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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구하러 온 초보인간 - 낯선 세계를 건너는 초보자 응원 에세이
강이슬 지음 / 김영사 / 2022년 1월
평점 :
숙련자가 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다. '입문'과 '초보'. 들어서야 나아갈 수 있고, 나아가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은 수백 년이 흘러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가벼운 일상과 무거운 결정도 마찬가지다. 사안의 경중은 초보자와 숙련자를 나누는 데에 영향을 줄 수 없기에. 작은 용기를 이용해 새로운 라운드에 들어설 수 있고, 높아지는 레벨은 또 다른 세상과 그 안의 경험으로 나를 이끈다. 경험은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는 것, 미래의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초보의 길을 나선다. 너무 두려운 나머지 눈물을 글썽이게 되고, 시작을 수백 번을 후회할지라도!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서술한 에세이 장르를 선호하지 않는다. 보편적이지 않은 경험에는 호기심이 생기지 않더라. 물론 저자에 따라 보편적인 경험을 풀어낼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내가 접해본 바로는 그렇고, 내가 알아낸 나의 취향은 이렇다. 안타깝지만 본인 무의식과의 원활하지 못한 소통 덕분에 대체 어떤 이유에서 남의 창작물을 부정하고 보는지, 혹시 낯선 경험에 대한 동경 때문에 타인의 삶을 애써 무시하게 되는 건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아무튼.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부터다. 이 책은 뭔가 다르다. 통제가 어려운 나의 집중력마저 음소거를 시킨다. 작가의 감정이 나의 것과 연동된 것처럼 흘러간다. 운이 좋게 성격과 성향이 비슷하기 때문에 그랬을까? 내가 방금 뱉은 문제에 대한 해답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는 운전면허 기능 시험을 80점으로 통과했다. 100점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전공 자격증 시험과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노빠꾸 스트레이트 1일 4시간 연수를 뒤로하고 일주일이란 텀을 둔 채로 시험에 응시하게 되었다. 10분 전에 배우고 10분 후에 쳐도 불안한 판에, 일주일? 솔직히 진심으로 떨어질 줄 알았다. (본문에서 내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는 문장을 읽었을 때 정말 소름이 돋더라) 나는 실격을 받자마자 재응시료를 내려고 초록색 체크카드를 뽑아 패딩 왼쪽 주머니에 넣어두고 지퍼를 채웠다. 쉬고 있어. 좀 있으면 돈 나갈 거니까. 근데 붙었다.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도 안전벨트를 풀지 않았고 면허학원 관계자가 나의 빛바랜 차로 다가와 '내리셔도 됩니다.'라며 말을 걸 때까지도 얼떨떨했다. 내가 기능을 통과했다고? 다룰 줄 아는 기능이라고는 돌발 상황에 누르는 깜빡이 타격밖에 없는데.
그래서 도로주행 일정을 미뤘다. 진심으로.
시기가 시기인지라. 수능이 끝난 학생들과 이번 겨울을 놓치면 20년 뒤에나 운전면허를 딸 것이라는 저주를 들은 사회인 등 제각기의 사연이 모여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운전면허학원에 경쾌한 카드 결제 완료 신호를 채워주었고, 나는 그 핑계로 한걸음 물러나서 일단 집에 갔다, 일단. 다음 수업 예약을 잡아보자는 제안이 안내 데스크를 넘자마자 '전화로 다시 연락드릴게요!'라는 외침을 학원에 버려둔 채 무작정 집으로 출발했다. 근데 웃긴 게 겨우 기능 시험을 통과한 주제에 내 옆을 스치는 모든 기계 덩어리가 가소로워 보이는 거다. 집으로 가는 동안 머리를 몇 번이고 휘저었다. 이런 멍청한 인간이 다 있나. 방금까지 그렇게 떨어놓고. 생각을 환기해 보려 주변인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모두가 바란 적도 없는 방향으로 입을 모으더라. '100점이나, 80점이나 합격한 건 똑같아.' 맞는 말인데. 지금 내가 믿을 수 없는 건 그게 아니라고!
처음이라는 사실은 대체 어디까지 면죄부를 주는 걸까?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초보라는 사실만으로 내게 주어지는 혜택이, 아무리 초보라도 이건 아니지! 와 같은 태세 전환 분노와 아주 가까이 맞닿아있다는 사실이다. 마음을 편히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초보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선을 넘으면 미친 인간이 되는데 그 선을 예의주시하기엔 내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지나치게 많다. 내 바퀴가 연석을 밟으면, 뭣도 모른 채 중앙선 너머의 차선을 구경하면, 최저나 최고 속도를 지키지 못하거나 차에 기본적으로 탑재된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만 늘어나고.
그치만 시간이 조금 지나 생각해 보면 정말 별일이 아닌 것만 같다. (그 당시에는 정말 떨려 심장을 뱉어버릴 작정이었음에도) 5초 내에 방향 지시등을 켜지 못할까 하는 걱정은 대체 왜 내 잠을 방해했는가? 의문이 들다 못해 헛웃음이 난다. 대체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여기길래 초보 중에서도 극히 일부가 되어 피폐함을 직접 만들어 견뎠던 것인지. 모르면 배우면 된다. 익히지 못했다면 시험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이고,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잉크가 마르지 않은 운전면허증을 붙잡고 도로 중간에서 오열할 일도 없다. 초보의 두려움은 상상력에 한계가 없고 겁에 깊이가 없어서 새로운 도전 자체를 막아선다. 이해할 수 없지만 사실 그 모든 건 나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이해할 수 없었던 나와의 소통에 박차를 가한 뒤 초보력에 제동을 걸어보거나 자신이 초보임을 깨닫기 전에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다.
기능 시험을 통과한 뒤에서야 정리한 몇 가지 생각 중 한 가지. 더 이상은 초보 신분을 두려워하지 않겠다. 초보 단계를 단축하는 방법은 자신이 초보자임을 인정하고 초보력을 누리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정말 장담할 수 있다.) 물론 자기 객관화가 안되는 사람 몇 명이 우리의 마음가짐을 흐려내곤 하지만, 누구나 초보였던 시절이 있고 나 또한 어느 숙련자가 되어 다음 초보자를 지켜볼 경험이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그때 그에게 내가 해줄 말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나도 초보였는데 하다 보니 되더라? 따위의 무책임한 말들. 전하고 싶은 건 이거다. 초보라는 사실만으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사서 겁먹기 전에 외압이 너를 떨게 만들 것이다. 그전까지 초보가 할 수 있는 모든 실수를 해 봐! 왕초보에서 초보로, 그 중간을 한참 넘어서서 베테랑에 닿기까지 많은 수없이 많은 초보 자격을 얻겠지만, 그 속에서 누릴 것을 누려보자고.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