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척학전집 : 훔친 부 편 - 있어 보이는 척하기 좋은 돈의 문법 세계척학전집 3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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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미국 이란 전쟁으로 식긴했지만, 주식시장이 활황이던 시절 이 책을 만났다. 궁금했다. 돈이란 뭘까. 대체 돈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그 숫자에 그토록 열광한는가. 그 때 이 책을 만났다. “훔 친 부”편. 나는 과거 부정하게 부를 축적한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이 책은 돈에 대해 인류가 남긴 글들을 바탕으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쉽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였다. 책의 표지에도 나오듯 ‘척하기 좋은’ 책. 개인적으로 이런 책을 참 좋아한다. 내가 읽지 못했던 것을 잘 알려주는 책이라. 한편 이런 책을 통해 알게된 어떤 어려운 책을 나도 이만큼 이해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읽다가 좌절하게도 했지만.

제목 그대로다. 돈에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돈’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이다.
시작은 ‘돈’. 그 의미. 그리고 돈을 벌어들이는 시장에서 우리가 가지는 위치, 그렇다면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을 먼저 알아야 하는 가룰 설명하면서 그렇다면 당신이 말하는 돈의 충분조건은 어디까지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당신에게 ‘돈‘이란 수단이지 목적인지를 생각해보라고 설명하고 있다.

흥미로운 글들이 꽤나 많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빼놓고서는 우리의 삶을 설명할 수 없으니까.
사실 돈은 생각해보면 굉장히 흥미롭다. 지폐 하나가 사람의 목숨을 쥐락피락한다.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는 그저 종이한장일 뿐인데,
그것은 돈이라는 물성이 주는 가치가 아니라, 돈 그자체가 가진 신뢰라 애덤 스미스는 말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신뢰가 높은 사회일 수록 거래의 비용이 달라진다고. 자본주의의 기반을 닦은 그가 ”돈“그 자체가 아니라 ”돈“을 바라보는 신뢰에서 가격을 말하고 있다. 결국 돈이란 것은 사용하는 사람들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이기에 사람들이 갖는 도덕성에 대한 중요를 말했다고 한다. 그가 ”자본론“보다 ”도덕감정론“을 먼저쓴 이유를 저자는 이 점을 들어 설명한다.

그리고 탈레브 편에서 내가 묘하게 돈을 벌어 성공한 사람들의 책에 대해 가지는 불편함을 설명해준다. 결국 그는 그것을 서사의 오류라 말한다. 결과를 놓고 과정에 의미를 덧붙이는. 물론 그 상황에서 내가 시장을 제대로 보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그것이 앞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과정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 즉 그가 말하는 것은 현재의 과정을 제대로 보라는 것이다. 결과가 아니라. 성공은 실력일수도 운일 수도 있다. 결과와 과정의 분리. 이것이 진짜 실력이라 말하는데, 돌이켜보니 가장 어려운 분석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챕터.

그리고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는 시장 속에서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는 현재를 다시 보게 만든다. 창조적 파괴는 막을 수 없고,관성에 의해 막는 편에 서는 것은 고통속으로 가는 길이라 말한다. 결국 창조적 파괴를 통해 나아간 기업이 가지는 독점. 그것이 그 혁신을 일으킨 자들에 대한 보상이라고 그는 당당히 말한다. 생각해보면 넷플릭스가 그랬고, OPENAI 도 그렇지 않았나. 갈수록 짧아지는 독점의 시간이지만. 그만큼 시대의 속도가 어마무시해졌다는 의미 이기에 , 사실 따라가기조차도 벅찬 현실에 한숨이 나오는 챕터이기도 했다.

그리고 알고 있었지만 텍스트로 읽으며 아! 싶었던 벤야민의 글- 종교로서의 자본주의.
지금 ’돈’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뼈때리는 제목이지 않나. 돈을 빼놓고서 현재를 설명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는 아마도 죄를 사면하지 않고 죄책감을 주는 최초의 제의일 것이다. 거대한 죄책감 속에서 구원을 꿈꾸지 않고, 죄책감 자체를 보편화시키는 제의다“ - 종교로서의 자본주의 p.160

다 갚기전까지 끝나지는 않는 죄. 빚이라 말한다. 종교에서 죄는 참회하면 사해지는 것이였으나, 현대 사회에서는빚은 갚기전에는 사해지지 않는 죄이다. 그것을 벤야민은 구원없는 죄.라고 하니 얼마나 무서운 글인가. 사실 밎이 얺더라도, 돈 그자체에 메인 현대인은 정말 죄속에 있는 건가. 기독교에서 말한 원죄가 그 죄는 아니겠지만 왜 그 말이 생각나는지.
책은 말미에서 그런 돈에 대해 예수의 말을 들어 말하고 있다. 네가 진정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이 마몬이라고. 그것이 무엇일까?!
물론 촘스키의 글을 보다보면. 우리가 돈이라는 것에 대해 가지는 대부부의 생각은 ”동의의 제조“라고 말한다. 결국 돈에 대해 가지는 대부분의 생각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전제고, 대부분의 우리의 생각은 그 전제안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근대화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만들어진 자본주의의 판위에서 형성된 개념. 그렇기에 그 판을 벗어나야 한다 말한다. ’당연한 것이 왜 당연한지를, 그것은 누구의 언어인지를 따져보라 말한다.

그렇다면 다시 책의 말미에서 내가 가장 포기못하는 그것은 무엇일지를 생각해본다.  일을 포기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를 생각하고, 그 무엇을 포기한다면 나는?이라는 결론을 다시 생각한다.
생각해보니 다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충족되는 범위는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왜 이리 쳇바퀴 도는 느낌이 드는 걸까.ㅠ

나도 나만의 목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곰곰히 따져보니 진짜 목표가 무엇인지를 불연듯. 아! 싶게 만들었던 책.
내가 원하는 것은 나의 욕망일까 타인의 욕말일까.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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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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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핫 했던 출판사 중 하나는 무제다. 박정민 배우가 대표로 있다는 사실과, 그가 도서전의 부스에 있다는 소식있었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부스를 찾았으나 나는 근처도 못갔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무제에서 나온 첫 책 < 첫 여름, 완주 > 궁금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해 쓰여진 책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오디오북을 생각해서 쓴 책은 어떤 느낌일지. 이름부터 푸릇한 책.

2026년 봄에서야 읽은 책.

사기로 인한 배신, 그리고 찾아온 우울증으로 성우 열매는 더이상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성우라는 직업을 유지하기도 힘든 그때, 의사의 처방은 쉬어야 한다는 것과 쉬지만 고립되지 않게 사람들과 늘 어울리라는 것이였다. 
그렇게 찾아간 시골 완주. 그곳은 열매의 돈을 사기친 수미의 고향이였다. 수미를 찾으러 간 그곳에서 수미 엄마의 머리를 보고 그녀는 더이상 묻지 못했다. 수미 엄마역시 그녀가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었고,, 너무 시골이라 바로 뜨지 못한 채 하루밤을 수미의 방에서 잤다. 도시의 어수선함과 시끄러움이 없는 조용한 그곳에서. 그 하루가 하루를 더했고, 또 하루를 더했다.
수미 엄마가 자리를 비운 시간 동안 그녀의 매점을 보는 것이 그녀의 일이였고,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고서 그녀는 완주 마을의 대부분의 사람을 만났다.


 이 마을은 평안하지만은 않다. 상상하는 시골이 아니라는 말. 그곳은 개발파와 비개발파의 싸움이 있고, 그곳에서 아이를 잃은 엄마의 절망이 있었고, 수해지역 이였기에 수해를 당한 집과 당하지 않은 집의 신경전이 있는 마을이기도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갈등 속에서도 그 속에 숨은 서로의 사정을 헤아리는 마을이기도.
서울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수미와의 담판을 위해 내려간 곳에서 열매는 목소리를 찾고, 자신이 왜 성우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는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 모든 것을 앗아갔던 이가 머물렀던 고향에서 자신을 찾는 아이러니라니.


“그런데 이상하지. 서울로 오고 나서는 여름이랑 비를 기다린다. 비가 처마에서 떨어질 때, 우드드우드드 우산을 뜯듯이 빗방울이 쏟아질 때, 그럴 때 나는 겨우 숨을 쉬어. 여기도 별다른 곳이 아니구나, 여기도 비 오는 곳이구나, 여기도 별 수 없구나 생각하는 거지.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안도감인지 다른 사람들은 알까?” p.29

이 책에서 가장 신비로운 인물 어저귀. 강동경. 그는 내게 나무와 같았다. 따라가기조차 숨가쁘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인간. 마치 고향에 수백년 수천년동안 머물렀던 나무 같은 존재. 고향은 우리에게 그런 안도를 주는 곳이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 그것이 장소가 아니라 사람으로 존재한다면. 언제나 그대로 머물러 그곳에 있을 것 같은 사람말이다. 엶매에게도 수미에게도 마을 사람들에게도 어저귀는 그런 사람이였다. 단단한 땅같은.
그런 사람이 주는 안도, 장소가 주는 평안함. 더운 계절이지만 만물이 가장 밝게 피어나는 계절 여름. 

어딘가에 꼭 있을 것 같은 마을 완주.
책 제목도 소설 속 마을 이름도 완주이지만, 그들 모두에게 시작인 그곳 내게도 있을까. 가보고 싶네.

추천!


“어저귀  어디서 왔냐고 하면 그쪽은 답할 수 있어요? 
              본인도 중간 부분만 기억하잖아요. 최초의 시점에 
              관한 기억은 없고 들은 말 뿐이고 
              그렇게 살다보면 최종순간도 남이 기억해주는 
              거잖아요.”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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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개정판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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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주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알고 있던 책이다. 친했던 친구에게서도, 여러 방송을 통해서도. 그러다 최근에 읽었던 김애란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드디어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읽었다.
나의 첫 느낌은 낯섦이었다. 소설집이라는 사실을 잊고, 장편소설인 줄 알았는데 묘하게 이야기들이 이어지는듯 끊어지는 이 느낌이. 다시 보니 연작소설. 

책은 난장이 가족을 통해 보여지는 한국 현대사의 부조리함을 말한다. 가장 소외된 계층에 가해지는 사회의 불평등이 한 사람을 한 가족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말이다. 사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살던 집에서 사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었으나, 현실은 재개발을 이유로 살고 있는 집을 헐값에 내어줘야 했다. 결국 이십 오만원에 집을 내어줘야했다. 그들은 더이상 그곳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 땅에 지어지는 임대아파트를 들어가려면 삼십오만원이 있어야하고, 매달 만 오천원의 관리비를 내야한다. 
그렇게 빼앗기듯 내어준 집을 되찾기 위해 영희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굴뚝에서 떨어졌다. 
집이 철거되는 중에도 아버지와 영희를 기다려야 하는 가족.
그것이 1960-70년대의 한국을 가장 밑에서 바치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대우였다. 
난장이의 집을 과외 선생으로 인해 처음 방문한 윤호는 그 동네에서 냄새가 났다고 했다. 마치 영화의 기생충에서 박 사장의 그 대사처럼 말이다.
"냄새가 선을 넘지."
그것은 지울 수 없는 그들 사이의 경계였고, 보이지 않는 계급 간의 견고한 벽 이였던 것.

이 소설은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층이 처했던 현실을 여러 사람의 시선으로 그린다.
중산층 집안에서 더 높은 곳으로 가기위해 노력하는 아버지를 둔 윤호.
그리고 난장이 집안의 딸 영희.
그리고 이 책에서 자본가 집안을 말하는 은광산업의 사촌의 시선등을 통해서.
끝까지 내몰린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 이였을까를 생각해본다면 책의 결말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처한 현실에 대한 해결 없이 가장 아팠던 이가 가장 크게 책임져야 하는 넘을 수 없는 계급의 높디 높은 벽앞에 허물어져야 했던 우리의 삶이였기에 그러했다.

살고 있는 집을 빼앗겨서 외곽으로 몰려나야했던 난장이 가족.
먹고 살기 위해 일해야 했던 직장에서 수십시간의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수당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던 여공. 심지어 연장된 근로 시간으로 인해 조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아, 바늘로 찔려 피로 물든 작업복을 입고 일해야 했던 당시의 노동자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그들의 집을 부수러 온 철거반을 보며 한 난장이의 한 마디에서 알 수 있었다. 가진자들에게만 존재하는 법, 그리고 가진 것 없는 자들 위에 있는 법이 그러했다.
"그들 앞엔 법이 있다" p.84


어느 집안의 노비였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아들로 해방이후의 시대를 맞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던 아버지의 세대는 어쩌면 그 차별과 부당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보다 나은 현재이기에 묵묵히 감내하며 살았는지도 모르지만, 난장이의 아들 영수와 영희는 달랐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알았기에 부딪쳐야만 했고, 그렇지만 여전히 높고 견고한 사회 계층의 벽은 부술 수가 없었다. 
반대로 은광 산업의 손자 경훈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난장이로 대표되는 그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탐내고, 게으르기에 자신들이 데리고 가르쳐야 하는 조금은 덜 된 사람 쯤으로 치부한다. 
그렇기에 영수의 분노의 결과는 경훈의 입장에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였고, 영수 역시 자신이 찌른 인물이 그 인물이 아니였다는 사실 역시 분노할 일이였다.

그래서였을까.
책의 첫 머리에 나오는 선생님의 질문은 다시 소설의 마지막에 등장한다. 첫 머리에 나올때는 무슨말일까 싶었던 그 질문은 결국 말미에서는 질문이 오류였다는 사실을 알게한다.
한명은 굴뚝을 청소했고, 한명은 안했다는 것. 그러니 둘 다 청소를 했다는 전제는 틀린 것이 아닐까.

1970년대에 출간되었다는 이 소설에서 말하는 당시의 현실은 지금은 나아졌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글쎄. 그 때의 열악함은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살던 곳에서 쫒기듯 내몰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직장 내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채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여전히 뉴스에 등장한다. 그렇기에 여전히 이 소설이 스테디 셀러로 사람들에게 읽히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소설은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쓰여졌지만, 그것은 곧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모두의 이야기 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계급의 존재는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계급의 존재는 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말이고, 내가 하지 않는 일을 누군가는 해주고 있다는 의미다. 사회는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뤄지고 있고, 우리는 서로가 암암리에 영향을 주고 받는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김애란 작가님의 소설집의 말미에 쓰여진 신형철 평론가님의 글이 슬프지만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네 이웃을 네 돈과 같이" 

1970년대에 쏘아 올려진 공으로 우리는 그 때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사회가 되었으나, 난장이가 없는 사회는 아니다. 그 점이 내게는 씁쓸함으로 다가왔지만, 아직까지 이 책을 읽는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책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그 그늘을 외면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에 위안을 삼아도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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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꽃
이동건 지음 / 델피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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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먼저 보고 원작소설이 궁금해져서 읽은 "죽음의 꽃".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 트롤리 딜레마가 떠올랐다. 전혀 다르지만 뭐랄까 어느 쪽도 선택하기 힘들어서 였을까.

여기 223명을 죽인 살인자가 있다. 하지만 그 살인자는 현재의 모든 난치병을 고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무죄로 만들지 않으면 자살해서 죽을꺼라고 말한다. 그리고 내게는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딸이 있다. 오로지 그만이 내 딸을 살릴 수 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느 미친 살인마에 의해 난도질 당해 돌아가셨다. 누구도 나와 형을 도와주지 않을 때 어느 검사가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주었고, 끝내 그에게 사형선고를 받게 했다. 나에게 법을 지켜야 할 사명을 알게해 준 검사를 따라 나는 검사가 되었다. 그리고 내 앞에 223명을 죽인 살인마가 나타났다. 그리고 나에게 그를 살려달라 사람들이 말한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살인자 이영환. 그는 의대 본과를 다니다 자퇴하고 4년간 아무 흔적이 없다가, 어느날 살인자로 경찰에 잡혀왔다. 그리고 그의 살인은 무려 223명. 이유는 모두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실험이였다 말한다. 심지어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까지. 아이부터 노인까지 죽은 모든 사람들은 그의 실험체였다. 그리고 그는 10명의 불치병 및 장애인들을 완치시켰다.
이 이야기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말 그대로 승승장구의 삶을 살던 박재준. 사법연수원에서도 최우수. 판사보다는 변호사를 선택해 국내 최고의 로펌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그가 결혼을 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얻었다. 하지만 그 딸이 악성종양으로 죽어간다. 그 앞에 이영환이 나타났다. 내 딸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리고 반대편의 검사 장동준. 법 앞에서 일체의 봐줌이 없는 사람이다. 그의 기준에서 이영준은 당연히 사형이여야 한다. 그렇지만 살고 싶은 이들이 나타나 그를 살려달라 말한다. 그리고 그가 존경했고 따랐던 한 사람마저 그에게 그를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해야할까.
223명을 잔인하게 죽인 살인자에게 세계의 모든 불치병을 살릴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를 풀어줘야할까? 아니면 법의 기준대로 사형에 처해야 할까. 둘 중 하나가 아니면 그는 자살하겠다 한다.  책을 읽는 내내 흡입력 강한 스토리에 빠져들기도 했지만, 계속 해서 나라면.. 이라는 내 스스로의 질문에 나는 어떤 결정도 할 수 없었다. 
 꼭 내 가족일이 아니더라도,,, 그가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의견도, 그렇다고 그에게만 예외를 두어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어떤 결론도 내릴 수가 없었다.
드라마에서는 살인범인 그에게 그럴 수 밖에 없는 서사를 만들었지만,  원작에서 그런 이유는 없다. 그렇기에 더 결론을 낼 수가 없었다. (사실 드라마의 서사가 있다해도 글쎄.)

트롤리 딜레마는 원래대로 간다면 4명이 죽지만, 내가 기차의 길을 바꾼다면 1명이 죽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그 상황이 내게 오지 않길 바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도 이 경우 내가 판사라면 법 대로라면 이영환 한명에 대한 판결이지만, 영향력은.. 반대로 그를 살리면 더 많은 이들이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를 살림으로써 그에게 가족을 잃은 최소 223명의 분노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사회 정의라는 기준의 틀이 흔들리는 것을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상황을 결론까지 갈 수 있는 토론의 장이 과연 가능 할까? 싶었다. 완전히 양극단으로 나뉘어진 의견에 중재라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이것이 중재로 가능한 논의일까..

 우리가 어쩌면 이로움이 더 많을 지도 모르는 인간복제나 DNA 조작(특히 배아)을 막은 이유는 분명하다. 그 기술로 인해 어디 범위까지를 인권이라는 아주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권리를 침해하는 지에 대한 논의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침해에 대해 얼마만큼의 위험성이 존재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우리에게 결말을 보여주고 선택을 말한다. 그렇기에 책을 잃는 내내 나는 어떤 쪽으로도 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도 여전히.

흥미로운 스토리이지만, 정말 어려운 난제.
재밌네.(재밌다고 말해도 되나..ㅠ)

"'소생'이라는 단어가 내 눈에 들어오고 머릿속에서 이해가 되는 순간 모든 사고가 멈춘다. 머릿속에서 싸우고 있던 병신 같은 생각들이 모두 연기처럼 사라진다."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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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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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24년 12월 3일부터 2025년 5월 1일까지 황정은 작가님의 일기다. 이 책을 지인에게 추천받고서, 한참을 묵혔다. 누군가의 일기를 왜 추천하는가.. 싶었는데 그분이 읽어준 문장하나가 너무 웃겨서.


하지만 직접 책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은 그때의 두려움이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잊고 있었던 그 때의 두려움과 숨막힘. 
계엄 해제는 그 밤에 끝났지만, 그것을 내란이라 규정하는 것은 지난했다.
그 중간에 무안공항에서 참사가 있었고, 
우리나라 사법을 다시보게 한 어이없는 사건들이 있었고,
탄핵선고가 늦어지는 동안의 숨막힘이 있었다. 
민주진영에서 탄핵이 되지 않아도 국민들이 있기에 다시 하면 된다는 위로되지 않는 정치평을 들으면서는 절망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던 그 시간들.

이 책은 그런 시간들에 대한 작가의 기록이다. 
작가님의 기록이라 그런지 구체적이면서도 그 때의 나의 감정이 단어와 문장으로 기록된 느낌이 이토록 생생하게 다가오다니 싶은 낯선듯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생경스러운 기분이였다. 같은 시대를 지나며, 같은 마음으로 견뎌온 시간의 기록을 읽고 있다니.

“매국과 내란의 얼굴들, 파렴치며 몰염치가 그네들의 힘이다. 꼴도 보기 싫다, 곱게 늙어서 더 징그러운 폭력들, 샹, 샹. ‘국가‘와 ’나라’를 주제로 열렬히 말하고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보수 인가 싶었다. 이 계엄을 옹호하는 입장들을 ‘보수‘라 칭하는 일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하지 않을까. 봉건, 내란, 위헌 중에 골라봐” p.25

교과서에서만 보던 “계엄”이라는 단어가 등장한지 1년 3개월이 지나고도 여전히 내란은 진행중이다. 
계엄부터 탄핵선고, 그 이후 조희대의 난인지 뭔지까지 6개월 동안 쓰여진 일기는 그 시간을 견뎌내어야했던 우리를 다시 대면하게 한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니..

한편 책을 읽으며 내 가슴을 뜨끔하게 했던 문장이 있었다. 참담했다 표현하면서도, 내 일이 우선이였던 순간들. 그 때 들었던 내 스스로에 대한 불편감.
“소식을 듣자마자 국회로 달려간 사람들이 없었다면 오늘 일상은 오늘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그 찰나에, 그들이 나처럼 생각했다면.
그날 뒤로 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p.52

내란 수괴에 대한 1심 선고 결과가 드디어 2026년 2월 19일에서야 나왔다. 하지만 지금의 재판 결과 그리고 그 결과에 이르기 까지에 대한 재판관들의 ‘말‘ - 잘못은 했지. 근데 뭐 이게 큰일이야? 싶은 식의 말들을 들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 - ‘나‘는 약하지만 ’우리’의 힘은 강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 정말.. 나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모르겠다…
“말할 수록 말하고자하는 것이 가벼워지고 하찮아 지는 것 같았냐고 묻자 어떻게 알았느냐고 반문한다. 나도 겪곤 하니까. 그 무서운 일을. 내게 너무나 중요한 그것이 당신에겐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목격하는 일. 사람의 무언가를 야금야금 무너뜨리는 그 일을.”  p.43
 
작가님은 지금 어떤 일기를 쓰고 계시려나.

진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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