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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라 그래 (양장)
양희은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평점 :
1
별점의 기준이 흔들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별점 1점 =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별점 2점 = 왜 이것밖에 쓰지 못하니
별점 3점 = 나쁘지 않지만 나까지 읽을 필요는 없었군
별점 4점 = 추천
별점 5점 = 책 때문에 행복했음
이라는 느낌으로 별점을 매겼다(고 생각했다)
근데 오늘보니 꽤 괜찮은 책에 3점이 매겨져 있고, 놀라서 한참 전에 매겼던 3점짜리 책을 봤다가 혼잣말이 삐죽 새어나왔다. 이 거지같은 책에 3점을 줬다고?
아무래도 점수의 기준이 매번 달라지는 것 같다. 이래서 훌륭한 몇몇 이들은 책에 별점을 매기지 않는다고 했던가. 별점 기준이 강화된 건지 아니면 그냥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다르게 주는 건지 모르겠음. 아무튼 별점은 믿을 게 못된다는 결론. 그나마 다행인 건 5점짜리 책은 아무리 그 기준이 바뀌어도 좋다는 거. 최소한 내 취향엔 맞으니까 살면서 다시 읽어볼 필요는 있겠지.
2
그 후로 열흘을 더 만났는데 참 이상했다. 남자 앞에 서면 으레 발동하는 치기가 묘하게 잠잠한 것이었다. '이래도 떠나지 않겠다고? 이래도 계속 내 옆에 있겠다면 그때는 봐줄 수도 있지' 하던 식의 치기가 이 사람 앞에서는 생기질 않았다.
- 양희은, <그러라 그래> 中
연애를 하면 늘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다. 확인도 적당히여야 하는데, 상대의 마음을 믿지를 못하고
이래도? (통과)
이래도 안 떠날 거야? (통과)
이번엔 떠나겠지 (통과)
라는 식으로 산 넘어 산인 격의 테스트를 무수히도 거쳤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 어리석은 연애들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R.I.P..)
지금의 남자친구와는 연애초부터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길래 나도 어리둥절한 마음이었다.
'내가 연애에 드디어 지친 건가?'
'아님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건가?'
지쳤다고 하기엔 난 '사랑'이란 단어에도 설레는 로맨티스트였고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기엔 엎드려서 그와 통화할 때마다 내 발이 공중에서 자주 퍼덕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우리의 선택이 엇갈렸을 때, 내 선택을 비판하지 않고 천천히 이유를 들어주었다.
날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서도 존중해주었다.
여자에겐 이래야 한다, 라는 교과서적인 행동으로 감동을 주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진솔하게 마음을 전하곤 했다. 더군다나 그는 나를 온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신뢰를 깨트리고 싶지 않았을 거였다.
3
Q. 동시대 작가들의 소설을 읽을 시간이 있습니까?
A. 그럴 시간은 별로 없어요. 소설가가 된 뒤에 제가 편견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새로운 소설이 제 것보다 형편없다고 생각되면 그 소설을 안 좋아하지요. 혹은 그것이 제 소설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역시 그 소설을 안 좋아한답니다.
- 파리리뷰, <작가란 무엇인가>의 움베르트 에코 인터뷰 中
작가 지망생인 봄밤에겐 마음이 변화되는 3개의 단계가 있었다.
1단계 : 비판의 시기 ('정말 별로다. 고작 이런 책을 사고 읽는다고? 이 정도면 내가 쓰는 게 낫겠어.')
1단계 후에 봄밤은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2단계 : 혼란의 시기 ('내가 썼지만 정말 잘 썼다' 라는 생각과 '이런 거지같은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다니'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한다)
3단계 : 정화의 시기 (제 아무리 별로인 책이라도 그 책을 쓰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생각하며 아득해진다)
지금은 그냥 독자의 시기. 쓰지 않고 읽기만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가끔 영 별로인 책을 읽으면 여전히 배아프긴 하다.
4
어젯밤에 저녁부터 새벽까지 하이킥을 봤다.
유튜브에 있는 최다니엘과 황정음의 서사 몰아보기를 눌렀는데 그게 5시간짜리인 줄은 몰랐지.
말그대로 몰아보기만 할뿐 대충대충 잘라서 보여주는 건 아니었던가보다.
옆으로 누워서 노트북도 같은 방향으로 옆으로 눕히고선 낄낄거리면서 보고있으니 동생이 날 보고 '과거에 빠져 사는군'이라고 한다.
"원래 나이들면 과거를 추억하며 사는 거야!" 라고 소리쳤더니 아빠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본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도 과거는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