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 전에 쓰는 글들 - 허수경 유고집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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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에 구입한 후 이제야 완독을 했다.

어떤 때는 몰아서 읽는 것이 버거워 내려놓기도 했고 어떤 때는 지루해서 책을 손에 쥔 채 잠이 들었고 그러다 아침에 옆에 구겨진 채 놓여있는 책을 보면 이 글을 쓴 사람이 하늘을 향해 걸어갔다는 것에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글을 가장 잘 쓰는 사람은 시인이 되고 그보다 못한 사람은 소설가가 되고

그보다 글을 못 쓰는 사람은 평론가가 된다고 누가 그랬었다. 


글을 가장 잘 쓰는 사람이 썼는데 왜 시는 팔리지 않아, 라는 물음이 입안에서 맴돌았고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새로운 형식의 시들과 삼행시가 떠올라서

'시가 정말로 소설보다 나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들이 모조리 잘못되었다는 것을 허수경 시인같은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다.


그러니 시와 소설과 평론이라는 형식을 두고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없는 일인지, 무슨 글을 썼느냐보다는 누가 썼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소설인데도 시같이, 시를 소설같이 평론같이, 혹은 기사같이 어느 유행가 가사같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날아다니며 글을 쓴다. 존 버거의 글은 마치 사진같고 존 윌리엄스의 소설은 마치 시 같고 때로는 그 글 전체가 그저 한 인간 같다. 


허수경 시인의 시는 내게 소중한 한 친구의 선물로 처음 접했었다. 어둡고 캄캄하지만 크리스탈 잔이 빛나던 그 공간에서 친구는 술잔 옆에 리본으로 감싸진 그 책을 내게 건넸다.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이라니.

나는 그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웃음이 터졌다. 

꼭 내 마음을 대변하는 제목이잖아.

차가운 심장 때문에 제대로 표현 못하고 늘 엉거주춤한 위치를 택해 서 있던 나를 위한 책이잖아.

하지만 차가운 심장을 가진 내게 그 책은 어려웠다.

얼마안가 그녀의 유고집이라는 이 책을 발견했고 나로선 그 시집을 이해하고 싶어 이 책을 택했다. 그러니 운명적이라는 건 이럴 때 쓰는 거 아닌가, 그 친구를 만난 그 시간과 그래서 만나게 된 시집과 그리고 이 책까지. 


지난 번에 자습할 것을 안 가지고 왔다는 아이에게 교무실로 가서 내 책 중 읽고 싶은 것을 가지고 오라고 했더니 이 책을 골라왔다. 많은 책 중 무엇을 골랐을까 궁금해서 아이가 교실 문을 열자마자 아이의 손을 봤는데 보라색으로 칠해진 이 책이 들려 있었다.

그때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직 어린 10대가 가기 전에 쓰는 글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이해할까 싶었는데 역시나 몇 분 후 아이는 책을 덮고 잠에 들었다.


하지만 교무실에서 이 책을 골랐던 그 순간, 가기 전에 쓰는 글들 이라는 제목이 아이의 마음을 흔들었을 것을 생각하면, 이미 돌아가신 분의 글이 찰나의 순간 어떤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힘은 이미 죽은 힘임에도 불구하고 강하구나, 갸냘프게도 강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쉬운 마음으로 글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글을 썼던 지난 날을 반성한다. 역시 나는 쉽게 읽히지 않는 글이 좋다. 스르륵 읽히지만 눈동자가 지나가는 길에 어떤 궤적을 만들어내는, 그래서 다시 그 궤적을 바라보게 만드는 글이 좋다.


어제는 이 책의 끝을 읽고,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늘었다는 것이 조금 슬펐다.

- 쉽게 이해가 되는 시,그러면서도 미학적 긴장이 떨어지지 않는 시, 진짜 운율이 살아 있는 시, 낭송될 수 있는시. 김소월의 시가 아직도 나를 울릴 때, 그때 내가 가야 하는 시의 길이 정해지는 것이다. 서정주, 백석의 시. 서정시의 본령으로 들어가는 시. 만일 내가 「딸기」라는 시를 쓴다면 사람들은 딸기를 볼 때마다 그 시가 떠오르는, 그런 것. - P24

- 어제는 혼자서 술을 많이 마셨고 많이 울었다. 한 인간이 한 인간에게 배려랍시고 하는 것이 너무나 서운했나보다. 누구에게도 침범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곳을 누군가가 사정없이 들어왔다고 생각한 시간은 술을 마시게도 하고 울게도 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이 서울이라는 곳에서 잠시 만나고 다시 혼자가 되고 그리고 뒤척이다가 잠이 드는 거, 참 쓸쓸하다. 그러나 이 십일월의 아침에 감을 만난다. 감이 걸린 늦가을 하늘은 맑고 청랑하다. 뭘 해도 시달리지 않고 마음 편하게 하고 싶다. 이렇게 설레고 떨리는 것이 싫다. - P87

2012년 5월 8일
-오월의 빛 속에서 소포를 부치고 돌아와 파울 첼란이 번역한 『만델스탐』을 읽는다. 이 전세기의 시인은 시베리아에서 죽었다. 수용소에서 죽은 시인, 살해당한 시인, 무엇을 보자고 세계는 시인을 그렇게 죽였는지 모르겠다. 이 세기에도 어디에선가 시인들은 살해당하고 있을 것이다. 오월 봄볕을 쬐며 막 돋아나오는 깻잎의 싹을 오래 들여다보며 이제 오지 않을 사람의 그림자가 저편 하늘로 가는 것을 보았다. - P160

-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가장 긴밀하고도 민감한 곳을 팔아야 하는 것이다. 너는 이 세기의 운명에서 놓여날 수 있니? 너는 팔려야만 존재한다. 팔리지 않으면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발터 벤야민이 점성가라고 생각하는데 무섭다. 나는 예술가로서 팔리지 않는다. 즉, 그러니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청중이 무섭고 낯설다. 이런 생각을 할 때쯤이면 오븐에 머리를 박고 죽은 한 여인이 생각난다. 그러나 그것조차 한 진실일 뿐. - P170

- 이생은 이렇게도 끝날 것이다. 태양 밑에서 쉬지 않고 녹아가는 아이스바처럼 숨을 거둔다, 라는 것은 마지막 한 숨을 맹렬하게 쉰다는 걸 뜻할 것이다. - P199

2014년 3월 23일
- 어제의 산책. 숲과 함께한 산책. 느끼고 본 것이 쓸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설 때가 많다. - P208

- 하루종일 기다린다.
아무 생각 없이 하루종일 기다린다.
감기 없는 세상을
독재자 없는 세상을
몸 없는 세상을
약이 나를 기다리게 했다.
나른한 신경이 나를 기다리게 했다.
저녁이 오는 것을
밤이 오는 것을
밤에 창밖에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라일락 곁에서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그들은 포옹을 기다리고 있거나
입맞춤을 기다리고 있거나
정말 기다리는 게 무언지 알게 될 때까지
약은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 P211

- 저녁에 가야 할 곳을 생각하다가 잠시 어두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길녘에서 지나가는 새들이 방향을 바꾸면 울음보다 더 진한 노을이 숲을 가로질러 서녘에 문득 머물다 갑자기 가버리는 광경을 보기도 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응급차의 소리가 울릴 때마다 노을은 잠자리의 날개처럼 떨었다. 더 이상 이 세계로부터 탈출할 수 없던 새들은 없는 어미를 노래했다. 아주 어려운 세계였다. 내가 증오하는 것들을 새들은 증오하지 않았다. 그것은 불면의 내 밤을 향하여 누군가가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들려주는 노래 같았다. 없어진 노래, 마음속으로는 있었으나 이 길을 따라 걸을 때 아무도 없었던 노래. 나는 이때 내 존재가 생긴 것 같아 서러웠으나 그런들 어떠랴. 어미 흉내를 내며 자살하던 새들도 그랬을 것 같다. - P215

- 어제는 프랑스어 수업을 받으러 간 날, 마틸데라는 나의 맞은편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 이에게 우연히 말을 걸 일이 생겼다. 그녀는 최근에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슨 수술이었냐고. 그녀는 말했다, 자궁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고. 6주 동안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었다고 했다. - P225

- 우리 모두는 실패할 것이라는 악몽에 시달린다. 악몽에 시달리든 시달리지 않든 우리는 실패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패하는, 실패하는 존재다. 죽음은 모든 실패의 어머니이다. 몸의 실패. 이것이 바로 인간의 실패의 근원이다. - P227

달리면서 그녀는 앞서 달리는 아들에게 천천히 달리라는 잔소리를 하다가 옆에서 가는 개를 보다가 또 뒤를 돌아보며 작은 차가 안전한지 아닌지 확인했다. 혼자 달리는 사람은 없다. 특히 어머니는 혼자 달릴 수 없다. - P227

- 내일은 사월이다. 그게 뭔가. 나는 모레를 기다린다. 내일이 아닌 모레를. - P235

이렇게 스스로 선택한 고립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독한 외로움이 낳는 무기력. 어떤 글도 어디에도 다다르지 않으리라 싶은 무기력. - P236

그렇다고 죽음이 딱히 실감나는 것도 아니다. 살기 위한 긴 싸움을 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또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마도 시를 생각하고 쓰는 일이겠지만 그마저도 앞으로 두 달간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집어치워버릴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경험해보는 시간이 시보다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것이야말로 시 쓰는 인간들의 근원적인 불편이 아닌가? 시 쓰는 인간뿐인가. 예술을 하는 인간들의 근원적인 불안. 바로 예술은 예술 내의 필연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우연으로 생겨난다는 것. 수공예가 아닌 예술가가 진정 드문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 P296

간절한 한 사람의 시간을 붙들고 있는 것, 그 시간을 공감하는 것, 그것이 시를 쓰는 마음이라는 생각을 나는 하곤 한다. 사람의 시간뿐만이 아닐 것이다. 어린 수국 한 그루를 마당에 심어놓고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는 일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기 새들이 종일 지저귀던, 늙은 전나무에 있는 새집을 바라보던 시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간절한 어느 순간이 가지는 사랑을 향한 강렬한 힘. 그것이 시를 쓰는 시간일 것이다. 시를 쓰는 순간 그 자체가 가진 힘이 시인을 시인으로 살아가게 할 것이다. - P299

- 젊은 시절에 읽었던 몇몇의 시 말고는 자신을 움직인 시가 없다는 글을 읽으며 짜증이 났다. 그건 타인들이 쓴 시 탓이 아니라 자신 탓은 아닌가. 젊은 날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자신 탓. - P304

- 바다에는 쓰레기들만이. 북극의 얼음벽들은 무너져내리고 아픈 이에게 내일은 덜 아플 거라고 말하는 이 순간은 무엇인가. 예쁘게 차려입고 아직 오지 않은 사랑을 맞이하러 가는 저녁때처럼 모든 게 다 살아 있던 순간이 자꾸 멀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깨진 맥주병이 뒹굴고 유릿조각에 종소리가 찔리고 있다. - P305

시인으로서 내 존재는 고아이다. 누군가가 나를 태어나게 했고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홀로 남겨진 고아. 고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기댈 전통이 외부에 있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전통이라는 것에 기대면 스스로를 베끼는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위기감 때문이다. (중략) 또한 전통은 어떤 의미에서는 독재자이다. - P353

수많은 우연의 순간에서 시는 나온다. 그 순간이 언제일지 알 수 없기에 한시라도 시인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균열의 순간에 균열을 경험하지 못한다. 순간을 재구성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비슷한 순간을 시 언어로 만들어 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비슷하지 그 순간이 아니다. 균열을 감지할 때 온전히 경험을 해야 한다. - P358

이 세계를 그리고 인간을 가난과 부, 권력자와 약자로 이분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인간의 결핍에 관심이 있다. 결핍이 빚어내는 내면은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결핍을 인식하는 것이 어쩌면 시쓰기의 시작일 것이다. - P360

내 세대는 아직도 자신을 개인으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또 어떤 의미에서 내 세대는 ‘적’과 오랫동안 대치하면서 ‘적’의 얼굴을 닮아갔는지도 모르겠다. 내 세대는 유감스럽게도 ‘개인’을 발견하고 인식하고 온몸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이 당한 억압을 통하여 내면을 해방하는 것에 실패한 세대인 것이다.(‘내 세대’라고 적었지만 이건 나만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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