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여행하는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
마이크 둘리 지음, 권경희 옮김 / 김영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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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선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시공간적 배경에 대한 통일은 바랄 수 없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서 '출발'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출발과 내가 원하는 출발선이 명확히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좌절을 경험한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에 맞춰 발걸음을 떼지 못했을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얼마나 막막할지, 상상조차 두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외면하기엔 내게 너무 가깝고.

 

인간은 대체적으로 자신이 경험해 본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산다. 그것이 역사가 기록되는 이유고, 다음 세대의 눈부신 발전을 장려하는 지름길이기에. 게다가 누군가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할 책임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더 그렇겠지. 부모나, 스승.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나보다 작은 이에게 전해야 할 책임이 따르는 사람.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과 확신이 늘 맞고, 늘 같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어른에게 철학을 요구한다. 경험을 통해 얻어낸 선구자의 교훈과 메시지를 이제야 세상을 배워나가는 사람이 꼭 습득하여 괜한 고생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작은 마음에서. 여기 그 모든 걸 모아 사랑하는 딸에게 편지를 쓴 사람이 있다. 그 편지를 엿볼 기회도.

 

마법의 소라고둥이라는 소재를 아는가? 모 만화에서 등장한 장난감인데, 장난감을 작동시키면 그 안에 녹음되어 있던 문장 중 하나가 무작위로 재생된다. 문장들은 대체로 질문에 대한 답변의 형태를 가지며, 질문자는 그 대답을 듣고 사건의 앞날을 예측하거나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디까지나 장난감이니까. 같은 맥락으로 고민에 대한 해답을 내려주는 일명 '마법의 책'이 유행한 적도 있었는데, 이 모든 물건들의 공통점을 고르자면 이전의 대답이 현재의 고민을 결정해 준다는 점이다. 녹음과 인쇄는 과거에 이루어진 일이나, 그 내용들은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준다.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은 주체자의 의지지만.) 실제로 나도 해당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아주 반신반의하며 책의 페이지를 펼친 경험이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붕 뜬 소리를 하고 어쩌다 한 번은 마음에 쏙 드는 말을 해주더라.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나의 판단으로 이루어지기에 결국엔 이 마법의- 시리즈를 통해 나의 속마음을 판별해 내는 것이지.

 

<우주를 여행하는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는 제목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드러낸다. 누구에게나 오늘은 처음이고 모두에게 인생은 한 번이라지만 나보다 조금 더 오래 산 사람에게 나의 하루는 교정해 주고 싶은 시간의 연속으로 비칠 것이다. 그 친절이 과하면 참견이 되고, 지나치게 멀리 서있으면 방임이 되고 마니 우리는 그 선을 철저하고 세심하게 지켜나가야만 한다. 꽤 독립적으로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나의 기준에서도 이 책은 세상을 살아가며 필수적으로 겪게 될 감정 소모의 이벤트에서, 일종의 마법의 소라고둥이 되어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독 인상 깊게 다가왔던 포인트는 당장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아이가 어린 탓도 있겠지만) 누군가를 위한 조언을 남길 때 흔히들 서술하게 되는, 내가 네게 편지를 남기는 이 시점의 경제 상황은 이러하고 사회 전체의 학업 분위기는 이러하니 내 생각에 너는 이쪽 진로를 택하는 게 앞으로의 삶의 영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와 같은 현실적이고 따분한 조언이 아닌, 어딘가 붕 떠있는 감정적 조언과 행운을 위주로 서술하는 일종의 부적 같은 느낌이었다. 책을 가만히 쥐고만 있어도 직관적이고 일차원적이어서 다듬기가 어려운 보호자의 무한한 사랑이 전해지는 느낌.

 

굳이 명시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과정의 불운과 불행은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파고들어 굳건히 자리를 잡게 되고, 그들을 삽으로 파내어 버린 뒤 빈 구멍을 멀쩡한 감정으로 채워내는 것은 모두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몫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과정 자체가 버겁고 역겹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의 조언이 힘이 될 때가 많다. 아주 가볍고 가볍고 또 가벼울지라도. 저자는 자주 힘들고 가끔 행복할 생일지라도 자신의 길을 당당히 걸어나갈 딸을 위해 펜을 들었다고 한다. 근데 내가 느끼기엔, 딸의 탄생으로 존재 의미를 찾은 아빠의 삶도 이 책의 원고를 작성하며 완성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랑을 주고받고 지금의 사랑을 미래의 딸에게 전하는 과정은 이토록 소중하니. 딸을 위해 행운과 마법의 소라고둥이 된 아빠의 조언을 함께 나누어 보자.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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