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작가와의 대화 - 노벨문학상 작가 23인과의 인터뷰
사비 아옌 지음, 킴 만레사 사진 / 바림 / 2020년 1월
평점 :
품절



1. 위대한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하는가, 삶으로 말해야 하는가?

2. 글이 정 말 로 모든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가?

3. 누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인가?


번역투가 심하고, 심지어 따옴표조차 엉망으로 들어있는, 제대로 탈고가 되지 않은 책이지만

여러가지 물음을 던지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


인터뷰를 한 모든 노벨문학작가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들이 다 옳은 것도 아니기에

비판과 수용을 겸하며 읽을 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가장 공감된 두 페이지,


p.99

시인은 종교를 “인간이 가진 모든 것 중 가장 떠받쳐지는 환영에 불과하다.”라고 정의한다. “나는 전위적 무신론자가 아닙니다. 나는 대답보다 질문이 마음에 듭니다. 나의 신성은 ‘나는 모른다’입니다. 모두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들 중 아무도 사후세계를 알 수 있는 메커니즘이 없다는 것을. 알려지지 않은 일들은 삶을 매력적인 것으로 바꾼다는 것을.”



p.187

일터에서도 자기만의 의식을 가진, 정신적으로 독립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나는 주도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로서의 개인을 옹호합니다. 자기 주변의 생각과 굳이 일치시키지 않는 존재 말입니다. 





가장 씁쓸한 한 페이지


p.401

전직 대통령 데 클레르크는 지금쯤 멋진 별장에서 낚시하고 있을 겁니다. 남아공 국민은 보복하지 않습니다. 자국민에게 그런 짓을 자행하고도 자기 나라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가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여느 국민처럼 남아공에 살고 있습니다. 아무도 귀찮게 굴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기 힘든 우리나라 흑인들의 관용입니다.





가슴에 새겨야 할 한 페이지


p.277

“단순한 카테고리로 나누는 세상 분류에 치우치지 않은 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반면, 누군가가 말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보지 않으려고 그렇게 말하는 누군가에게 딱지를 붙이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그것들은 현관 옷걸이에 외투처럼 걸려 있었죠. 독재의 일면은 그런 시골의 삶과 비슷합니다.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갈 자유를 박탈하는 것, 자신의 의지대로 배우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 계획된 것들만 허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독재입니다. - P39

누구나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심지어 매우 가난한 사람도, 절망 한가운데 있는 사람도 아름다워지길 원합니다. 브라질 빈민가 허름한 집에서 잘 다려진 흰 셔츠를 입고 행복한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소년을 보았어요. 그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름다움은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 P41

독일인들은 난민들이 타고 오는 기차가 도착할 역으로 음식, 옷, 아동용 장난감 등을 들고 나가 애정으로 그들을 받아 주었어요.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통해 박해를 피해 도망쳐온 동독인들과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 P45

시인은 종교를 "인간이 가진 모든 것 중 가장 떠받쳐지는 환영에 불과하다."라고 정의한다. "나는 전위적 무신론자가 아닙니다. 나는 대답보다 질문이 마음에 듭니다. 나의 신성은 ‘나는 모른다’입니다. 모두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들 중 아무도 사후세계를 알 수 있는 메커니즘이 없다는 것을. 알려지지 않은 일들은 삶을 매력적인 것으로 바꾼다는 것을."
- P99

실제로 작가는 2000년 노벨문학상 수상때까지 수채화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지구상 가장 값진 문학상 발표 날 그의 아파트 경비원은 작가를 찾아온 기자들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아닙니다. 여기는 그런 작가가 살지 않아요. 당신들이 찾는 그는 화가라고요." - P129

시인은 도피를 연출하는 자이며 역설적으로 그의 언어는 도피자의 언어입니다.
- P135

"나는 히틀러 청년대에서 군 복무를 했습니다. 전쟁이 터지자 자원 입대했습니다. 해군이 되고 싶었지만 무시무시한 나치 엘리트 부대인 친위대에 배속되었습니다. 나는 총 한 방 쏘지 않았어요. 작전에는 딱 두 번 나갔는데 거기서 부상을 입고 미군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치 친위대로 가는 것은 놀랄 일도 의아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미안하게 생각할 일도 아닌데 결과는 치욕스러운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나는 총통을 믿었고 독일의 승리를 믿었습니다. 12살 때부터 착각에 빠진 채 그들에게 현혹된 채 나치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 시대의 독일 젊은이들은 그런 우리를 부러워했습니다. 내가 나치의 범죄를 깨달은 것은 전쟁이 끝난 후였습니다. 내게는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진실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정상을 참작해줄 사람도 없고 내가 젊은 날 저지른 멍청한 짓이었다고 변명해도 나에 대한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 P165

그 책의 주제는 날조된 기억입니다. 우리의 기억은 우리를 어떻게 속일까요? 사건 순서를 뒤바꾸고 원래 없던 의미를 부여하고 툭하면 미화하고 품위있게 만들어 내가 했던 것을 구체적인 것들로, 객관적인 것들로 한정시키는 선에서 마무리했습니다. 나는 내 생각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거나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 P169

우리는 말합니다. 민주주의의 적은 극우와 극좌, 이슬람주의자들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로붙터 자유의 내용물을 비워내고 있는 것은 거대 기업과 은행, 입법권을 쥐고 흔드는 정치 권력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쫓아내는 기업들은 그들의 주식이 오르는 동안 우리에게 익숙해진 파렴치한 타락행위를 일삼는 것도 부족해 어떻게 법을 지키냐고 말합니다. 정치가들은 그들의 편법을 묵인합니다.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들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 P172

우리는 반드시 이야기해야 합니다. 치명적인 트라우마까지 그 모든 것을. 나는 지금까지 할 수도 알 수도 없었지만 그렇게 된 데 매우 만족합니다. - P172

일터에서도 자기만의 의식을 가진, 정신적으로 독립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나는 주도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로서의 개인을 옹호합니다. 자기 주변의 생각과 굳이 일치시키지 않는 존재 말입니다. - P187

거의 모든 논쟁거리는 내가 솔직히 순진하게 답하는 순간 시작됩니다. 터키 타블로이드는 그 중 일부를 오려 제멋대로 과장, 왜곡해 슬쩍 흘립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처럼 나를 증명해야 합니다. 나는 내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말은 할수 없지 않나요? ‘무서워서 침대 밑으로 숨어야겠어요.’ 어쨌든 나의 기본적인 본능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문학적인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방구석에 쳐박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 P218

"어릴 때 내가 본, 신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하녀나 요리사들뿐이어서 나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믿음을 연관시켰습니다. 신이 전능하다면 나를 용서할 거라고, 그런 이유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나를 이해해줄 거라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 P218

복음서는 원래 그리스로 간 이주민 즉 팔레스타인이 아닌 그리스 세계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쓴 것으로 거기에는 그들의 상황에 적합한 관습이나 관례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내 피를 마시라’라고 말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유대인에게 피를 마시는 것은 이슬람교도들이 그렇듯 잘못된 것입니다. 한 사도가 로마인들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지 그리스도에게 뭍는 장면에서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동전을 잘 들여다보라고 하자 베드로는 ‘카이사르의 얼굴이 나와 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그리스도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주라’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유대인의 동전에는 아무 얼굴도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동전에 인간의 얼굴을 재현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얼마든지 많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 P237

여행에 대한 ‘네이폴 방식’은 이전에 존재하는 모든 유형의 이론을 창고에 처박아버리는 것이다. "내가 여행할 지역에 대한 단순한 정보 서적조차 읽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 깃든 어떤 인상을 비워낸 나라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물론 그것들을 읽습니다. 엄청나게 읽습니다. 이 과정이 끝나야 비로소 그때부터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특정한 생각을 갖고 여행하지는 않습니다. 거기서 나온 결론들은 고쳐지지 않을 것입니다." - P272

일부 위대한 영어권 작가들에 대해서도 호평이 나오지 않는다. 그에게 제인 오스틴은 ‘단지 그 시대의 특정 양식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매력을 줄 뿐’이고 헨리 제임스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작가로 모험을 감행한 적도 진지했던 적도 없으며 마차 상석에 앉아 ‘젠틀맨’같은 폼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헤밍웨이도 자신이 사는 세계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전쟁 중 파리에 있었지만 독자에게 준 것은 그가 무슨 칵테일을 마셨는가 뿐입니다."
- P275

"단순한 카테고리로 나누는 세상 분류에 치우치지 않은 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반면, 누군가가 말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보지 않으려고 그렇게 말하는 누군가에게 딱지를 붙이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 P277

지평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말한다. "이게 내 나라입니다. 오직 이것만."
- P278

그들을 죽이기 전 간수들은 그들을 무척 상냥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옷걸이에 입었던 옷을 어떻게 거는지, 몸은 어떻게 씻는지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마치 그 곳에서 계속 살아갈 사람들을 대하듯. 아이들은 공놀이를 했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들이 질식해 죽어갈 곳은 풀과 작은 숲과 화단 사이에 있었습니다. - P287

케르테스는 <운명은 없다>에서 아우슈비츠에서는 행복하기도 했다고 말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중략) "우리는 어떤 소설의 단어 하나에만 연연하면 안 됩니다. 성당 벽돌 하나가 아니라 성당 전체를 경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 책에서 독자들은 여러 극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행복’이라는 단어에 서서히 다가갑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그 단어를 만나면 폭발하는데 이것은 고통을 세세히 묘사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살다보면 더 이상 위험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데 그 때가 바로 그런 순간입니다. 그럴 때 나오는 모든 긍정적 자극은 모진 고문 속에서도 오히려 거대한 평온함과 안도감이 들게 만듭니다. - P290

이런 종류의 국제적 사안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의견을 내고자 한다면 그것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좋은 경험이죠.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무책임한 의견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특히 진실이 왜곡되고 정치적, 사상적, 경제적 다양한 이유들로 정보가 조작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 P337

프랑스는 나라 규모에 비해 유독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많은데 정말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 P351

훗날 차우차우는 창문 밖으로 투신자살했어요. - P364

내 경우, 가족과의 유대감은 전혀 없었고 그것이 내게는 너무나 큰 혼란인 동시에 밑거름이 되었죠. 나를 괴롭히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이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설적으로 그것들은 나와 아무 관계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것들이 아니니까요.
- P365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의 피아니스트들은 ‘Que reste-t-il de nos amours’를 연주하고 소설 전체가 우리 삶에서 결국 남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때 많은 경우, 우리 삶에서 매우 짧은 한순간만 남겨진다는 데 집착했어요. 몇 장 안 되는 사진과 다이어리, 사라지는 증인들, 그리고 남겨진 증인들도 명확하지 않은 기억에 의해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 말이죠. 이 세상 모든 것에는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께 마련이죠. 뭔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려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뭔가가 있어야 해요. (중략) 거리, 사람들, 그리고 그것들에 신비를 덧입히죠. 우리의 눈에 평범해 보이는 것들에도 분명히 신비로운 부분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누군가 그것을 자세히 바라본다면 그 신비로운 면을 분명히 찾아내고야 말 것입니다.
- P366

전직 대통령 데 클레르크는 지금쯤 멋진 별장에서 낚시하고 있을 겁니다. 남아공 국민은 보복하지 않습니다. 자국민에게 그런 짓을 자행하고도 자기 나라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가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여느 국민처럼 남아공에 살고 있습니다. 아무도 귀찮게 굴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기 힘든 우리나라 흑인들의 관용입니다.

- P401

"그들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수용소로 데려갔지만 그때마다 나는 다른 쪽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것이 바로 내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고통이고 내가 결고 떼어낼 수 없는 고통입니다." - P166

어떤 사람들은 이제 작가는 더 이상 독일인의 도덕적 잣대가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데 만족합니다. 그 동안 언론은 고맙게도 나를 ‘민족의 양심’이라고 칭송해 주었습니다. 하인리히 뵐에게 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말해 그동안 내가 했던 유일한 것은 내게 주어진 표현의 자유로 나의 권리를 행사해왔다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그때와 똑같은 언론은 잔혹한 주먹을 가하며 내게 주었던 칭호를 거두어 갔습니다. 기쁜 일입니다." - P166

지난날 나치 전력이 있는 정치인, 법관, 군인들에게 가했던 나의 비판에 대해 나는 그들이 나치 권력 조직 속에서 요직을 차지했던 성인 정치가들이고 그들 중 어떤 자들은 나치 이전의 민주공화국을 배반했고 어떤 자들은 나치 선전국 고위관리였으며 어떤 자들은 인종차별 정책의 선동자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나 같은 애송이와 똑같다는 말입니까? 히틀러가 권좌에 올랐을 때 나는 겨우 6살이었습니다. 그런 내게 키신저 같은 늙은 나치를 비난할 것을 강요하겠다는 건가요? 왜, 무슨 이유로? 오늘날 역사가인 요하임 페스트(최근 사망)의 자서전이 다수 출간되고 있는데 그 책에서 그들은 모두 안티 파시스트를 표명하지만 그것들은 순전히 지어낸 것입니다. 잘 보세요. 우편배달원이었던 내 사촌 프란츠는 아무와도 접촉하지 않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군사 법정은 내 사촌을 사형에 처했습니다. 내 사촌에게는 아내와 내 나이 또래의 자식들이 4명이나 있었습니다. 나도 그들을 비난하면서 그들 뒤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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