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읍내나가셨던 아버지의 손에는 막걸리 한사발 걸치시고 흥얼거리시던 아버지의 노래소리와 함께 항상 돼지고기 한 두근이 들려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우리집은 살림이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인지라 돼지고기라도 쉽게 막을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 지게 위에 아버지를 올리고 읍내장에 다니셨다는 아버지의 할아버지에 대한 회상도 생각난다. 이렇듯 내 어릴적 기억에는 아버지는 세상과 통하는 창이셨고 아버지에 대한 권위는 대단했었다.그러나 시대는 많이 변했다. 이 책을 읽고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게된 계기가 되었다. 가출하고 난 후 우연히 그의 일기장을 발견한 딸이 찾아가는 아버지의 발자취에서 아버지의 고뇌를 그리고 절망과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점점 소외되어 가는 이 시대 쓸쓸한 아버지들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가끔씩 뉴스를 통해보는 고시원화재사건의 희생자속에는 이 시대의 가장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제 상황이 나빠져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홀로 노숙자의 삶을 살다 이 도시에서 가장 저렴한축에 속하는 1평남짓의 겨우 몸을 누일수 있는 공간인 고시원에서 살다가 불의의 화재사고를 만나 쓸쓸하게 죽어간 이 시대의 외로운 가장들이다. 매달 빚을 갚고 있지만 도리어 빚이 갈수록 늘어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 구조속에서 햇빛조차 들지 않는 이곳에서 기거하며 컵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해가며 온갖 궂은일을 마다 않고 아이들의 끼니와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객지생활을 했을 아버지다. 그들이 화마의 고통속에서 죽기바로 직전까지도 떠오르는 얼굴글은 그의 가족들이었을것이라는 생각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들의 책임감은 알이 잘못되었을경우에도 자신의 책임임을 통감하며 술 한잔으로 어르고 달래며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말들과 눈물들을 쏟아냈겠는가. 울면서 안 우는척하지만 변명과 연민으로 점철된 속마음하나 털어놓을곳 없는 남자들. 가족들에게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하고 곧 죽어도 큰소리치고, 오지랖 넓게 남 걱정 부터하고, 마음 먹으면 언제든지 돈 벌 수 있다 생각하는게 이 시대 아버지들의 마지막 자존심이다.아뭏튼 이 시대의 아버지상은 외로움 그 자체인것 같다. 사회가 다시 어려워졌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10년전의 그때처럼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열심히 돈, 돈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살림은 좀체로 나아지질 않았다. 우리의 경제를 생각하면 날씨는 겨울을 지났지만 아직 꽁꽁 언 마음은 아직 녹을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넘겨야할때다. 이럴때 일수록 서로 위안이 되어줄 수 있는것이 가족이다. 책을 읽고 가장 남았던 부분은 이 시대의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와 아버지의 무한한 헌신과 사랑에 대해 미처 잘 모르고 있던 부분에 대해 한 번 더 깨닿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