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손턴 와일더 지음, 정해영 옮김, 신형철 해제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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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지금, 어떤 사랑을 하고 있나요?
▪️그 사랑은 누구에게 닿아 있나요?
▪️만약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당신을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요?

이 질문들 앞에 멈춰 선 당신에게, 이 책은 말없이 다리를 놓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유일한 다리를.



손턴 와일더(Thornton Wilder, 1897~1975)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소설과 희곡 양쪽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유일한 작가입니다. 대표작으로는 '우리 읍내', '긴 크리스마스 디너' 등이 있으며, 그가 30세에 발표한 첫 퓰리처 수상작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도덕적 우화로 자리매김하며,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18세기 초 스페인령 페루를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가톨릭 세계관 속에서 신의 의도와 인간의 자유의지가 어떻게 얽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신의 섭리”라는 관념이 사회 전반에 지배적이던 시대, 사고와 죽음은 도덕적 원인이나 초월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해석되곤 했습니다. 이 배경은 소설의 핵심 질문 – “왜 이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 를 더욱 의미 깊게 만듭니다.

또한 기독교적 세계관, 특히 예정론과 인간 자유의지에 대한 고민을 바탕에 두고 있으며, 모더니즘 문학의 형식적 실험보다는 고전적이고 정제된 이야기 구조를 택해 ‘삶의 의미’라는 원초적 질문을 깊이 있게 풀어냈습니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특별한 지식은 필요 없지만, 인생의 비극과 상실을 경험해 본 이라면 더 깊은 울림을 받을 것입니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와일더는 단순한 신의 심판이나 구원이라는 종교적 해석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을 개인의 고유한 이야기로 조명합니다.
그는 다섯 명의 인물을 각자의 서사 속에서 살펴보며,
“우리는 왜 살아가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또한 사랑하는 이를 잃고 “왜 하필?”이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문학이라는 방식으로 위로를 건넵니다. 수사의 탐구는 어떤 설명도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그 과정을 통해 ‘사랑’이라는 유일한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그는 독자에게 다시 묻습니다.

🎐“당신의 사랑은 진실한가? 충분한가?”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우리는 우연히 살고 우연히 죽는 것일까, 아니면 계획에 의해 살고 계획에 의해 죽는 것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이 짧지만 깊은 소설은 1714년, 페루의 산 루이스 레이 다리가 붕괴되며 다섯 명이 사망하는 사건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과 운명, 그리고 신의 뜻이라는 무게감 있는 주제를 한 편의 우화처럼 펼쳐냅니다.

이 극적인 사건은 '단순한 사고인가, 신의 의도인가?'
이 질문을 붙든 수사는 다섯 명의 삶을 추적하며 그 죽음의 의미를 밝히고자 합니다. 와일더는 이 구조를 통해 ‘삶과 죽음’의 무게를 철학적으로 비춥니다. 인물 각각의 삶을 들여다보는 구조는 삶의 다양성과 내면의 사연을 조명합니다.

📌“왜 하필 저 다섯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 이 질문이야말로 이 작품의 존재 이유이며, 모든 서사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성찰하게 하고, 사랑과 관계 속에서 서로를 어떻게 오해하고 기대하며 실패했는지를 섬세하게 조명합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남은 자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이 구조는, 독자에게도 동일한 반응을 유도합니다. 바로 우리 자신도 이 소설 속 인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삶은 우연인가, 의도인가?

소설의 중심에는 다리의 붕괴를 ‘신의 의도’로 해석하려는 프란치스코회 주니퍼 수사의 시도가 있습니다. 그는 사망자들의 삶을 면밀히 조사하고, 그 비극의 의미를 규명하려 합니다. 이 설정 자체가 신과 인간의 관계를 묻는 철학적 질문이며, 독자는 수사와 함께 끝없는 의문 속을 거닐게 됩니다.

📌“우리는 우연히 살고 우연히 죽는 것일까, 아니면 계획에 의해 살고 계획에 의해 죽는 것일까?”

하지만 소설은 오히려 독자에게 되묻습니다.
“삶을 해석하려는 이 강박이 과연 정당한가?”
- 이 점에서 소설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정직한 질문’을 던지는 문학의 본령에 충실합니다.


소설은 사고로 사망한 다섯 인물의 삶을 한 사람씩 조명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사랑’을 갈망했으나 끝내 그것을 온전히 표현하거나, 주고받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 여인은 그동안 몹시 고통받았고, 그 고통이 심장에 자국을 남겼습니다.”
-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은 딸에게 애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거리를 두고 지냈고, 딸에게 외면당한 후 뒤늦게 삶을 바로잡으려 했으나 그 기회를 잃고 맙니다.

- 쌍둥이 형제 중 한 명인 에스테반은 형의 부재 속에서 외로움과 슬픔을 겪으며, 세상과 단절된 감정을 품은 채 다리 위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나의 인생 전체에 저런 특성이 좀 더 있어야 했어.”
- 피오 아저씨는 자신이 사랑한 여배우를 향해 사랑을 주었지만, 그것은 일방적이고 통제적인 방식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외면당하고, 소년 하이메와 함께 새로운 삶을 꿈꾸던 찰나 죽음을 맞이합니다.


🔖“모든 사랑의 충동은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랑으로 돌아간다.”

각 인물들의 서사는 사랑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서툴고, 때로는 이기적이며, 종종 늦어버립니다.
또한 상호적인 사랑이 아닌, 주관적인 욕망과 불안이 섞인 반쪽짜리 사랑이었습니다.

결국 이 소설은 말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주거나 받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
그 사랑이 만들어졌다는 사실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말입니다.

이들이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기 전 마지막으로 품었던 감정은
다 ‘조금 늦은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이란 감정은 왜 이토록 인간에게 어려운 것일까요?
와일더는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며,
그것이 곧 사랑의 방식에도 스며든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가장 완벽한 사랑조차도 한쪽이 더 많이 사랑한다는 사실.
우리는 모두 반쪽짜리 사랑을 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 그리고 그 유명한 해제 속 구절이 모든 것을 정리합니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 이 문장은 존재의 허무 앞에서도 우리가 끝끝내 붙잡아야 할 것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철학적이면서도 명료하게 전합니다. 삶과 죽음을 잇는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구절입니다. 인간이 붙잡아야 할 유일한 진실이자 위로였습니다.

모든 고통, 오해, 불행 속에서도 우리가 서로를 사랑했던 흔적은 남는다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존엄한 증거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강하게 말해줍노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100년 가까이 된 고전이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도 너무나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 갑작스런 이별…. 살아 있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왜’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습니다.

우리는 매일 무너질 수 있는 다리 위를 건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신과 운명을 따지기보다, 사랑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삶이 절실해집니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말 속에 담긴 진심이야말로 우리가 죽기 전까지 다리 위에서 남길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일 것입니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우리가 ‘왜’라는 질문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삶에서,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진정한 문학의 힘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말미에, 아주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합니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이 소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 설명되지 않는 비극을 겪은 사람,
삶의 의미를 되묻는 사람 모두에게 이 책은 잔잔한 위로가 되어줍니다.

신의 계획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결국 무의미해질 수 있지만, 그 시도를 통해 누군가는 타인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하고, 삶을 더 단단히 붙잡게 될 것입니다.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와일더는 말합니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동시에 인생이란 다리를 건너는 모든 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랑을 남길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책입니다.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누구를 사랑하고 있나요?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전하고 있나요?
이 질문을 가슴에 품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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