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국가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50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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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오래된 고전중의 고전이다. 고전이고, 철학적이다보니, 읽는데까지 고민이 많았지만, 그래도 도전!이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역시나 나에겐 어려웠다.(쉽지 않아..또르륵ㅠ)

 

책을 처음 읽으면서는 사실 좀 의아했다. 왜이렇게 순수하지?라는 마음이였달까. 정의와 불의에 대한 대화를 시작으로 불의하게 사는것이 정의롭게 사는것보다 더 편안하다는 논증을 어떻게 정의로움이 나의 삶에 더 이로운지를 풀어가는 대화가 그 시작인데, 마치 너무 이론적이고 이상적인 방식이였달까. 그래서 나는 이 대화가 너무나도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인간이 행하는 불의한 일들은 결국 자신의 이로움만을 택한 결과일때, 자신의 죄책감으로 그것이 옳지 못한 것임을 깨닫고, 그 깨달음이 자신을 불행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말. 지금의 현실에서는 사실 그런 이들이 ”죄책감“이라는 단어 그 자체를 생각이나 할까?라는 의문이 드는 부분이였다.

 

하지만 500페이지나 되는 이 책은 꾸준이 인간이 가져야할 가장 기본의 자질에 대해, 좋은 혼을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한지, 각 나이 때에 받아야할 교육(수학, 기하학, 천문학, 체육 등), 나이에 맞게 필요한 교육과정(변증법은 충분히 앞의 교육과정을 통해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을 때 시작해야하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르는 부모, 국가의 시스템등을 계속해서 논의해간다. 결국 이런 정의로운 사람이, 좋은 국가를 만드는 시스템이기도 하니까. 

이에 사람의 타락은 국가의 타락과 닮아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쯤 고전에서 읽히는 미래, 즉 지금의 현재가 수천년전에 예견되었다는 것에 뒷목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과두정에서 민주정, 그리고 참주정으로 넘어가는 단계. 불의한것에서 정의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선택한 민주정이, 어떻게 참주라는 독재의 형태로 넘어가는지를 읽으면서 우리는 오래전에 예견된 순서를 너무나도 그대로 밟아온 역사를 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나 민주정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참주는 가까웠던 과거에 본 것과 너무나도 닮아있었고, 오래지속되는 독재가 어떻게 한 국가와 시민을 타락시키는 지는 지금의 현재에서도 어렵잖에 찾아볼 수 있기에 더 그러했다. 

 

 책은 소크라테스의 말, 플라톤의 정리를 통해 그들은 현실의 정치에 대해 대증처방을 하든 국가를 논의한것이 아니라 국가의 이상향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나는 책을 다 읽어갈 때쯤 알 수 있었다.

 이상은 대체로 현실과 떨어져있지만, 봐야하는 목표임에는 분명하니까. 국가의 이데아란 이런 모습이여야한다는 것을 책의 화자들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국가의 이데아라는 것에 언론의 역할까지 들어가있다는 점은 놀라울 따름. 특히 시에 대해, 시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하는지를 읽다보면, 지금의 언론이 가져야할 태도를 말하고 있었다.

 

”모방적인 시인은 더 큰것과 더 작은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동일한 것을 어떤 때는 크다하고 어떤 때는 작다고 여기는 혼의 분별력이 없는 부분에 동조하고, 참된 것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영상을 만들어 개개인의 혼안에 나븐 정치체제를 생성한다고 말할 수 있네“ p.500

 

오래된 책인데, 그래서 너무 이론적인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지만, 그들의 말하는 국가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가 지금도 추구해야 하는 이상향임에는 분명하다는것이다. 물론 현재의 국가는 책 속 시대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고, 각 개인의 욕망은 정의를 이기고도 죄책감을 지우지 않는 현재이지만 책 속 화자들의 말과, 우리가 밟아온 과거의 역사는 우리에게 다시 국가란 어떤 모습이여야하는지를 잊지 말라고 말한다.

 그래서 고전은 우리에게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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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23 -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23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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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매년 10월쯤 다음해의 트렌드 코리아가 출간되고,  출간된 직후 이 책을 매년 읽어왔는데, 올해는 좀 늦었다. 이제는 트렌드를 책으로 배울나이가 되어서 인지, 매년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느낌은 매번 격세지감이다. 요즘은 다들 이렇게 사는걸까...하는 느낌? (나와는 많이 다른.....)


올해는 진짜로 본격적인 엔데믹의 시작인 2023년이다. 그런 올해의 트렌드는 어떨까. 사실 트렌드코리아 책을 매년 읽다보면, 작년과 올해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나에겐 늘 새롭지만.ㅎㅎ) 어떻게 1년 사이에 확~바뀐 것이 있을까?(코로나가 시작되던 해를 제외하고..) 

2020년부터였을까. 확실히 트렌드가 개인화 되는 점이 강해졌다. 완연한 Individual로 소비 트렌드가 초개인화 되었달까. 그래서 인지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파트는 “평균실종” 이였다. 소비, 취향, 목표등 모든 것이 개인화 되어가는 트렌드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곧 “평균 실종”이라는 트렌드가 당연한 결과일지도. 다만 이것이 소비적 측면에서 들어난것 외에 경제,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중간 완충 지대없이 완전한 양극화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어두운 민낯이 드디어 수면위로 올라온 것일까? 소비 트렌드와 별개로 이부분은 굉장히 씁쓸했다.


정말 격세지감으로 다가온 “알파세대가 온다”는 파트는 디지털 ONLY세대, 디지털 원주민인 2000년대 후반 태어난 세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Z라는 단어가 알파벳의 끝이기에 등장했다는 단어 ‘알파’ 이 아이들은 X세대의 자식들이다. 한국에서 개성이라는 면면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등장한 세대의 자식답게, 알파세대는 자기 중심성이 강하고, 틱톡과 같은 SNS를 통해 개인이 인플루언서로,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가 자연스러운 세대이다. 또한 자본주의 세대 답게 돈에 대한 가치, 소비와 투자를 아는 세대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꿈 역시 기성세대가 원했던 것과 다르다. 모두가 원하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꿈꾸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 역시 우리가 아는 평균, 남들만큼만 살면 된다라는 인식 자체가 사라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초개인화 되어가는 시대이면서, 재밌게도 초연결화 되어가는 시대이다. 사회 속에서 나를 낮추고 타인과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는 시대가 지나가고, 내가 원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 역시 무거운듯 가벼움을 유지하는 시대다. 관계를 맺고 끊음이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시선이 그 중심이다. 

 이 현상은 직장에서도 드러난다.  오피스, 직장의 선택 기준이 급여보다는 복지이다. 회사보다는 내가 중요한 시대의 등장이다. 

 이런 개인화 된 사회는 하나의 개인에서 머물지 않고, 그 개인의 생활 깊숙히 들어와, 행동, 행위의 목적까지 분석해 선제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의 등장까지도 보고 있는 요즘이다. 말그대로 ‘선제적 대응기술’ 사실 이 부분은 놀랍다기보단 개인적으로는 두려웠다. 내 행위 모든 것이 ‘기술의 감시’아래 놓이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 부분을 내가 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기술이 이런 느낌없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생활속에 어떻게 녹아들지, 두려움 반 기대 반이다. 


 모든 것이 ‘초개인화’ 되는 것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많은 이들을 만나는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중요해지고 있다. 공간이라는 의미가 아날로그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메타버스라는 사이버 상의 새로운 공간이 등장역시 포함한다. 우리가 관계를 맺기위해 찾는 공간이라는 곳이 어떻게 트렌디하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읽고 있다보면, 재밌는 생각이지만 요즘 건축가들이 얼마나 머리가 아플까..싶기도 했달까. ㅋ 소위 힙한 느낌을 주면서도 많은 이들이 이질감없이 모여들게 할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2023 트렌드가 2022년과 완연히 다른것은 아니다. 트렌드란 연속성을 가지며 발전하는 것이니까.

본격적인 엔데믹의 시작인 올해, 경제도 정치도 별로 상황이 좋진 않진 않지만 책의 부제처럼 ‘더 높은 도약을 준비하는’ 한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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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세계미래보고서 - 새로운 부의 기회는 어떻게 오는가
박영숙.김민석 지음 / 더블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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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세상에나. 작년 11월쯤 아는 지인으로부터 대단한 것이 등장한것 같다는 말을 듣고서도 흘렸는데, 지금은 남녀노소 아는 단어가 되었다. 불과 5개월만에 말이다. IT 기술분야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들리는 단어가 되어버린 지금, 대체 챗GPT는 어디까지 왔고 어디까지 갈것인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읽은 책.


기술분야쪽에서 종사했음에도 처음 챗GPT에 질문을 하고 받은 답변은 굉장히 놀라웠다. 원하는 정보를 단어나 문장으로 검색하고, 검색 결과를 토대로,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아야 했었는데, 챗GPT는  질문에 검색된 정보를 토대로 원하는 결과만을 정리하여 응답한다,

 구글 검색에서 한단계 넘어선 기술을 보고 있었기에 그랬다.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생성적 사전학습 인공지능 모델)인 GPT는 인간의 자연어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언어로 응답을 돌려준다. 원하는 결과를 찾고 조합하던 단계를 GPT모델이 대신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찾고자하는 검색결과를 조회하는 것 외에 인간의 자연어를 학습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책이나 논문의 요약본을 만들고, 기사를 작성하고,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역할까지 가능한 단계까지 AI 기술이 발전한 것이다. 

 다만 현재는 OPEN AI의 챗GPT는 적시성이 떨어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결과의 빠른 도출을 위해서는 사전학습이라는 단계가 필요하고, 그 작업에는 어마어마한 하드웨어가 필요하기에 그렇다고 한다. 현재의 챗GPT는 2021년까지 사전 학습된 결과를 토대로 질문에 대한 응답을 하기에 현재를 기준으로하는 질문에는 답변의 정확성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이 기술이 적시성까지 탑재한다면, 와.우.. 적어도 인간에게 더이상 검색이라는 단어는 없어질지도.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것은 OPEN AI의 챗GPT외에도 GPT 기술을 이용한 다른 AI 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진짜 많았다..) OPEN AI에서도 다음 세대의 GPT-4를 2023년 발표했고, (현재는 GPT-3.5) 빙챗, 리사, 재스퍼챗등 다양한 AI 챗봇이 이미 출시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였다. 구글의 PaLM-E 모델도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코파일럿이라는 MS문서관련 비즈니스챗도 있다. 실제로 문서의 초안을 작성하고, 수정, 검토하는 등의 실제 MS문서도구 관련 전반에서 AI비서 역할을 하는 챗봇이였다. (개인적으로 엑셀 코파일럿이 가장 궁금했다. 엑셀이라는 막강한 툴에 AI가 보태어져있다면,,와. 대단하겠는데 싶어서.)


 다양한 AI봇의 등장. 인간과 그들의 상호교감에 있어 더이상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발전해온 AI봇의 등장은 아직까지는 일장일단의 면면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정말 AI봇이 현재 산업의 판도를 어떻게 바꿀지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여전히 아직은 어색하지만 적어도 뜻의 전달정도까지는 가능해진 번역(물론 전문적이고 매끄러운 부분에 있어서는 전문 번역가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하다),  디지털 AI 봇의 경우는 간단한 대화가 가능하기에 고객 말의 맥락을 이해하고, 고객의 니즈를 분석, 분류하여 정확하 사람에게 연결해주는 등의 보조 업무는 가능한 지금이다. 

그리고 챗GPT의 등장으로 아이들의 교육 현장도 바뀌고 있다. 단순히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챗봇과의 문답을 통해 다양한 생각의 발전을 키워갈 수 있는 도구가 새로 생긴것이다. 현실적인 것부터 철학적인 문답까지 가능한 챗봇의 등장은 정말 놀라울 따름. 이밖에도 로봇, 우주, 농업, 보험, 법률 자문까지 뻗어갈 수 있는 분야가 정말 어디까지 일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다만 아직까지는 결과에 대한 적시성 및 정확성을 보장하지 않기에 인간의 개입과 확인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도 기반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정도는 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이부분엔 나도 동감.


게임체인저의 등장이다.

인터넷이라는 어마어마한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습득한 데이터를 인간의 언어로 돌려주는 AI.

이 AI의 등장이 개인적으로는 두렵기 보다는 아직까지는 신기한 눈으로 바로보고 있는 일인으로, 다만 걱정되는 부분으로 인간의 편향이 AI 속에는 없길 바랬는데, 그 부분 역시 AI를 개발하고 학습하는 부분에서 논의 되고 있다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아이들의 교육 분야까지도 그 산업의 발전이 보여지는 지금 인간이 가진 편향된 추론이 그 속에 드러나있다면 그리고 그게 다수이기에 나타날 수 있다고 치면, 우린 그 편향을 편향으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인간이 학습될테니..말이다.(어떻게 하는지는 명확하게 책에 드러나있지 않지만, 그 부분을 어떻게 해결해갈지 그 과정이 궁금하긴 하다.)


재밌다. 피할 수 없다면 잘 사용하고, 잘 이용해, 그것을 기반으로 인간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사뭇 기대가 된다.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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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론 범우문고 249
토마스 페인 지음, 박광순 옮김 / 범우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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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떻게 알게되었는지,, 김영란 대법관의 헌법이야기라는 책에서 알게 된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궁금했었다. 그래서 읽은 책. 토머스 페인의 상식론. Common Sence.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 시 말그대로 그래도 되나? 했던 중간파, 독립 그 자체를 꺼렸던 반대파의 생각을 바꾸게 했던 책이다. 사실 책이 아니라 팸플릿으로 이 짧은 글이 어떻게 많은 이들의 생각을 바꾸게 했을까. 궁금했다.


책은 토머스페인의 삶을 간략하게 서술하고, 상식론의 전문을 싣고 있다. 토머스페인의 삶만을 들여다보면 이런 삶을 살았던 이가 어떻게 이런 책을 썼을까 싶게, 그는 평범한 사람이였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코르셋 제조를 하는 아버지 밑에서 코르셋 제조를 배웠고, 그게 싫었던 그는 가출해 선원이 되어, 배를 탔다. 결국 아버지에 의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코르셋 제조를 했지만, 다시 주조업자의 감시인, 밀수입의 감시인등의 일을 했다. 결국 부정사건에 연루되 면직당했지만. 이러저러한 일을 하다가 37세에는 완전히 무일푼이되어 두번째 아내와도 이혼해, 비참한 삶을 살지만, 이때 페인은 일자리를 찾아 영국으로 떠나 그곳에서 벤자민 프랭클린을 만나 미국으로 간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이 책, 상식론을 쓴다.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았던 이가 이런 책을 썼을까.

사실 그는 시민 혁명의 중심에 있었다. 프랑스 혁명의 당위성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고,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에 있었다. 그리고 가장 민심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으며, 영국의 조지 3세의 폭정을 지켜봤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국가가 가지는 불합리에 대해 그 누구보다 분개하고 있었고, 아버지가 퀘이커 교도였기에 가난했지만 훌륭한 교육을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상식론은 국가 즉 정부의 탄생의 원리, 그 원리를 통해 영국 정부의 불합리성, 미국 국민의 권리를 일깨우며, 영국 왕정의 본질을 폭로하고, 영국 안에서 미국의 번영과 평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설명, 그리고 미국 스스로가 가지는 힘을 말하고 있다. 

페인은 정부의 탄생의 근거가 좋은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가장 큰 불행을 막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서로 평안하게 서로를 인정하며 살수 있다면 국가는 필요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공존하기 위해 도덕적 결함을 메꾸는 일을 하는 것이 국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세워진 국가에서 시민의 손으로 선출한 대표가 아니라 왕정이라는 형태는 옳은가? 에 대해서 비판하는 부분은 굉장히 신랄하다. 이미 세습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왕정은 신성한 권위를 잃었고, 그것이 나타내는 바는 압제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시민들이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그들의 권리가 당연하다는 오만을 가진다는 것이다. 지금 보면 당연한 글이지만, 당시를 놓고보면 왕정을 이렇게 비판하다니 상식론을 출판할 출판사를 찾지 못할 정도 였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그리고 이 왕정에 대한 부분을 영국이 자랑스러워하는 마그나카르타에서 그 모순을 말하는 부분이 꽤나 인상적이였다.


개인적으로 페인의 상식론에서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미국 독립의 당위성”이다. 이부분을 영국의 식민지로써의 미국은 더이상 번영을 할 수 없다는 근거와, 미국이 가진 힘을 말한다. 영국이 말그대로 본국과 식민지를 놓고 볼때, 식민지의 발전을 바랄 수 없다는 측면, 그리고 영국이 정말 미국을 지켜줄수 있는가에 대한 모순, 그리고 미국이 영국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약한가에 대해 군함과 그들이가진 풍부한 자원, 인력을 들어 그렇지 않음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지금 대한민국의 위치에 대해 생각치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부터, 근대화까지 강대국에 대한 의존성을 가졌다. 하지만 지금도 그래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글쎄. 우리는 더이상 50-60년 전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물론 우방국과의 친교도 중요하지만, 그러기 위해 우리가 꼭 몸을 낮춰야 할 필요가 있는가하는 생각이다. 늘 한쪽 편에서만 서는 외교가 더 위험하지 않은가하는 생각이다. 필요에 의해서는 다양하게 움직일 수 있는 외교 버퍼가 있어야할 것 같은데, 요즘은 그래보이지가 않아서.

그래서 1700년대 쓰여진 책이지만, 자주국방, 자주외교에 대해 지금을 우리의 상황을 대입해보아도 전혀 시대가 느껴지지 않는 책이다.


“요컨대 우리의 번영을 질투하는 국가가 과연 우리를 통치하기에 적합한 나라인가?” p.86

이말을 통치라는 말에서 외교라는 말로 바꿔본다면, 어떨까.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책이다. 


진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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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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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잃어버린 도시라는 부제가 달린 위화 작가의 신작. 부제를 보고 알았다. 이 소설 역시 슬프겠구나. 나는 <허삼관 매혈기>라는 영화를 보고, 실망했었을때, 지인이 꼭 책으로 읽으라며, 위화 작가의 책 '인생'을 추천해줬다. 그렇게 알게된 위화 작가. 작가의 책은 늘 힘겨웠다.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보통의 선인들이 이토록 힘든 일생을 보내야하는가. 그럼에도 그들은 그들의 삶을 원망하지 않는다. 하루를 살아갈뿐. 그래서 더 쓰린 이야기들이였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알았다. 또. 슬프겠구나.


린샹푸는 어느날 자신의 집에 하루 묵기위해 찾아온 샤오메이와 아창에게 방을 하나 내어준다. 둘은 남매이고, 아창은 샤오메이만 남겨둔채 떠난다. 샤오메이는 아창을 기다린다. 어느날 부터인가 집에 머무르는 비용이라도 치르듯 어머니의 베틀을 다루는 샤오메이와 일상을 보내던 린샹푸는 그녀를 배필로 맞아들이기로 한다. 샤오메이 역시 그를 거절하지 않고, 둘은 하루 밤을 보낸다. 린샹푸는 그녀에게 그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금고의 위치를 알려준다. 그리고 샤오메이는 그 금고에서 금괴 몇개를 들고 그를 떠났다. 린샹푸는 그녀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몇달 후 배가 불러 다시 돌아온 샤오메이. 그녀는 그의 아이를 가졌다고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고, 다시 맞아 들여 정식으로 혼례를 치른다. 마치 그가 혼례를 치르지 않고, 그녀를 맞이한 것이 그녀가 떠난 이유라도 되듯. 그렇게 그들의 딸인 리바이자가 태어나고, 행복한 한달이 지났다. 그리고 다시 사라진 샤오메이. 린샹푸는 딸을 보며 다시 샤오메이를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그녀가 왔다던 원청을 찾아 딸을 안고 떠난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만나기 까지 18년의 시간이 흐르는데.



위화작가의 소설엔 악인이 없다. 그저 우리 옆집에도 있고, 앞집에도 있을 듯한 사람들이 있을뿐. 린샹푸도, 샤오메이도, 아창도, 천융량도, 모두 우리의 이웃이다. 다만 시절이 다를뿐. 소설이니 정확한 시기도 없고, 실제 존재하지 않는 지명들이지만, 우리의 근대화 속에 있던 시절과 비슷하다. 그래서 가슴이 아팠고, 그럼에도 그 힘듬을 위화작가 답게 풀어내는 방식이 책을 읽는내내 무거움을 덜어준다. 그래서 위화 스럽다는 말이 추천사에 있었을까?


매 순간에 스쳐지나가듯 인연을 보냈지만, 지켜야 할 것을 지켜내고, 주위를 돌아보고, 나의 사람을 지켜내는 작가의 주인공들의 삶은 비록 힘들고 고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인지 따뜻하다. 우리가 늘 가장 힘든 순간속에서도 버텨내는 힘이 되듯.



진짜 추천!



"두 사람은 손을 놓지 않고 붙잡은 채로 오른쪽 사선으로 비스듬하게 걸어갔다. 그러다가 얼른 왼쪽으로 걸음을 옮겼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자기 의지와 상관 없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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