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 : 생각의 잡음 - 판단을 조종하는 생각의 함정
대니얼 카너먼 외 지음, 장진영 옮김, 안서원 감수 / 김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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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쏠려 편향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특성상 잡음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만 기울여도 상당히 벅찰 것이다. 또한 그것을 제거하는 과정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모될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잡음은 결론적으로 부정적이며, 쓸모가 없고, 허황된 의견임을 짚고 넘어간다. 잡음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면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많은 것이 낭비되기 때문이다. 과한 소모를 경계해야 하는 몇 가지의 요소 중에서도 가장 집중할 건 '줏대'다. 예컨대 범죄의 형량을 판결하는 등의 중요한 사안에서 잡음은 존재하지 않는 편이 모두에게 이롭다. 판사는 자신의 줏대를 가지고, 참고할 문헌이 있다면 그것에 의지하여 가장 나은 해답으로 나아가야 한다. 외적인 것에 영향을 받아 쓸모없는 잡음의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 또한 마음처럼 굴러가지 않기에 이런 책이 쓰여질 수 있었던 거겠지만. 우리는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가장 적합하고 합리적인 한 가지의 답을 찾아 헤매어야 한다. 그 과정에 도움이 되기도, 방해가 되기도 할 잡음을 구분하고 그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추출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이는 이상에 가까우므로 우리는 모두 팔을 걷고 잡음을 걷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로지 인간의 어떤 것을 배반한 사례에 한할지라도.



사실 우리는 잡음에 대한 관념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애초에 잡음이 생기길 바라는-생겨야만 하는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다. 여러 개인의 약속으로 모인 집합이 이끄는 사회라는 것은 하나 이상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물론 하나 이외의 것은 모조리 잡음이 되어버리는 현상을 부정할 수 없는 체계를 공유하기에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잡음의 존재가 무의미하다 묻는다면 그 또한 오류라 단언할 수 있는 게, 여러 의견을 공유하는 생각의 장이라 함은 결론이 정해지고 나서도 잡음으로 타락할 수 있고, 잡음으로 취급되었다가도 사실 진정한 해답임을 인정받을 수 있는 특성을 가지기에 그렇다. 누구나 명료한 해답을 낼 수 있고 누구나 잡음이 될 수 있는 양면성은 잡음에 대한 부정적 감각을 해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잡음이라 함은 해답이 될 수 없었던 수많은 후보군에 불과하며 영 헛소리로 취급되기엔 그에 엮인 수많은 이해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이 걸린다. 내 생각은 이렇다. 앞서 언급한 예시와 같이 사회의 규범을 무시한 사례에 한해서는 잡음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하겠으나,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을 해결하거나 사소한 인간관계 속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찾는 중이라면 잡음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는 것을 택하기보다 그들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방향으로 핸들을 조정하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멀리 보자면 그렇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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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주성철 지음 / 김영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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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스러운 열정은 누구의 것과 비교할 수 없다. 타인에 의해 강제되지 않은 사랑은 아가페를 넘어서 마치 투명도를 50%쯤 더 먹인 대지처럼 보인다. 이 책은 내게 투명한 사랑을 전해주었다. 홍콩과 그곳에서 자라난 어떤 인생들을 향한 마음.




언제 어디서든 전 세계의 콘텐츠를 모조리 즐길 수 있는 지금. 누군가 내게 어떤 유형의 미디어 콘텐츠를 가장 좋아하느냐 묻는다면 별생각 없이 '영화'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장르 불문, 창작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쏟아지는 사랑은 감히 내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겠지만, 영화는 그 만의 묘한 중독성으로 관람객을 집어삼키는 힘이 있다. 세계관에 의해 정의되는 공간적 배경과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 주인공의 나이와 그가 처한 환경, 그가 이전에 겪었고 지금 겪고 있으며 앞으로 겪을 다양한 고난과 그 비참함을 덮어 씌울 작은 희망. 이 모든 설정을 이해하다 보면 영화 속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에 작게나마 힘을 실었다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진작부터 모두에게 주목받는 사람이었을지라도 나의 애정 한끗으로 완성되는 캐릭터. 영화 상영은 막을 내리고 VOD 서비스가 종료될지라도 내 속에 깊이 남아 잔잔하게 반복되는 삶을 받아들이는 그들.



그들을 향한 마음을 가장 크게 담아낸 예시를 찾으라고 했을 때, 이 책을 쥔 손을 하늘에 휘저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귀한 애정으로 가득 차있다. 이렇게 적나라한 사랑은 또 오랜만이라, 당황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그치만 매일이 버거울 때 도피하고 싶은 곳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책이다. 우습게도 계속해서 반복하는 말이지만 이토록 귀하고 순한 애정은 없으리라.


허공에서 시작된 소재라, 지구 내에서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지언정 아직까지 마음에 남아 사람을 괴롭히는 영화도 있는데. 공간적 배경이 소재가 되어 제작된 영화는 얼마나 애틋할지 감히 예상할 수가 없다.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건 간에, 그곳에 발만 디딜 수 있다면 마음속 사람들을 찾아 한참을 헤매어도 목이 마르지 않을 것만 같다는 작은 로망이 피어난다. 그들이 마주 앉아 커피를 나누었던 식당, 나란히 올랐던 계단, 공원과 거주지를 비롯해 그 사람들의 숨결이 퍼지고 퍼져 주변을 모두 같은 색으로 물들였을 공간에 대한 애정은 끝을 모르고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홍콩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조금 먼 곳에 살면 어떤가, 마음은 언제나 그 거리를 거닐고 있는 것을.




늘 하는 말이지만, 애정은 귀하다. 이 책은 그 귀한 애정을 해치지 않는 세상이 계속되길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게 만든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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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돌보고 연구합니다 - 경이롭고 감동적인 동물과 과학 연구 노트
장구 지음 / 김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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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누군가의 아픔에 슬퍼할 수 있는 것은 감정을 가진 존재의 특권이다. 고통에 대한 공감은 무척이나 아득한 일이지만, 쾌유와 회복을 빌며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일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우리를 치유하는 기적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맥락 없는 발견은 없기에 아마도 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반짝 떠올랐으리라. 낮고 가까운 곳에서 인간을 구하는 존재를 일깨우러 떠나보자.






아픔을 부정하기란 쉽지 않다. 신체의 괴로움과 정신의 흉터는 사사로운 상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원이 다른 존재감을 가지고 숨을 죄여온다. 그렇기에 발병 및 지나친 통증을 사전에 예방하는 수단으로써 치료제와 예방법이 아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병을 앓는 이유에는 노화가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된 지금, 죽은 듯 다가와 뒤통수를 후리는 고통을 얌전히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대체 어디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고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몇 세기를 거쳐온 인류의 간절함이 통한 덕분인지 도움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이 옳은 방향인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고민해야겠지만 (설사 그것이 기우일지라도) 받은 도움은 잊지 않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감사는 미물에게도 통하기에.



보편적으로 연구라 함은 어떤 일이나 사건에 대해 깊이 있게 통찰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 띠에서 보편적 진리나 과학적 원리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케이스의 반복된 연구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앞서 말한 '치료'에 대한 결론도 마찬가지다.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면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케이스를 바라볼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인간은 여기서 동물의 도움을 받길 택했다. 인간과 비슷한 신체 구조를 가진 여러 종의 도움을 받아 불치병을 치료 가능한 병으로 만들고, 수없이 많은 아이들을 죽였던 병의 기를 꺾어 다음 세대의 많은 생명을 살려냈다. 이 긍정적인 결과를 결코 부정할 수는 없으나, 수많은 실험에 의해 희생되었을 동물을 생각하면 생태계의 굴레에 인간의 잣대를 적용하여 그들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게 정녕 옳은 일인가, 인간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답변을 계속해서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문명의 발달과 과학 기술의 진화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고, 그 영향으로 차례로 굴복당하는 병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온건한 사회 분위기가 확립되고 있다. 그 영향으로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동물권에 대한 시민 의식 또한 드높은 성장을 거두었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도록 뼛속 깊이까지 와닿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과 많은 동물이 큰 힘 들이지 않고 생명을 보호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 상황에서도 동물 실험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연구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고 윤리적이다. 그 모든 과정에 작고 큰 동물의 희생이 녹아있기에. 어떤 동물의 도움을 받아 인간의 생이 연장되고 덕분에 또 다른 동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다음으로 어떤 동물의 얼마나 큰 희생을 감안해야 우리의 기술이 또 한발 내딛고, 그를 통해 동물의 더 나은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 않아야 하는 것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의 사이에 선 우리는 모순을 넘어서 굴레에 갇힌 것에 가깝지만 이 또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함부로 생명의 경중을 따지기에는 인간의 것은 이미 충분히 무겁다. 큰 결과를 기대할수록 많은 제제와 만류가 필요한 것. 나는 그 누구의 희생 없이 우리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전구처럼 반짝이는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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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씨, 도파민 과잉입니다 - 안철우 교수의 미술관 옆 호르몬 진료실
안철우 지음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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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부터 마음에 꼭 든다. 희로애락을 구분 지어 각 감정에 영향을 주는 호르몬을 나열한다. 인간은 감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짚고 가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누구나 호르몬의 사정권 안에 들어선 표적일 뿐이다. (사실 호르몬이 내 안에 들어와있는 거긴 한데.)

 

명화라는 단어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대중에게 널리 공개된 작품의 고화질 이미지를 보고 아주 단순한 감상을 쓰는 과정에도 힘이 실리기에, 산뜻한 작품 분석을 하고자 해도 마음을 편하게 먹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제작 후 많은 시간이 흘러 나의 나이를 제곱으로 뛰어넘은 것은 물론 그 세월을 통해 시대상과 작가 의도가 반영되어 작품 자체의 가치를 증명받았기 때문이리라. 한 마디로 관객에 입장에서 작품 자체의 아우라에 눌리기 쉽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내가 감히 이 작품을 평가해도 되겠냐는 겸손에 명화는 접할 때도 각을 단단히 잡고 접한다. 분석이나 감상도 내뱉기 쉽지가 않아, 별생각이 다 들어도 입을 꾹 다물게 된다. 내가 모르는 뜻과 사정이 있겠거니. 이때 드는 의문. 고전은 영원한 권위서로만 남아야 하는가?

 

필자는 이 부분을 먼저 짚고 넘어간다. 그 어떤 그림도, 화가의 감정을 담았을 뿐이라고. 우리는 대상에서 무조건적인 가치를 찾는 습관을 걷어내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대의가 없는 작품이었을 수 있고, 어젯밤 공원에 두고 온 사과 한 알이 아쉬운 마음에 붓을 들었을 수 있다. 물론 그 안에 숨은 가치를 해석하고 공식화하는 과정을 통해 명화가 완성되는 것이겠으나 베이스는 화가의 감정이라는 포인트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잘났고 아무리 엄청난 대작일지라도 결국 순간의 감정을 갖다 펴 바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 또한 나의 개인적인 성향이겠지만 내게 예술을 분석한다는 건 마냥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의 생각을 완벽히 해석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고(우리는 타인이라는 걸 잊지 말자) 작품을 통해 전달받은 의견에 격렬히 동의하지 않는 경우 상당히 유쾌하지 않으므로. 사과 한 알을 잃어버린 것보다 커피 한 잔 식어버린 게 더 속상하다면? 발화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그럴 때 해야 하는 생각. 아 이거 이 사람 감정이지. 무언가 잃었다는 감정을 그려낸 거였지. 무언가라는 대명사 아래에서 포용은 어렵지 않으니.

 

호르몬은 인간의 컨디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호르몬은 하나의 요인으로만 작용하지 않고 여러 호르몬과의 결합을 통해 복합적이고 깊고 짙은 효능을 지니게 된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치게 되는 모든 사건은 호르몬을 통해 재구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우리가 접하는 명화는 모두 각 화가의 호르몬을 단면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해와 공감은 어떨까. 일그러지는 사람의 표정을 그려낸 작품을 통해 우울과 절망을 이해하는 건? 감정은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 또한 굉장히 건강한 활동이므로. 우리는 호르몬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신체 구조를 가졌고 그로 인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 것도 당연하다. 이제부터는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관건이겠지. 감정의 생성과 흐름 자체는 지극히 깊은 수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술을 비롯한 세상은 그로부터 시작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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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 뇌과학 만화
장이브 뒤우 지음, 최보민 옮김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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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작지만 이 책은 (생각보다) 크다. 나는 죽을 때까지 나의 뇌를 쥐어보지 못할 테지만 이 책을 통해 오랜 연구를 기반으로 정형화된 인간 뇌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뇌를 알아가는 과정을 받아들이는 뇌. 여러모로 고생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어릴 적 좋아하던 콘텐츠 중에 노란 버스를 타고 인체 곳곳을 탐험하는 만화영화가 있다. 좋아했다고 해서 그 이유가 대단한 건 아니고,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을 몸속을 만화로나마 접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얕은 정보와 가벼운 유머를 섞어 제공했기에 더욱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장착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청 연령층이 낮은 애니메이션이라고는 하지만 과학적인 장르로 분류되는 콘텐츠인 것은 물론, 표본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과학적 이론과 원리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이 아직까지도 매력적이다. 근데 이 책도 마찬가지네. 내 뇌를 만화적 상상력으로 설명해 준다고?

 

이 책을 펼치면, 분홍색의 캐릭터가 한참 낙심한 채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양새가 가장 먼저 보인다. 얼핏 보면 뇌 같다. 뇌인가? 한 페이지씩 넘길수록 뇌가 하는 일, 뇌가 손상된다면 벌어지는 일, 뇌의 진가를 나열하는 페이지가 연속되는데 그럼에도 가장 첫 장면은 낙심한 분홍색 덩어리로 정했다는 사실이 너무도 유쾌했다. 뇌는 많은 일을 하는 대단한 기관이지만,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신체의 일부라는 점이 상당히 가깝게 느껴졌다. 우울한 포즈의 뇌도 이런 멋진 역할을 해. 그런 뇌를 품은 너는 얼마나 무한한 상상력과 능력을 지녔을지 되돌아보라는 연출 같아서. 이토록 다정하고 통쾌한 비유라면 뇌도 만족할 거라 확신.

 

같은 그림을 보았음에도 다른 사람과 내가 기억하는 부분이 다르게 묘사되는 경우가 있다. 정면을 보는 사람과 옆을 바라보는 사람, 꽃병의 모습과 얼굴을 가까이한 두 사람의 모습, 토끼와 오리. 보는 이가 헷갈리도록 포인트를 적절히 섞어 그린 그림임을 알면서도 찰나마다 다르게 보이는 그림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놀랍게도 이벤트를 겪는 것도 뇌의 역할이라고 한다. 내가 어떤 것을 보느냐에 따라 각자 다른 구역이 활성화되고 이는 결국 내가 보는 것은 내가 정한다는 결론에 닿게 된다고. 이에 따라 내가 보는 것은 내가 정하고, 생각은 눌러진 버튼에 따른 결과를 뱉어낼 뿐이라는 간단한 문장이 완성되었다. 왠지 모르게 약간의 부담이 덜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랜만에 동화책을 읽는 기분이라 좋았다. 이렇게나 그림이 가득한 책도 오랜만이고, 단단한 커버를 책상에 지지하는 감각조차 반가웠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 이 내용을 이해하고 무언가 깨닫는 모든 과정, 이곳에 글을 쓰기 위해 내 생각을 요약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모두 뇌의 명령을 따른다는 사실이 가장 짜릿하고. 과학적 원리와 세상의 진리는 잘 변하지 않지만 나의 생각은 계속해서 변한다. 그 생각을 뱉는 것조차 뇌의 역할이니, 결국엔 모든 것이 나의 머릿속에서 일어난다는 건데. 옛날이었으면 뇌가 한참이나 낯설게 느껴졌을 내용이나, 지금은 그냥 반갑다. 고생 많은 신체기관의 노고를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건가.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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