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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사피엔스
해도연 지음 / 네오픽션 / 2025년 4월
평점 :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라스트 사피엔스》는 25,000년 후의 지구를 배경으로 삼지만,
정작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의 인류'입니다.
인간 중심의 문명, 그 문명이 초래한 생태 파괴와 오만,
그리고 그 결과로 찾아온 고독한 파멸.
에리카의 여정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아닌
기억하고, 목격하며, 기록하는 ‘증인의 임무’입니다.
작가는 그 임무를 통해 독자에게도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라스트 사피엔스》는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존재의 윤리’를 다시 꺼내 보입니다.
SF 장르가 제공하는 상상력은 이야기의 장식일 뿐,
핵심은 결국 인간에 대한 근본적 성찰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배드 피플’의 유산을 짊어진 채 살아가고 있진 않은가요?.
누군가를 짓밟고 살아남는 이 삶이, 과연 생존이라 부를 만한 것인가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에리카의 마지막 선택에서,
그리고 그녀가 ‘기적’이 되기로 결심한 그 순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해도연 작가는 천문학과 물리학에 조예가 깊은 국내 SF 작가로, 인간 존재와 과학기술의 미래를 섬세하게 교차시키는 세계관으로 독자층을 넓히고 있습니다. 《라스트 사피엔스》는 그가 창조한 가장 깊이 있는 세계 중 하나로,
감성적 서사와 공학적 상상력이 조화를 이루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그의 문체는 정제되어 있으면서도 감정의 파동을 놓치지 않습니다.
이 책은 기술적 휴면 상태(냉동 수면)와 지구 환경 회복, 인류 종말론적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SF 장르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독자의 정서와 철학적 질문에 천천히 스며드는 방식으로 서사가 진행되므로 누구나 읽기 어렵지 않습니다.
단, 이 작품은 '무엇이 인간인가'라는 추상적 질문에 감정으로 답하려는 성향이 있으므로 감성적 공감능력이 클수록 깊이 있게 읽힐 것입니다.
해도연 작가는 '인간이 사라진 이후의 인간성'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기술적 진보로 얼어붙은 시간과 기억 속에서 깨어난 ‘에리카’는,
문명이 사라진 야생에서 인간다움을 되찾아야 했습니다.
작가는 '생존'이 아닌 '기억과 관계의 회복'을 통해 인간성을 되짚습니다.
💡'만약 인류가 사라지고 단 한 명만 남는다면, 그 사람은 인간인가?'
작가는 인류 문명이 정점에 다다른 21세기에서, 인간의 본질을 되묻습니다.
문명이 사라진 뒤에도 인간이라는 종의 고유성이 남을 수 있을까?
에리카는 기억과 책임, 존재의 의미를 짊어진 최후의 철학자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에리카의 입을 빌려 독자에게 던집니다.
소설은 약속된 미래 대신 25,000년이 지나버린 먼 시간의 지구에서 눈을 뜬 에리카로부터 시작됩니다. 인간도, 문명도, 약속도 사라진 그 세계는 기묘할 만큼 생명으로 가득하지만, 인간의 흔적은 차갑고 황량하기만 합니다.
에리카는 깨어나자마자 자신이 ‘언제’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가 깨어난 시점은 무려 27543년.
자신이 속했던 26세기에서 2만5천 년이 흐른 시간이었습니다.
주변에 보이는 유적, 멸망의 흔적들,
그리고 사라진 인류는 그에게 무게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왜 살아남았는가?”
작가는 이 질문을 따라가며, 인간의 존재가 생존에만 있지 않음을 암시합니다.
📌“‘26세기, 밝은 미래에서 다시 만나.’ 그러나 지금은 27,543년.”
- 이 문장은 깨진 약속과 홀로 남겨진 자의 슬픔을 상징하며, 소설 전체의 감정선을 이끕니다.
작가는 '우리 이후의 세계에서 인간은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인간이 사라진 세계에서조차 인간성은 남는가, 혹은 반복되는가를 묘사합니다. 에리카가 만난 ‘배드 피플’은 인간성의 어두운 잔재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가축처럼 생명체를 사육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멸망 이후에도 인간이 ‘지배’를 놓지 않았다는 메시지처럼 다가옵니다.
📌“배드 피플은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도 분명했다.”
- 에리카가 ‘켄티펀트’들의 상처를 목격하며 느낀 인간의 잔혹함은, 우리 시대의 문제를 그대로 투사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중반을 채우는 건 에리카와 ‘켄티’의 동행입니다. 말도 다르고, 생김새도 전혀 다르지만 ‘감정’과 ‘공감’으로 이어진 이 두 존재의 관계는 어떤 인간관계보다 더 깊고 따뜻하게 그려집니다.
에리카는 켄티에게 ‘이름’을 붙이고, ‘가족’처럼 여깁니다. 그 유대감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 강해지고, 켄티로 인한 상실감은 독자에게도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에리카는 끝내 자신이 마지막 인간임을 받아들이지만, 더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연결’이라는 인간 본연의 감정을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간보다 훨씬 나은 존재였다. 그래서 생존할 수 없었다.”
- 인간보다 더 순수하고 온화했던 켄티들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가 저지른 폭력과 지배의 결과임을 암시합니다.
에리카가 만난 새로운 지성체들은 그녀를 ‘뷸로 에리카’, 즉 전설 속 존재로 기억하며, 그녀는 이들에게 자율성과 자유의 의미를 전합니다.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한 인간의 존재가 그 자체로 얼마나 큰 의미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에리카는 과거의 모든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남기는 자가 됩니다.
📌“뷸로 에리카는 우리가 스스로 태어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며 그곳을 영원히 멈춰 버렸단다.”
- 에리카는 더 이상 인간의 방식대로 생명을 생산하지 않도록 ‘기계’를 멈추고, 선택의 자유를 전하는 기적이 됩니다.
작가는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에리카의 존재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에리카는 마지막 인간이었지만 마지막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이 말은 책의 전체 메시지를 정리하는 한 문장입니다.
에리카는 인간의 마지막이지만,
새로운 존재들이 시작될 수 있도록 이정표를 남긴 인물입니다.
소설이 끝나는 순간, 독자는 깨닫습니다.
우리는 결국 사라질 존재지만,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건 ‘다음 존재를 위한 기억과 가능성’이라는 것!
《라스트 사피엔스》는 방대한 시간의 흐름과 미래적 상상력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아주 ‘지금’의 이야기입니다. 기후 위기, 인간 중심의 착취, 생명 경시... 우리는 26세기의 방주로 피신해야 할 위기의 초입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주가 다시 한번 말했다. ‘살아라.’ 에리카는 이번에는 묻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들었다.”
- 살아남은 이유가 없던 그녀는,
이유 없는 생존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존재’로 다시 태어납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에리카는 마지막이었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라고.
다음 기적이 오고 있다고.
🎈“마지막 인간의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의 이야기다.”
《라스트 사피엔스》는 끝에서 시작을 발견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묻는 강력한 문장들로 가득했습니다.
읽고 나면, 혼자였던 에리카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걸,
그리고 우리 역시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