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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무사 이성계 -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서권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아는 사람은 안다. 인문계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문제집을 풀면서 원고 만 오천 매를 쓰는 것은 오토바이 위에서 자판을 누르는 것과 같다는 것을. 집필실이 없는 그는 승용차 속에 들어가 소설을 썼다. 때론 원평저수지가 보이는 곳에 차를 대고 작고 귀여운 글씨로 노트를 채워나갔고 집에서는 꼭 식탁에 앉아 글을 썼다. 컨베이어벨트만 없다뿐이지 그는 대단한 집중력을 가진 투잡 원고노동자였다. 그는 엉덩이가 짓무르자 의자 위에 푹신한 화장실 변기 방석을 구해다 글을 썼다. 귀감이 되는 삶이었다. -발문 중에서
이 소설 '시골무사 이성계'는 작가인 서권의 유작이다.2007년 실천문학신인상에 단편소설 '검은 선창'으로 당선된 작가는 뛰어난 필력으로 등단 이전부터 주변 작가들에게 작가로서 인정을 받아왔으며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일하면서도 만 오천 매가 넘는 원고를 쓰던 사람이었다.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단 하루동안의 왜적과의 전투는 조선개국을 10여년 앞둔 1380년 즈음의 시대에 변방에서 무관으로 활약하던 이성계가 지리산 남원 옆 인월역에 침투해온 일본 남조 침략군을 막기위해 배치되며 벌인 황산대첩이다. 이성계가 변방의 나이 많은 지방무사 시절 가별치들을 이끌고 정도전과의 지략을 앞세워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자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이성계는 ‘세 번의 목숨’을 걸고 하루의 전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아지발도와 칼을 부딪치며 숨은 욕망을 발견하고, 동년배의 정도전에게 꾸지람을 들으면서 천명을 받들며, 좀 더 다른 세상과 새로운 운명을 꿈꾸게 된다.
단 하루만의 전쟁을 400페이지에 가까운 글을 썼다는 부분에 대해 경탄을 금치 못할 정도의 필력이 느껴진다. 우선, 하루의 전투를 풀어내는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도 돋보이지만 그 바탕이 되는 철저한 고증과 저변의 역사지식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각 전투장면에서 나오는 연노, 칠칠려, 철화시 등의 당시의 무기를 상상해보면서 싸움의 치열함과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다.
이 전투에 참가할 당시 이성계의 나이는 46세로 그려져 있는데 작가가 세상을 뜬 나이와 소설 속의 이성계의 나이는 비슷하며 작가 자신을 이성계란 인물에 그대로 녹여내고 있는 듯하다.
2001년부터 꼬박 7년 간 목숨을 걸고 1930년대 만주항일 독립투쟁을 다룬 장편 대하소설'마적'을 탈고한 뒤 작가가 세상을 뜬 나이와 <시골무사 이성계> 소설 속 이성계의 나이도 비슷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작품을 써내려가는 작가의 마음이 그 많은 세월동안 작가가 감내해냈을 수 많은 고뇌의 무게감이 어떠했으리라 상상해보면 또한번 가슴이 뭉클해 진다. 빨리 이 작가의 나머지 대하소설도 책으로 만났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이 훌륭한 작품 '시골무사 이성계'를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본다.
작가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한권 남기지 못할정도로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시골작가와 시골무사는 닮아 있다고 느끼면서 읽었던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