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동양 고전 중 가장 뿌리가 되고, 널리 읽히는 책은 당연 <논어>다. 공자님의 말씀은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흔히 4서 5경이라고 해서 조선 시대 선비들이 달달 외웠던 책들이 있다. 사서 : <논어>, <맹자>, <대학>, <중용>, 5경: <시경>, <서경>, <역경>, <춘추>, <예기>이 바로 그것이다. <논어>에는 어떤 말이 적혀있길래 4경으로 꼽혔으며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의해 계속해서 읽혀져 왔던 걸까?


<논어>는 한 사람의 작품은 아니다. 몇 대에 걸쳐 계속해서 적혀진 책이라고 해야 할까. 성경과 비슷하다. 한 명의 저자가 아닌 지성이 계속 내리고 내려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을 때 <논어>가 출간하게 된 것이다. 공자가 한 언명들을 기록한것이긴 한데 예수가 죽고 난 후 집필 된 성경과 그 성격이 비슷하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다..  참고만 하시길) 


총 20편으로 구성된 <논어>에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깨달음이 자주 나온다. 


"배우고 때에 맞춰 이를 실천하니 이 아니 즐거운가!(1.1)"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적해야 한다(1.16)"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미혹되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2.15)"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4.8)"


"군자는 말이 어눌하지만, 실행에는 성실하게 노력한다(4.24)"


"이제 겨우 한 삼태기의 흙만 쌓았다고 해도, 실행하게 되면 나는 전진하는 것이다.(9.19)"


"군자는 화합하지만 동일하지 않으며, 소인은 동일하지만 화합하지 않는다.(13.23)"


"사람이 원대한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다.(15.11)"


"군자는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15.20)"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강제하지 말라(15.23)"


<논어>를 읽다보면 자신의 생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에 대해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가령, "군자는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15.20)"와 같은 단순한 진리를 생각하고 있노라면 왜 그토록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며 살아왔는지 헛웃음이 자꾸만 나오게 된다. 


'인간은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진정으로 감명깊게 읽은 책. 자신의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책이라면 한 인간의 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논어>는 그 자격이 충분한 책이다. 인류 4대 성인으로 예수, 소크라테스, 싯다르타, 공자가 꼽힌다. 그런 공자의 깨달음을 기록한 <논어>는 그 어떤 책에 견주해보더라도 깊은 내공을 가지고 있다. 


<논어> 맨 처음에 나오는 학이시습지는 너무 유명한 구절인데 "배우고 때에 맞춰 이를 실천하니 이 아니 즐거운가!(1.1)" 라고 공자는 말하고 있다.  공부하는 것을 즐거워 하는 상태. 앎에의 욕구. 이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시작과 일치한다. 배우는 것 자체가 즐거워지는 경지. 놀랍기만 하다. 나중에 공자는 자신의 마을에 충실함이 자기와 동등한 사람은 몇 될테지만 학문에 대한 포부가 자신보다 큰 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학문에 대한 자부심 만큼은 누구보다도 대단했던 공자였다. 인간에게 있어 '배움'을 상당히 강조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에서 계몽주의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교육과 배움이야말로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이자 바람직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한 공자의 가치관은 쾌락과 소비의 유혹으로 점철되어버린 21세기에 아직도 시사해주는 점이 많다. 


말보다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자의 말 또한 새겨들을만 하다"군자는 말이 어눌하지만, 실행에는 성실하게 노력한다(4.24)" "이제 겨우 한 삼태기의 흙만 쌓았다고 해도, 실행하게 되면 나는 전진하는 것이다.(9.19)" 사람들 앞에서 성인군자처럼 말하기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성인의 모습이다. 비록 말재주가 서툴더라도 미혹되지 않고 충실하게 나갈 수 있는 행동력이 있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람들 또한 그를 따를 것이다.


성인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한 길일 것이다. 공자 또한 마흔이 되어야 불혹의 경지에 들어섰고 일흔이 되어서야 말과 행동을 세상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상태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우리가 <논어>를 통해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점이 있다면 이 위대한 인물도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점일 것이다. 


공자는 "사람이 원대한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다.(15.11)" 라고 했다. 우리가 만약 충분히 고민하고 숙고한 끝에 원대한 생각(비전)을 가지게 된다면 근심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고 정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 <논어>라는 지침서가 있다. 인격의 완성에 이르는 길에 있어서, 삶의 참 된 의미를 찾는 길에 있어서, 자신에게 이르는 길에 있어서 지혜의 보고인 <논어>는 하나의 빛으로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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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지의 거장, 다치바나 다카시의 최신작이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등으로 한국에도 유명한 작가이다.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있는 독자라면 매일 같이 읽고 쓰는 그의 괴물같은 독서력과 필력에 대해 잘 알것이다. 그가 7만 권이 넘는 장서를 보관하고 있는 고양이 빌딩 내부를 취재한 책도 있을 정도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1940년생으로 어느덧 80세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은 2013년 출판된 책으로서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쓴 책이다. 흔히 역사라고 하면 세계의 역사, 동아시아의 역사, 한 국가의 역사에 대해 생각하기 마련이다. 개인의 역사? 그것은 한 개인의 고유한 영역이 아니던가. 자서전을 쓰는 방법에 관한 것인가? 어찌보면 그렇게 볼 수 도 있겠다. 


"나는 누구나 시니어 세대가 되면 한 번은 한 번은 자기 역사를 쓰는 일에 도전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역사를 쓰지 않으면 자기라는 인간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p.15)"


다치바나 다카시는 자기 역사를 쓰는 작업은 환갑 정도의 나이가 적절하다고 말한다. 젊어서는 인생에 대해서 전체적인 조망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나이가 60정도가 되면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왔고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얼핏 스스로 느끼게 된다. 이 때, 남은 인생을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선 총체적 점검을 위한 작업으로서 '자기 역사를 쓰기'를 권하는 것이다.


젊은 나이의 독자에겐 이 책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나만의 역사를 쓰는 날이 오겠구나라는 마음가짐을 얻는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이가 있는 독자라면 책을 읽으며 자기의 역사를 직접 적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책은 다치바나 다카시가 직접 자기 역사 쓰기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기를 살펴보며 자기 역사를 적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문제점들과 주의할 점, 유용한 팁에 대해 적고 있다. 트라우마에 대해선 조심스럽지만 자신의 인생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하나의 아픔이며, 역사를 기술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무의식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자기 역사 연표, 인간관계 클러스터 맵, 에피소드 수첩과 같은 실전팁도 보여주면서 어떻게 수강생들이 자기 역사를 기록하는 데 도움을 얻었는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자기자신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것이 '자기 역사'이다(p.281)" 그 누구를 위해서 이 작업을 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마무리하고 자신이 누구였고, 어떤 존재였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스스로 선명하게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실제 자기 역사를 적은 수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쓰고 있을 때 엄청난 몰입을 경험했다고 한다. 마성을 가진 작업이다. 자신의 기억에 완전히 빠져들어 오직 자신만이 아는 기억들을 적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자기의 역사를 적는다는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개인의 역사에 더해 세계의 역사를 같이 기술해 나갈 것을 주문한다. 개인의 역사는 우주의 역사이다한 인간은 의식을 가지고 우주를 살아가는 고귀한 지적 유기체이다. 


"세계는 만물의 집합체로서 존재하며, 동시에 동시대를 구성하는 많은 인간들이 공유하는 장대한 기억의 네트워크로서 존재하고 있다. 이 세계의 주요한 구성 요소를 장대한 전 인류적 기억의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한 인간이 죽으면 그 사람의 뇌가 담당하고 있던 장대한 세계 기억 네트워크의 해당 부분이 소멸하고 만다.(p.28)"


반면 인간은 지구라는 행성에 갇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진보하더라도 1광년 이상을 이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4차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한 인간은 태양계 내부에서 기껏해봐야 130년을 살다가 죽을 것이 분명하다. 인간은 그렇게 하찮은 존재이다.


책의 마지막에선 인생의 스승으로서 내공있는 조언을 해주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인생이라는 싸움은 결코 단 한가지 길로만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은 성공한 수 많은 인생을 만나봤지만 그들이 행복하다고 보기에는 힘들었다. 오히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서 사는 인생이 오히려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경쟁에서 패배했다고 낙심하지 말고 새로운 게임을 계속해서 찾아 나가길 바란다.


"인생에서 진행되는 게임은 동시에 병행되기 때문에 하나의 게임에서 지더라도 다른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뻔한 규칙에 질 것이 뻔해 보이는 게임은 서둘러 던져 버리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다른 게임으로 이행하는 것이 인생에서 올바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올바른 전략은 이기고 지는 것으로 모든 일이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들의 인생 게임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는 일이다. 이기고 지는 것에 그리 상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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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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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꾼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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