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건 내가 집에서 독립하고 성인이 되어 나름의 취향을 쌓아가던 시기와 겹쳤다. 멋진 취향을 가진 어른을 만나면 자연스레 그들과 아빠를 비교하게 됐다. 집 밖의 세상이 전부였던 철없던 시기의 나는 어쩌면 아빠의 식도락이 아니라 우리네 인생 자체를 자조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 사과집,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 中



 아버지의 전화가 떠올랐다.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물으며 마지막에 조금 어설픈 톤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 목소리가. 뜬금없다고, 우습다는 톤으로 내가 대꾸하자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을지도 모르잖아.'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감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당신 목숨을 인질 삼아 그런 말들로 내 태도를 다그치곤 했다. 그땐 정말로 아버지가 죽을까봐, 학교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게될까봐 무서웠던 시기도 있었는데 어느덧 시간은 많이 흘렀고, 나는 그런 아버지의 말에 요즘은 100세는 거뜬히 살아, 하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더군다나 이젠 사랑 고백을 하기 위해 살 날을 운운하다니. 아버지도 많이 변한 모양이다. 

어렸을 때 내게 아버지는 다정하면서도 무서운 존재였는데,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나 싫을 수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사랑이 포기가 안 되는 존재였는데, 이젠 나도 아버지가 느낀 쓸쓸함이나 분노나 외로움 따위를 어렴풋이 알게 된 걸 보면 삶이란 무엇하나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없고 확신할 수 있는 감정조차 없는 걸까, 생각하게 된다.



2.

이렇듯 '메타버스'란 용어를 세상에 다시 불러들인 건 엔디비아의 젝슨 황이다. "메타버스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그의 말은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의 휴스턴 연설인 "우리는 달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와 같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시작점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 이임복, <메타버스, 이미 시작된 미래> 중.


 메타버스가 유행이래, 라는 말은 쉽게들 하는데 그래서 그 메타버스가 뭔지 대체불가토큰은 뭔지 물으면 실체없는 대화가 핑퐁핑퐁하다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때때로 어떤 지식들은 아는 척을 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포장만 계속해서 까다가 종착역에 이르러서야 아주 작은 돌맹이 하나를 발견할 때. 그런 게 중고나라 사기가 아니고 뭐겠냐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실용서들은 도움이 된다. 실용에 치우쳐 깊은 생각은 못 하게 하더라도 최소한 다른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는 초석은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한 유니버스를 굳이. 차라리 그 지긋지긋한 '제O의 물결'이라는 말을 꺼내는 게 낫겠다 싶다.


 코로나가 급속도로 변화하며 이젠 '오미크론'까지 왔다는데 그것도 참 웃픈 얘기다. 베타, 감마라고 이름지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코로나가 장악할 줄은 몰랐으니. 어쩌면 변종의 단위를 너무 자잘하게 나눴는지도 모른다. 미래에 코로나가 종결되고 다시 코로나를 재평가할 때는 아주 먼 옛날에 생물의 구분을 잘못 지어 수정했던 역사와 같이 코로나 또한 좀 더 굵직하게 분류될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가 끝났을 때도 과연 메타버스는 현재의 위상을 가질 수 있을까. 요즘 가장 궁금한 물음이다. 결국 인간은 감각과 감정으로 향할텐데, 메타버스가 감정은 채워준다해도 감각에 대한 결핍까지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 




"굳이 다 말하려고 할 필요 없네.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연설문이 될 수 있네."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있네. 그걸 존중해주게."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반복은 좋지만 중복은 안 되네."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상징적이고 압축적으로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 지침> 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에 대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절제된 삶이 왜 아름다운지도. 시간은 절대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


책 내용 중, 술을 마시는 문인들이 줄어 아쉽다는 한 시인의 푸념을 보고 술을 끊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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