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 부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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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저임금 노동자로서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 호기심으로 작가는 그들의 일상에 들어가 직접 체험한다. 고작 몇주를 버티고 실패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현실이 얼마나 박한지 간접적으로나마 깨닫고 만다.

왜 그들은 부당한 현실에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가?

작가는 일순간 그들의 감정에 이입하여 파업을 선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그런 작가의 모습은 꽤나 실망스러운 일이었는데, 그런 부당함을 고발하고 싶은 마음 조차도 교육과 환경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런 부당함은 어렸을 때부터 익숙했던 일이다. 누구든 익숙한 것의 부당함을 깨닫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작가는 그 순간 마저도 돌아갈 수 있는 안락한 자신의 집과 공간을 염두해두지 않았을까? 타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정의로움 그 자체를 위해 정의로운 행동을 한다는 말은 비교적 현실주의자인 내게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쓰레기나 다름없다. 진정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우리에겐 그런 고민이 필요하다.

작가가 오랜 시간을 저임금 노동자로서 체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작가의 모습이 노동자 코스프레같은 느낌이 들고, 그리하여 그가 겪은 노동자들의 현실이 조금 미화된 감은 있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불공정하다고 느꼈던 몇몇 일들과 노동자들의 몇몇 말들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특히나 그들이 그런 환경에서도 묵묵히 일을 함으로써 다른 이들이 안락한 생활을 한다는 점에서 그들을 박애주의자라고 말한 것이, 뼈아프게 들렸다. 그들이 들으면 분노할 일이다. 박애주의자라니....

더군다나 그들에게만 행해지는 비인간적인 구직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편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저임금노동자가 불법을 저지르라는 것은 정말이지 편견이다. 우리는 우리를 개돼지라 부르며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 더 못되고 사악한 윗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견의 몫은 항상 경제적 최하위층에 놓인 그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들에 대한 편견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아니, 실제로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이 편견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그 사실처럼 보이는 것들은 어떻게 없애나갈 수 있을까?

나는 교육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교육을 통해 그들을 높은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야말로 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애초에 그들을 교육할 것은 국가가 좀 더 나서줘야 할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 국가는, 우리들의 손으로 세워진다. 그러니 결국 그들을 바꿀 수 있는건 우리인 셈이다.
어떤 문제들은 때론 공감의 결핍에서 일어나곤 한다.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갑과 을의 싸움에서 너무나 명료하게 갑의 승리가 보인다면 세상의 어느 누가 그 싸움을 시도하겠는가. 을을 대변할 수 있는 리더, 그리고 정부의 노력, 시민들의 노력- 그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다. 역시나 이런 책은 마음만 아프고 답은 너무나 멀다.. 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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