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아틀리에 -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
김상욱.유지원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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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너무나 실망했다. 추천사가 하등 쓸모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김초엽 작가의 ˝교차와 확장의 순간들을 경험할 것이다.˝라는 말에 꽂혀버린 탓이다. 초반에는 책을 읽으면서 ‘아, 역시 김초엽 작가가 깊이가 없는 글을 쓴다는 지인들의 평은 사실이었어. 그래, 내가 잘못 본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책을 추천하다니.‘ 라는 오만한 생각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 교차와 확장의 순간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일단, 처음에 실망한 건 김상욱 교수님의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는 그저 생각의 흐름을 적어둔 것 같은 글들 때문이었다.
‘아, 역시 세상은 공평해. 과학자가 글까지 잘 쓸 수는 없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하잖아. 검토도 제대로 하지 않은 글을 그대로 출판한 건가? 너무 정리가 되지 않은 글인데. 사람들이 과학을 싫어하는 건 글 잘 쓰는 과학자가 없어서 과학책이 재미없기 때문이야. 분명해.‘
‘우리나라엔 빌 브라이슨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없는 걸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 때문에 책에 더 집중하지 못했다. (사실 저 생각 중 몇 개는 현재도 유효한 생각이긴 하지만..)

하지만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깨달음이 왔다. 이 책의 컨셉 자체가 주제에 대해 생각나는 것들을 자유롭게 적는 거란 걸. 너무 쉽게 쓰였으리라는 의심, 퇴고를 별로 안 한 것 같다는 의심이 있기는 하지만, 책의 뒤쪽으로 갈수록 그들이 같은 주제를 가지고 서로의 영역 안에서 혹은 자신의 영역 안에서 글을 쓴 과정, 그 안에 담긴 생각의 차이가 흥미로웠다.

쉽게 말해, ‘!‘를 보고 문과생은 감탄을, 이과생은 팩토리얼의 개념을 떠올리듯이
그들은 이야기, 소통, 유머, 편지, 시, 결, 자연스러움, 죽음, 감각, 보다, 가치, 두 문명, 언어, 꿈, 이름, 평균, 점, 구, 스케일, 검정, 소리, 재료, 도구, 인공지능, 상전이, 복잡함이라는 단어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떠든다.
하나의 단어에 담긴 서로 다른 생각들의 차이가, 그리고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음에도 같은 것을 떠올리는 순간들이 흥미로웠는데 아마도 그 부분이 교차와 확장의 순간이 아니었는가 싶다.

그들은 그 주제들을 그저 번갈아가며 정했다고 하는데, 그러다보니 그 주제를 정하지 않은 사람의 글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누가 정했는지 알 정도로 티가 나게 차이가 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이건 그런 채택 방식의 단점일 뿐이고,
대신 그 채택 방식이 지니는 장점 또한 많았으니 단점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밀도있는 문장을 위해 읽겠다고 한다면 실패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는 두 인간이 예술을 어떤 각도로 바라보는지가 궁금하다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책은 19,000원이다.

난 항상 책을 읽을 때 책의 가격을 보곤 하는데, 그러면 보통 이 두 가지 행위 중에 하나를 하게 된다.
(1) 책을 한참 읽다가 중간쯤 가서 책을 뒤집는다
(2) 책을 조금 읽다가 뒤집어 본 후 책을 책상에 탁, 하고 내려놓는다.

예상가능한 답안이겠지만, (1)이 좋은 책을 만났을 때 (2)가 별로인 책을 만났을 때다.
(1)의 경우엔 몇 시간 정도의 기쁨을 느낀다. 책에 돈을 지불했음에도 돈을 번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돈이 주는 기쁨이다. (2)의 경우엔 며칠 혹은 몇 주를 괴로워한다. 쿨하게 그만 읽고 싶지만 끝까지 읽어야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고 또렷하게 깔(?) 수 있기 때문에 끝까지 읽으려 노력해본다. 시간과 돈, 좋은 책을 읽을 기회까지 모두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른 사람에게 읽지 말라는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읽는다. 이 책의 경우엔 처음에 (2)였으나 이상하게 읽다보니 재밌어졌고 책을 다 읽은 후에 다시 가격표를 봤다. 변했을 리 없는 그 숫자들을 보며 그래도 이건 아닌데, 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덜 억울해지긴 했다. 책의 재질이 좋고 아마 책의 구성을 위해 쓰인 페이지들도 많아서 그런 것 같은데 그건 좀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내가 제일 싫어하는 책의 구성 중 하나가 하나의 글에서 소위 ‘명문‘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큰 글씨로 한 페이지에 가득 채워넣는 구성인데 그런 구성을 취하는 책 치고 내 기준 별점 5개짜리 책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건 진짜 팩트.
하지만 그래도 추천할만한 낭만과 지식이 있는 책이었다.

좋았던 장면들을 사진으로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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