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씨, 도파민 과잉입니다 - 안철우 교수의 미술관 옆 호르몬 진료실
안철우 지음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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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부터 마음에 꼭 든다. 희로애락을 구분 지어 각 감정에 영향을 주는 호르몬을 나열한다. 인간은 감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짚고 가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누구나 호르몬의 사정권 안에 들어선 표적일 뿐이다. (사실 호르몬이 내 안에 들어와있는 거긴 한데.)

 

명화라는 단어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대중에게 널리 공개된 작품의 고화질 이미지를 보고 아주 단순한 감상을 쓰는 과정에도 힘이 실리기에, 산뜻한 작품 분석을 하고자 해도 마음을 편하게 먹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제작 후 많은 시간이 흘러 나의 나이를 제곱으로 뛰어넘은 것은 물론 그 세월을 통해 시대상과 작가 의도가 반영되어 작품 자체의 가치를 증명받았기 때문이리라. 한 마디로 관객에 입장에서 작품 자체의 아우라에 눌리기 쉽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내가 감히 이 작품을 평가해도 되겠냐는 겸손에 명화는 접할 때도 각을 단단히 잡고 접한다. 분석이나 감상도 내뱉기 쉽지가 않아, 별생각이 다 들어도 입을 꾹 다물게 된다. 내가 모르는 뜻과 사정이 있겠거니. 이때 드는 의문. 고전은 영원한 권위서로만 남아야 하는가?

 

필자는 이 부분을 먼저 짚고 넘어간다. 그 어떤 그림도, 화가의 감정을 담았을 뿐이라고. 우리는 대상에서 무조건적인 가치를 찾는 습관을 걷어내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대의가 없는 작품이었을 수 있고, 어젯밤 공원에 두고 온 사과 한 알이 아쉬운 마음에 붓을 들었을 수 있다. 물론 그 안에 숨은 가치를 해석하고 공식화하는 과정을 통해 명화가 완성되는 것이겠으나 베이스는 화가의 감정이라는 포인트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잘났고 아무리 엄청난 대작일지라도 결국 순간의 감정을 갖다 펴 바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 또한 나의 개인적인 성향이겠지만 내게 예술을 분석한다는 건 마냥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의 생각을 완벽히 해석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고(우리는 타인이라는 걸 잊지 말자) 작품을 통해 전달받은 의견에 격렬히 동의하지 않는 경우 상당히 유쾌하지 않으므로. 사과 한 알을 잃어버린 것보다 커피 한 잔 식어버린 게 더 속상하다면? 발화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그럴 때 해야 하는 생각. 아 이거 이 사람 감정이지. 무언가 잃었다는 감정을 그려낸 거였지. 무언가라는 대명사 아래에서 포용은 어렵지 않으니.

 

호르몬은 인간의 컨디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호르몬은 하나의 요인으로만 작용하지 않고 여러 호르몬과의 결합을 통해 복합적이고 깊고 짙은 효능을 지니게 된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치게 되는 모든 사건은 호르몬을 통해 재구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우리가 접하는 명화는 모두 각 화가의 호르몬을 단면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해와 공감은 어떨까. 일그러지는 사람의 표정을 그려낸 작품을 통해 우울과 절망을 이해하는 건? 감정은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 또한 굉장히 건강한 활동이므로. 우리는 호르몬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신체 구조를 가졌고 그로 인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 것도 당연하다. 이제부터는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관건이겠지. 감정의 생성과 흐름 자체는 지극히 깊은 수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술을 비롯한 세상은 그로부터 시작되니까!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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