. 캐셔는 그들의 제안을 거부하지만 계속되는 압박속에서 제안을 받아드리게 된다.
베티는 배우 오디션을 보러 가는 길에 우연히 아담 캐셔를 만나게 되고 그 둘은 잠깐의 스침에서 이상한 기운을 서로 감지하게 된다. 카밀라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자신의 본명을 기억하게 되고 자신의 집을 찾아 간다. 하지만 그 곳엔 영문을 알 수 없는 시체가 놓여져 있었다. 그 날 밤, 다이안은 베티에게 한 연극을 보러 가자고 제안한다. 그곳은 립싱크를 통해 상영하는 곳이었는데 그 공연을 보던 베티는 온 몸에 경련을 일으키는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그 때, 베티의 가방 속에 카밀라 가방 안에 있던 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가 발견된다.
집에 들어가 카밀라가 열쇠를 꺼내자 사라지는 베티. 상자를 열자 영화의 시점은 베티의 옛날 모습이 비춰진다. 이 때부터 영화의 진실이 밝혀진다.
사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파악하는 것 조차 쉽지 않다. 처음부터 유심히 보지 않으면 두서 없는 영화 처럼 느껴지고 무슨 스토리인지 조차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카밀라가 상자를 열고 현실의 내막이 밝혀지는 순간 이 영화가 얼마나 겹겹히 복선들을 깔아왔는지 알 수있다.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베티가 엄청난 환상을 만들어주는 약을 먹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카밀라는 당대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여배우요. 베티는 매춘부 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자살을 택하지만 행복하게 죽고 싶어한다. 중개상으로부터 구입한 그 약은 베티의 환상을 충족시켜줄 환각제로서 영화 전반에 나오는 내용들은 모두 베티의 환상이다. 신인 영화 배우로서 유망한 미래를 가지는 상태. 카밀라와의 연애. 아담 캐셔와의 사랑. 모두 베티가 동경하는 것들이자 열등감의 대상이다.
결국 약물의 효과가 끝을 향해 갈 때, 비로소 부정적인 환상이 드러난다. 열등감이 실재화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환상일수도, 베티의 과거일 수도 있다. 베티가 중개상한테 카밀라라는 여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았을 때 영화 후반부에 베티, 캐셔, 카밀라가 삼자 대변하는 부분은 부정적 환상이라고 보는게 맞을듯하다.) 카밀라와 아담 캐셔는 연인 사이이고, 베티는 카밀라의 친구이다. 베티는 캐셔와 카밀라가 결혼 발표를 앞두는 것을 보고 엄청난 공포에 빠진다. 이 때, 베티(나오미 왓츠)가 눈물을 흘리는 부분은 압권이다.
결국 영화의 끝 부분에는 스스로 권총 자살로 생을 마무리하는 베티의 모습이 나오고, 죽은 베티의 동선은 이는 영화 중간부에 나왔던, 베티의 환상속의 카밀라의 집에 나오는 시체의 자세와 일치한다.
이 영화는 두 번, 세 번봐야 그 진가가 보인다. 슬쩍 무관심하게 이 영화를 봤다면 무슨 내용인지 도통 이해하지 못할테지만 자신의 열등감과 동경의 대상을 생각하며 이 영화를 본다면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 만큼 이 영화는 '베티'라는 여성의 무의식 속의 아픔을 첨예하게 드러내고 있다. 카밀라를 생각하며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베티(나오미 왓츠)의 연기는 단연코 베스트 장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영화는 카밀라와 베티가 갔었던 립싱크 연극에서 노래했던 여성이 '실렌시오'라고 외치며 마무리하게 된다. 스페인어로 '침묵' '무언'을 뜻한다. 아마도 베티가 꿈에서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환상이라는 것에 대해 '쉿'이라는 의미에서 감독이 이 장면을 넣은것이지 않나 싶다.
베티라는 여성은 환상을 제공해주는 약을 먹고 기뻐하다 자살로 생을 마무리하게 된다. 약을 구입하게 된 시점부터 예견된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현실이라는 고통을 외면한 채 매트릭스 속의 환상의 기쁨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환각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와 공포속에서 자살로 생을 마무리 하긴 했지만 그 환상에 대한 아름다움. 비밀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인 만큼 '실렌시오'라는 환상의 유지라는 외침은 꽤 인상적이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있는 현실은 있기 마련이다. 베티처럼 환상속에서 죽음을 택할 지. 아니면 현실을 직면하고 환상을 버릴지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진부하긴 하지만, 배부른 돼지로 살지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살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하지만 배부른 돼지를 선택해야만 했던 베티의 아픔과 열등감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건 우리 모두도 나름 그 환상을 원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