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시작은 이렇다. 시골 마을에 있는 이 시멘트 공장 '신신양회'에서 어느 날 여자들이 집단 자살한다. 언론은 ‘어머니’라는 여자가 남편을 잃은 오갈 데 없는 여인들을 끌어 모아 그녀들의 재산과 노동력을 착취하는 신흥 교주라고 보도한다. 또 이 사건은 광신도들의 집단 히스테리라고 추측한다. 3년의 세월이 흐른 후 화자인 ‘나’를 비롯해 집단 사망한 여성들의 자녀들인 '신신양회집 아이들'이 다시 모이면서 진실이 조금씩 드러난다. 신신양회를 재건한 이들은 남편 없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아이를 키우며 사는 공동체를 꿈꾼다. 꿈을 이뤄줄 만한 남자들을 골라 주홍글자 ‘A’의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고 접근, 그들 모르게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다. 공동체 이름을 ‘A’로 정하고 만족스러운 나날을 구가하던 이들 앞에 또다른 이모의 아들 기태영의 등장과 뛰어난 경영 수완으로 회사를 빠르게 되살리지만 무리하게 사업 확장을 도모하고, 이에 대한 찬반이 갈리면서 공동체엔 균열이 일어난다. 또한 아이를 낳아 함께 기르며 사는 여자들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회적 편견앞에 이들은 무너져 간다. 소설속의 시멘트 공장 기숙사에서 24명의 남녀가 역시 한날 한시에 사망한 사건은 집단자살인지, 자살을 가장한 타살인지 책에는 명확한 언급이 없다. 이 소설에서도 여성들의 죽음과 그들의 비밀이 단지 그네들의 사연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만든다. 어느날 이 공장에서 일어난 의문의 집단자살을 다룬다. 마치, 1987년, 사이비 종교집단의 비극적인 집단 자살 사건으로 사람들의 뇌리 속에 남아 있는 ‘오대양 사건을 연상시킨다. 이 소설에서 'A'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역시 결과에 대한 사실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과거 작가의 관심은 침착하게 서사를 구축하고 느릿하게 일상을 소묘(素描)하는 데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격정적이며 고조된 긴장감을 앗아가지만, 대신 소박하고 과장되지 않은 안정감을 선사한다. 작가는 지금까지 현실의 주변부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삶의 체험을 소중하게 담아내려는 소설 작법을 견지해왔고, 현실과 밀착되어 은밀한 궤적을 그려내는 그녀의 시선을 통해서, 그녀가 추적하는 인물들은 보편적 삶의 진실성을 성실하게 추구해 나간다.하지만 이 작품은 엽기적인 사건의 전개나 파격적인 인물의 제시 혹은 이채로운 정서의 표출을 택했다. 과거의 작품과는 차이가 느껴진다. 작가는 사실적인 문체로 평범한 우리 삶 깊숙하게 파고 들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평범하던 현실이 차츰 낯설기 시작한다. 마침내 불안할 만큼 이상해진 현실 앞에 이르러 돌아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있다. 가부장적 결혼제도를 거부하고 여성 공동체를 추구하는 현대판 아마조네스의 이야기와도 같이 느껴지는 이 소설의 소재는 현실과 밀착해 있는 시선을 따라 소설이 전개되기 때문에 한 편으로 하성란의 소설은 건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소설을 통해 현 시대의 결혼제도와 성 풍속에 대한 또 다른 비판적인 시각도 엿볼 수 있다. 어쩌면 물질적 풍요를 향해 끝없이 질주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이었음을 깨닫게 만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