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100쇄 기념 에디션)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50.

처음 읽은 건 20대 때였는데,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의 중지를 친구에게 추천받아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읽었다. 그때는 대단한 흡입력에 서사 자체에 집중하느라 작가의 철학적인 소견들을 음미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최대한 느리게 읽으면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훑어볼 수 있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는 역시나 다르구나 싶다. 관객 모독을 쓴 패터 한트케가 어쩐지 아쉬워지기까지 했다.

물론 이렇게 서사가 많이 담긴 글은 문학성보다는 대중성에 기울여지기 마련이며 삶을 바라보는 자세보다는 흥미와 재미에서 끝나는 수도 있을텐데 여기에서는 다양한 인물과 상황을 통해 실명에 의해 도덕관념이 해이해지는 상황이라거나 그런 상황에서조차 권력을 잡으려는 무리에 대한 이야기, 여전히 종교를 찾는 사람들 등 여러 주제를 담으려 작가가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뒷부분에는 조금 지친 듯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종교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벨문학상에 긍정을 하게 된다.

20대 때 읽을 땐 삶을 낭만적으로 보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 츠지 히토나리나 에쿠니 가오리 등의 몽글몽글한 글을 읽기도 했고 그런 상황이다보니 상대적으로 눈먼 자들의 도시는 아주 불쾌하기 짝이없는 글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낭만보다는 오히려 이 책에서 나오는 극악의 상황에서 어떻게 사랑을 찾아야할까 라는 물음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낭만과 사랑이 아니겠는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눈이 먼 노인과 검은 안대를 쓴 여자의 이야기를 마냥 늙은 남자가 젊고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단순한 이야기로 끌어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내 마음 속의 고요한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일테니 말이다.

실명이라는 크나큰 상실의 순간에서 인간성이나 주체성을 가지고 가는 일은 이 소설의 내용처럼 어렵다. 실명이 전염되는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으나 그런 상실의 순간에 우리를 우리답게 잡아주는 버팀목을 미리 만들어놓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가난했던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때때로 가난이 내 존엄을 깎아내린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공부를 하고 일기를 썼던 것 같다. 공부를 한 건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은 아이가 해낼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었을 것이고 일기는 지금 생각해보건대 어려운 순간을 극복하라고 스스로를 응원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한 편으로는 정 말 로 실명을 하게된다면 어떠할까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그런 상상력이야말로 미래의 시간만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옮긴 이인 정영목님의 글을 읽고 싶은 마음에 다시 읽기도 했는데 역시나 글이 쏙쏙 잘 읽혔고 좋은 작가와 좋은 번역가의 조합은 늘 옳다.
조만간 갈 여행에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한 권 챙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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