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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김영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4년 10월
평점 :
김영희 작가는 국립수목원 등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식물 연구자이자 자연과 생태계에 깊은 애정을 가진 전문가입니다. 식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과 그들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책을 집필했으며, 그의 연구와 경험에서 비롯된 다양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그는 ‘쇠뿔현호색’과 같은 식물의 이름을 직접 명명한 경험도 있어, 식물학적 명명과 이야기 사이의 접점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책에서 식물의 학명과 한국명을 넘나들며 그 이름의 유래, 의미, 역사적 맥락을 궁구합니다. 식물 이름의 어원과 문화적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식물과 인간이 서로 교감하며 역사 속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식물을 향한 사랑과 관심이 그 이름을 알기 시작할 때 비로소 깊어진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작가는 식물 이름을 표식이 아니라 그 식물의 존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첫걸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독자들이 이름의 유래와 의미를 통해 식물과 더욱 친밀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생각됩니다. 책은 “이름을 아는 것이 식물과 사랑에 빠지는 첫 단계”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식물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을 불러일으키고자 합니다.
책은 식물의 이름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내며,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예를 들어 ‘무환자나무’의 이름은 ‘환자가 없다’는 의미로, 실제로 인도에서는 이 나무의 열매가 비누로 사용되며 건강과 위생에 기여한다는 설명은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겨우살이’는 생명력이 강해 겨우겨우 살아간다는 뜻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다른 나무에 기생하면서 자신만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모습은 고정관념을 깨뜨렸습니다.
이름은 라벨링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참’이나 ‘개’, ‘쥐’와 같은 수식어가 붙는 식물의 이름을 통해 저자는 이름이 가진 계층적 의미와 편견을 지적합니다. ‘참’이 붙은 식물은 주로 우수함이나 먹을 수 있는 특성을 나타내지만, ‘개’나 ‘쥐’가 붙으면 상대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인간 중심의 해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책은 식물의 이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성찰하게 만들었습니다.
“식물의 이름을 알고 싶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며, 곧 그들과 사랑에 빠지겠다는 열린 마음입니다.”
저자는 이름을 아는 것이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사랑과 애정의 표현임을 강조합니다.
“겨우살이는 정말 겨우 살아가는 것일까요? 경기도 포천의 국립수목원에 가면 겨우살이를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겨우살이라는 이름의 생존력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이 구절은 책의 핵심 메시지인 이름의 의미와 실체의 차이를 잘 드러냅니다.
“식물은 저마다의 존재 이유가 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험난한 세상을 살아간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며, 모든 생명체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작가는 식물의 이름이 생김새나 생태적 특징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식물의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는 ‘금강초롱꽃’처럼 일제강점기에 일본 학자에 의해 명명된 토종 식물을 다루며, 한반도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식물 이름이 가지는 의미를 짚어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식물의 이름이 정보가 아니라, 그 속에 얽힌 시대적 맥락과 인간의 이야기까지 포함하는 복합적인 의미임을 깨닫게 합니다.
특히 현장 중심적 접근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식물을 직접 보고 만지며 연구하는 과정은 책 속에서 여러 번 강조되며, 독자에게 책으로만 배우는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중요성을 전달합니다. “책 속에서 식물을 깊이 있게 공부했다 하더라도 직접 보는 느낌은 다를 수 있거든요”라는 작가의 말은 식물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었습니다.
책은 여러 식물의 이름과 그에 얽힌 흥미로운 사연을 통해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찔레꽃과 해당화의 이야기는 들장미와 바다장미라는 이미지 속에 내포된 다른 특성을 부각시켜, 이 두 식물이 ‘장미’라는 범주로 묶일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특성과 생태를 가진 식물을 비교하며 차이점과 유사점을 살피는 과정은 식물의 세계가 얼마나 다채로운지 깨닫게 합니다.
또한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식물들의 이름 뒤에 숨겨진 전설과 민간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소개한다. 예컨대, ‘너도밤나무’와 ‘나도밤나무’의 이야기를 통해 식물 이름이 인간의 문화와 상상력이 깃든 결과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자가 쇠뿔현호색에 이름을 지어준 경험은 식물 명명 과정이 얼마나 섬세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름 없는 잡초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로서 존재하게 된 순간을 전하는 저자의 글은 자연에 대한 경외감 마저 불러일으킵니다.
김영희 작가의 글은 식물에 대한 깊은 애정이 깃든 시선으로 읽히고 있습니다. 식물을 이름으로 불러주며 그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은 식물을 대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합니다. 작가는 “이름을 알고 싶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라고 말하며, 이름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곧 식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시작임을 상기시킵니다.
책은 식물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만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훌륭한 안내서입니다. 단순하게 이름을 알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 그 이름에 담긴 사연과 생태적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독자는 식물과 더 깊이 교감할 수 있게 됩니다. 식물과 자연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그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